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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 대한 메모
당의 근본 문제
모든 당의 근본 문제는 어떤 계급을 선택하는가이다. ‘노동자계급 해방정당’은 현 시대 변혁정당의 유일한 근본 정체성이다. 당은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 도구, 그러나 사활적이고도 중차대한 근본 요소이다.
당과 계급
당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자신의 해방과 함께 인류의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는 데서 ‘길잡이’, ‘안내자’이다. 오직 노동자계급 다수의 의식과 의지, 결단, 경험, 조직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노동해방 과업을 당이 ‘대신’해서 수행할 수는 없다. 게다가 모든 혁명이란 단지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의 전제조건이자 그것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능동적 의지’를 대표하는 혁명계급 자신이 과거 사회가 자신의 몸속에 심어놓은 낡은 오물을 뱉어내고 새로운 주체로 재탄생하는 역사적 과정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이는 노동해방 당이 모든 대리주의와 완벽하게 단절하고 있는 이유이다. 사실 ‘대리주의’란 부르주아 의회주의, 개량주의 의회정당, 노동조합 관료주의를 비롯한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경향의 표현이자, 그 경향들이 생명을 부지하는 요인일 뿐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계급 해방정당은 노동자대중이 계급의식을 획득하도록 돕는 역사적 도구이며, 그 계급의식을 혁명적 행동으로 물질화시키는 작업에서 최선두에 서서 실천하는 중핵 조직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리주의에 대한 반대를 기계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흔히 제기되는 “당의 지배인가 노동자계급의 지배인가?”라는 물음은 가장 쉽게 발견되는 사례다. 만약 진실로 노동해방주의적인 당이라면 이 당의 권력 장악이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과 대립될 이유가 전혀 없다. 예컨대 당의 적극적 지도의 결과,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계급의 권력이 노동자대중을 대표하고 그들의 사회 지배의 토대로 작동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스탈린주의 정당과 같은 억압적이고도 관료적인 방식(게다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의 실현과 대립되는 방식)이 아니라 진정 노동해방주의적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노동자계급의 지배가 당의 지배와 충돌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는 어떤 지도자의 ‘지도력’이 완전하다는 것이 그가 그 조직과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의 발전에서 필수적 요소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르주아 정당의 지배도 그 점을 보여준다. 부르주아 정당의 지배가 자본가계급 전체의 지배와 충돌하는 경우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 경험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과제를 가장 분명하게 정식화시키고 있는’ 노동해방 변혁정당의 지도력과 주도권 없이는 ‘노동자계급 지배’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계급 해방정당이 스탈린주의 정당, 개량주의 정당, 부르주아 정당들과 구분되는 것은 “이 당이 대변하고 있는 정치의 계급적 성격”, “계급과 관계 맺는 데서 이 당이 의지하는 지도력의 ‘자발적’ 성격”, “당의 정치활동의 근본이 계급과 당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좁혀나가면서 최종적으로 당을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냐”에 달려 있다.
스탈린주의 정당의 독재는 ‘노동자계급의 독재’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대한 독재’이며, 그 당의 지배방식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포통제와 군사적 억압에 의지하고 있다. 반면 노동해방주의 정당의 지배는 ‘노동자계급의 지배’이며, 이 당의 지배방식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동의와 의식, 자발성에 의지한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 항목들
(1) 정치(강령)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정식화한 변혁정치 없이는 어떠한 변혁정당도 성립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정치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고, 특히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주요 수단’들을 옳게 점검하는 것이다.
