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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7년 노동법개정투쟁의 평가와 교훈
언제부터인가 총파업 시기만 되면 96~7년 노개투처럼 해야 하다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96~7년 노개투가 총파업투쟁의 모범처럼 제기되고, 그렇게 해지 못해 총파업투쟁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총평 이래 최초의 정치파업, 자본과 정권의 노동법개악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유일한 정치파업, 매일 20만 명씩 동원한 위력적인 정치파업이라는 점에서 외형적으론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우려 하는 것은 외형적인 사실이 아니라 투쟁의 교훈이라면 외형적인 것에 얽매여선 안 된다. 96~7년 노개투 총파업을 정치총파업투쟁의 모범 사례로 여기는 ‘국민파’는 당시 투쟁의 확대를 통한 정면대결을 회피했다. 노동법개악안 2년 유예를 이유로 대중파업투쟁을 종료시켰다. 반면 정리해고제, 파견제, 변형근로제, 파업권 제약--비공인파업 금지, 공장점거파업 금지 등--을 가하려는 악법을 완전 철폐하고자 했던 현장활동가에게 총파업 종료는 청천벽력이었다. 투쟁을 접은 지도부와 현장활동가, 조합원 사이의 간극이 엄청남을 보여줬다. 이로 인해 소위 ‘국민파’지도부와 투쟁종료를 반대한 ‘현장’사이의 논쟁이 가속됐다.
96-7년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은 전노협 건설 이후 두 번째 분수령이 되었다. 단순히 위력적인 전국적 총파업의 성사라는 측면에서가 아닌 노동운동 노선, 정치세력화, 현장조직운동의 재편과 전국적 결집이 구체화 되었던 점에서 그러하다. 노동운동 노선과 정치세력화, 현장조직운동의 활성화와 전국적 결집은 민주노조운동의 운명을 좌우할 핵심적인 사항이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91-2년의 단기간의 경기침체, 전노협의 조직률 감소를 겪으면서 진행된 노동운동 1차 위기론 논쟁이 아무런 성과 없이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끝나고 난 후 물밑에서 진행된 각개약진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전투적 조합주의 비판에 가장 앞장섰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의 주창자들(이하 국민파라 칭함)은 96-7년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에서 있는 그대로의 한계를 노정했다. 그 한계는 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 ․ 근로자파견제, 공장점거파업을 겨냥한 파업권 제약 등을 수용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다른 한편, 국민파 주체들은 96-7년 노동법개악 저지 총파업의 패배를 “단 한 석의 국회의원도 없기 때문”이라고 호도하면서 노동운동 노선의 변화와 더불어 민주노동당이라는 선거정당의 결성을 주도함으로서 자신들이 말하는 정치세력화의 내용을 분명히 했다. 87년 이후 남한 노동운동 노선이 극도의 즉자적인 반자본 투쟁에 기초한 것만큼 전투성을 내포했고 반자본적 계급투쟁을 확장했지만 개량주의 세력은 의식적으로 계급적 노동운동을 후퇴시켰다. 민주노동당은 전환기 노동운동의 시기에서 계급적 노동운동 세력의 패배의 반영이다.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이하 전국회의)는 이러한 상황에서 현장조직운동의 전국적 결집체로 등장했다. 96-7년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의 패배, 패배를 둘러싼 평가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에 반대하는 금속 중심의 전국적 선진노동자들의 결집이 이뤄진 것이다. 물론 현장조직 건설의 배경에는 반국민파 전선보다 훨씬 근본적인 흐름이 있었다. 자본의 신경영전략, 정권의 노조운동에 대한 체제내화 전략, 이에 동조하는 노조관료주의 확대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항에 투쟁하고자 하는 경향과 반국민파 전선에 맞춰 활동하려고 하는 경향 사이의 충돌이 지속되었다. 노조운동의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경향 대 노조운동의 우파에 대항해 좌파 노조관료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경향 간의 전술적 대립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전술적 대립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략적 대립으로, 노선적 분리로 이어졌다. 1․2차 노사정위 참여 문제, 정리해고에 대한 입장, 양보교섭 전술에 대한 입장 등 경제공황 시 노동운동의 전술 문제, 산별노조 건설, 정치세력화 등의 문제는 전략적 분리로, 노동운동의 노선적 대립으로 나아가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전술상의 차이는 단사 현장조직운동의 구성주체, 현장조직운동의 목적인 노조운동의 한계 극복의 내용, 집행부와의 관계 등 현장조직운동의 조직노선상의 차이와 중첩되면서 현장조직운동의 위상과 전망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 상호연관 되어 진행된 노동운동 주체들의 노동운동 전략노선과 조직노선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는 무의미하다. 왜냐면 자본의 신경영전략,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 노동유연화 공세 등 노동운동에 지대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준 객관적 조건에 대한 검토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노동운동 진영의 주체적 대응에 대한 검토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실상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체들의 노선 문제가 평가의 주된 지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96~7년의 노개투를 둘러싼 정세
80년대 말 이래 축적위기에 직면한 남한 자본은 엔고 등의 외생변수에 힘입은 지난 몇 년간의 호황을 마감하고 다시 심각한 불황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자본가들과 언론은 정부정책의 비일관성을 성토하고 있지만 그들조차 현재 직면한 위기가 정부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없는 구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더 세계자본주의의 부침에 단단히 결박된 남한 자본은 엔고가 엔저로 바뀌는 등의 ‘외부적’ 경쟁력 약화 요인을 상쇄하고 꾸준히 선진국 자본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자생력’ 강화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외생변수가 바뀌어도 경쟁국보다 낮은 ‘노동비용’으로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면 하는 자본가들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낮은 임금과 빨라진 컨베이어 속도에 저항하는 노동자 운동을 무력화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경제개혁보다 확실히 남한 경제의 자생력을 기르는 방법이다.
남한 경제가 최악의 경기침체를 경험하고 있던 93년에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전체 지배계급에게 부여받은 임무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87년 노동자 대파업 이래 성장해온 전투적 노동운동의 존재였다. 군사독재 정권과의 투쟁 속에서 성장해온 전투적 노동운동은 노골적인 폭력에 의지해서만 억누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경우 오히려 노동자운동의 급진화라는 역효과만 낳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쟁의에 대한 제3자 개입[자본가 편들기]과 공권력 투입, 노동악법, 임금통제 정책 등 기존의 억압방식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럴 경우, 물리적․법적 억압에 억눌려 있는 대중의 분노가 봇물 터지듯이 분출될 게 번했다.
남한 지배계급이 직면해 있는 이러한 곤란한 지경의 산물이 93년 ‘신노동정책’과 96년 ‘신구상’이었다. 이 ‘새로운’정책들은 기존의 폭력에다 ‘동의’의 요소를 가미해 계급지배를 용이하게 해보자는 것인데, 그 핵심은 온건한 노조 지도부를 협력 파트너로 끌어들여 그들의 ‘자율적 통제’의 도움으로 ‘산업평화’와 ‘노사안정’을 이루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투쟁 언제나 일정한 한계 내로 가두려 노력하고, 자국 자본의 수용능력을 넘지 않는 범위 내로 노동자의 요구를 제한시키면서 ‘국가경쟁력’에 협력하는 ‘선진국형 노조 지도부’ 육성을 통해 ‘선진국형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선진국형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과제는 일반 노동자들에게 어용성이 깊이 각인된 한국노총을 들러리로 세워 정부의 임금통제 정책을 노․경총 ‘사회적 합의’로 치장하는 것 따위로는 달성할 수 없다. 일반 노동자들의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재야 노동계’를 끌어들일 수 있는 판을 짜야 하며, 이들이 ‘노사안정’에 협력하기 위해 취하는 투쟁에 대한 ‘자율적 통제’노력이 어용으로 비치지 않도록 일반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정도의 경제적 생활수준 향상을 허용해 ‘재야 노동계’ 내의 ‘노동안정’ 추구세력에게 기동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형 노사관계’안착의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인 경제적 양보 여지를 협소하게 만드는 경제적 위기는 남한판 ‘선진국형 노사관계’를 미․일․유럽의 ‘선진국형 노사관계’와 다른 조건 속에 처하게 만든다. 이러한 딜레마는 ‘새로운’ 노동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어 김영삼 정권은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국민적 합의’를 구하려는 몸짓과 함께 전투적 노동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신구상의 핵심으로서 ‘선진국형 노사관계’구축에 필요한 노동관계법 손질 또한 개정보다는 개악, 즉 그 동안 남한 자본가들이 “근로자 과잉보호” 조치라고 말해온 것들을 없애고, 정리해고제․변형근로제․근로자 파견제 등 ‘선진국 수준으로’ 도입하여 이미 단위 기업별로 추진 중인 ‘신경영전략’을 가속화하고 그것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신구상의 성공을 위해 불가피한 양보조치로 제시한 제3자 개입금지 및 복수노조금지,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 등 노동법상의 독소조항 철폐조차 “다른 법률에 노종의 불법활동을 유발하는 경우에 대비한 견제조항을 두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말이다.