변혁정치는 넓게는 노동자계급 운동, 좁게는 노동자계급 변혁운동의 역사적 실천 경험의 집약을 통해서만 확고하게 확립되고, 역사적으로 계승될 수 있다. 맑스의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출발해, 러시아 볼셰비키당 강령, 제3인터내셔널의 3차 대회까지의 결의안, 그리고 트로츠키의 이행기 강령에 이르기까지, 강령의 발전은 이 점을 확증한다. 맑스주의 지식인의 천재적 영감이나 지적 연구의 단순한 결과로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변혁운동의 역사적 집약을 통해서만 진지한 변혁정치를 확립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가 일차적으로 의지해야 할 견고한 토대는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 운동이다. 이 운동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의해 붕괴되고 변질하고 있는 볼셰비키 당, 제3인터내셔널 속에서 볼셰비키주의를 지키고 당대의 혁명적 과제에 심화 적용하려는 가장 의미 있는 시도였다. 트로츠키주의로 표현되는 이 운동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맞서 목숨을 걸고 볼셰비키주의를 사수하면서 볼셰비키주의의 정수를 보존하고 심화 발전시켰다. 그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스탈린 관료집단에 의해 학살되었던 트로츠키주의 좌익반대파 운동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스탈린주의의 왜곡으로부터 노동자계급 혁명정치를 되살려낼 다른 위대하고도 진지한 전통, 이론, 경험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으로부터 출발해야만 변혁정당의 정치를 확립하기 위한 견고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것은 트로츠키 사후의 제4인터내셔널에 대한 집착과는 다른 것이다.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 운동을 진실로 계승하는 데서 트로츠키 사후의 제4인터내셔널은 객관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볼셰비키주의의 역사적 계승자인 트로츠키 자신의 이론과 실천을 통해서 혁명정치의 역사적 간극을 메워야 한다. 그의 이론과 실천은 단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는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였기에 볼셰비키주의의 정수를 누구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스탈린주의에 맞서 볼셰비키주의를 사수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스탈린주의에 맞선 논쟁을 통해서, 그리고 당시 세계혁명운동의 역사적 과제에 응답하기 위해서 볼셰비키주의의 정수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정식화한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스탈린주의를 거부하고 진실한 혁명정치를 세워내고자 한다면, 트로츠키주의로부터 우선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에 견줄 만큼 그러한 과제에 성공적으로 접근한 지도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주의를 통해서만 볼셰비키주의와 실을 연결시킬 수 있고 스탈린주의에 근본적으로 맞설 수 있으며, 노동자계급 변혁정치의 계승과 현대화에 진지하게 착수할 수 있다.
다음으로 혁명정치의 수립은 노동자계급 속에서의 진지한 실천과 연동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혁명정치란 교조적 문구나 완고한 공식이 아니다. 혁명정치의 본령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 달성을 안내하기 위해 혁명적 전위들이 채택하는 ‘실천의 기본요강’이다. 이것은 순수한 이론적 탐구나 연구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들을 노동자계급 속의 변혁적 실천과 긴밀하게 연결하지 않는다면, 혁명정치를 탄생시킬 수 없다는 것, 심지어는 혁명정치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노동자계급 속의 실천
노동자계급 속의 진지한 실천을 제외하고는 노동해방 전위들이 ‘당의 근본 문제’, 그리고 ‘당과 노동대중 사이의 밀접한 협동’, ‘대리주의 극복’을 해결할 다른 실천적 수단은 없다. 노동해방주의자들은 자신의 정치의 모색, 검증, 확립을 노동자계급 속의 실천과 항상 긴밀히 연결시켜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조직적 측면에서도 (그 다양한 출발점과 무관하게) 노동해방주의자 조직은 ‘노동자계급 속의 전위조직’으로 수립될 때만 모든 편향을 극복하면서 노동해방 정치를 사수 확립하고 발전시키면서 역사적 임무를 다할 수 있다.
이는 제4인터내셔널의 왜곡과 무기력성, 변절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서 필수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근본 요소이기도 하다. 제4인터내셔널은 몇 차례의 영웅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식인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탈각하지 못했다. 그 결과 분파주의와 무기력 앞에 압도당했고, 이것은 고스란히 혁명정치의 희석화로 이어졌다. 노동자계급 속의 실천은 다음의 주요 항목들로 구체화될 수 있다.
첫째, 노동해방주의 정치로 무장한 노동자 투사들을 창출하는 것.
둘째, 아무리 작은 수이더라도, 이 노동해방 투사들을 공장, 작업장 내의 변혁조직으로 결집시키는 것. 공장, 작업장 현장세포는 노동해방 조직의 기간 망이 되어야 한다. 이 현장세포가 단사주의, 지역주의에 감염될 수 있는 위험은 물론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 투사들의 주도권과 능동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또한 노동대중과 매일 매일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삶의 모든 측면을 자극하면서 혁명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현장세포에 기초한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노동해방 사회의 생산공동체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작업장에 기초한 노동자 전위의 조직망은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단사주의, 지역주의를 차단하는 것은 전체 당원들 모두에게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혁명정치 - 이 정치는 당연하게도 단사주의적, 지역주의적, 일국주의적 한계 모두로부터 벗어나 있다 - 의 습득, 그리고 전국적일 뿐만 아니라 국제주의적인 실천 활동 속에서의 단련, 마지막으로 단사주의적 요소들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조직적 소통 장치와 단련 장치들을 통해 가능하다.
셋째, 바로 이들과, 바로 이 과업과 연동지어 지식인 출신 혁명가들을 재구성해내는 것이다.
넷째, 노동해방주의 중핵들로부터 확고히 출발하는 것. 개량주의 당이 아닌 변혁정당이 개량주의 조직의 기초 위에서 움터 나온 경우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없다. 노동조합들로부터 움터 나온 영국노동당, 사회민주주의 개량정당으로부터 움터 나온 중도주의 공산당들은 모두 역사의 검증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조직들은 개량주의 조직으로 변신하거나 스탈린주의에 굴종했다. 단호한 노동해방주의 중핵들이 먼저 조직되어 있고 바로 이들에 의해 골간이 수립되는 경우에만, 또는 바로 이들의 의심할 바 없는 권위가 (과거 러시아 혁명 이후 제3인터내셔널의 경우처럼) 확립되어 있는 경우에만 노동조합과 중도주의 정당들로부터 노동해방 정당의 요원들이 모집되고 재교육될 수 있었다.
노동자 활동가 조직들과의 연계, 그리고 이 조직들로부터 기간요원들을 모집하지 못하는 변혁조직 창출은 물론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투적 조합주의 좌파 조직이 아닌 노동해방 정당의 초석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해방주의 중핵’들의 형성과 이 중핵들의 주도권, 권위가 의심할 바 없이 ‘먼저’ 존재해야만 한다. 한국의 현 상태는 이것을 형성해야 할 단계이지 이미 형성한 단계가 아니다.
다음으로 노동해방 정당의 맹아로 묶어세울 수 있는 변혁적 노동자 활동가 조직의 존재 여부를 물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사실 현재의 한국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변혁정당의 맹아적 성격을 갖고 있는 노동자 활동가 조직이 아니라 노동조합운동 내의 전투파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압도적 다수다. 그것도 극히 엷어져 한 줌도 안 되는 규모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노동조합 전투파의 혁명적 정치세력으로의 자연발생적 성장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면(그런 경우는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수일지라도 현장에 토대를 둔 노동자 혁명가들, 현장의 변혁적 소그룹들을 양성하고 조직하기 위한 시도가 더 진지한 노동해방주의 활동이 될 것이다.
평의회 문제에 대해서
두 수준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하나는 당을 대체하는 대안으로서 평의회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비당주의이자 무정부주의로 거론할 가치가 없다. 다른 하나는 당의 필요성을 확고히 인정하되, 노동자권력을 향한 대중적 준비와 단련, 그리고 변혁적 대중정치활동의 일환으로서 평의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후자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이 입장은 조합주의적, 개량주의적, 대중추수주의적 활동 대신 혁명적 정치활동을 대중적으로 전개하자는 선한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평의회 운동이 당을 대신해서 혁명적 정치활동을 담당할 수는 없다. 변혁적 정치활동의 중심 주체는 당이고, 이 당의 모든 실천활동의 총체를 통해 변혁적 정치활동이 수행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평의회는 언제 어떤 시기든 건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의회는 “사회를 장악해서 자신의 의지대로 운영 통제하고자 하는 노동자계급 대중의 의식과 의지, 결단의 조직적 표현”이다. 당연히 평의회 운동, 그리고 평의회의 조직적 기초는 준혁명적, 혁명적 위기의 순간에서야 떠오를 수 있다. 일상적 준비시기에 해야 할 진정한 과업은 이런 시기를 앞당기고, 그 시기에 평의회가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기초를 차분히 다져 놓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대중의 혁명적 의식과 결의, 자본주의 체제와의 적대성”을 발전시키고 심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당장에는 실현불가능한 평의회를 일상적 시기에 건설하는 ‘좌익적 놀음’ 대신 노동대중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 조직들, 그리고 노동대중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을 활용한 “노동해방주의 조직의 혁명적 실천활동의 총체”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른바 변혁적 활동이 가능하다고 하는 순수한 대중조직을 ‘고안’하는 대신 비록 개량주의적 한계를 탈피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모든 투쟁 경험을 통해서 개량적 한계를 넘어서서 대중이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도울 가능성이 있는 대중조직들, 가령 노동조합들 속에서 변혁적 정치활동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 부르주아 선거, 국회의원 자리까지도 (비록 우리 활동의 전체적 측면에서 보자면 종속적 의미만 갖지만) 활용하여 노동해방주의 선전 선동을 대중적으로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해방 정당의 일상 활동을 통해서만, 미래의 평의회를 실제로 열어젖힐 수 있다. 당의 역사적 임무를 평의회 실험으로 대체하는 모든 시도는 한편으로는 진지한 변혁적 대중정치활동을 봉쇄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당과 계급 사이의 연결성을 파괴함으로써 사실상 대리주의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혁명가들의 대중적 실천 활동을 혁명정치의 기초 위에서 전개할 수 있도록 보장할 ‘혁명정치의 윤곽’을 체계적으로 확립하는 것이며, 그것을 노동조합을 비롯한 현장에서의 대중적 실천활동에 적용하기 위한 진지한 활동에 당장 착수하는 것이다. 토론과 상호 논쟁, 경험의 소통은 바로 그 지점에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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