신구상의 실제 내용과 목표가 이런 것임을 알면서, 민주노총이 신구상을 환영하고 <노개위>참여를 결정했다. 민주노총이 신구상을 환영한 사정, 그것은 신구상 자체의 진보성 때문이 아니라 신구상의 ‘선진국형 노조 지도부’가 되고픈 열망을 실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불법’, ‘법외’노조의 합법화라는 미끼가 포함되어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96년 5월 9일 청와대 자문기구로 설립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라 함) 참가는 서로 상이한 평가는 이후 노사정위원회가 참가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이어진다.
1998년 1월 15일 노사정위원회 발족(위원장 한광옥국민회의 부총재)에 따라 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라 함) 참가한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정리해고제․변형근로제, 파견제, 파업권 제약과 교사 노동권, 노동조합의 정치활동금지 조항 삭제, 주 40시간제와 합의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2. 96~7년 노개투 총파업
96년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에 의해 개악 된 노동법이 날치기 통과되었다. 기아자동차를 위시한 민주노조진영 전체가 총파업으로 나섰다. 총파업투쟁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전개되었다. 연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지배계급의 판단은 오판으로 드러났다. 총파업은 YS정권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었다. YS정권이 본격적인 위기 징후를 드러낸 것은 노동법 파동이 본격화된 97년 초반이다. 당시 YS와 권력의 핵심축인 민주계 인사들은 문민개혁 완수와 국가경쟁력 제고를 임기 말 국정지표로 내걸었다. 권력 내부에서조차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노동법 개정은 무리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민주계는 “문민정부 마지막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새벽날치기를 강행했다. 남은 임기와 97년 대통령선거 등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여기서 밀리면 권력누수가 발생한다는 현실론이 한몫했다.
97년 1월3일 노동계는 2차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YS를 비롯한 권력 핵심들은 국민정서를 잘못 읽었다. YS는 연두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잘 몰라 반대한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분노는 6·10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로 발전했다. 권력 내부는 분열됐다. 강경책을 비난하는 온건론과 퇴각하면 레임덕이라는 민주계 실세들이 충돌했다. YS는 1월21일 노동법 개정 포기를 선언하고, 민심수습책을 찾는다. 그러나 이틀 뒤인 1월23일 불거진 한보사태는 상처난 정권의 도덕성에 결정타를 날렸다.
YS정권이 내세운 노동법개악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와 문민개혁 완수”가 자기의 무덤을 판 것이다. YS정권으로선 위기로 돌진하고 있는 남한 경제의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세계자본주의 경제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노동법개악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중에 YS는 DJ의 노사정위를 통한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근로제 도입을 두고 자기가 하려고 했을 땐 반대했다며 분노를 터뜨리며 “만약 그 때 노동법개정에 성공했다면 IMF사태는 오지 않았을 거다”라며 IMF사태의 주범으로 DJ를 지목하기까지 했다. YS의 회고처럼 96~7년 노동법 개악이 성공했다면 IMF사태가 연기되었을지는 모르겠다. YS가 노동법개악을 강행함으로서 경제 회생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구상을 한 것은 적들의 입장에서 보면 타당했던 전략, 전술이었다고 보여 진다. 어느 전쟁이든 전투든 적이 있기 마련이다. 첨예한 계급전쟁에서 노동자계급의 대응을 간과한 것, 그 자체가 YS의 패배의 핵심원인이었다.
3. 96년노동법 개정투쟁 전개
- ILO 기준의 자주적 단결권, 쟁의권 확보 : 공무원.교사 노동3권, 복수노조금지 조항 삭제, 정치활동 금지조항 삭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 저지, 주40시간 노동제 등
- 노동법개정투쟁본부 구성(본부장 : 권영길 위원장)
-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
- 위원장 삭발. 단식농성 : 11월 4일부터 명동성당에서
- 총파업투쟁전개
쟁의발생결의 338개노동조합 268,444명 - 총조합원 496,908명의 54%
1단계 총파업투쟁(96년 12/26 ~ 97년 1/2) : 파업돌입노조 매일평균 179~180개 노동조합 220,000명의 조합원 참가
2단계 총파업투쟁(97년 1/3일 ~ 1/14) : 파업돌입노조 최대 212개 211,731명
3단계 총파업투쟁(97년 1/15 ~ 1/ 19) : 파업돌입노조 최대 388개 350,856명
4단계 총파업투쟁(97년 1/20 ~ 2/28) : 파업돌입노조 최대135개 140,373명
≪≪≪ 총파업 총괄 현황 ≫≫≫
1. 한 번이상 파업에 참가한 노조 : 531개 404,054명(전체의 81.1%)
2. 총파업 돌입노조 : 누적집계 3,422개 3,878,211명
3. 1일평균 파업 규모 : 163개노조 184,498명
4. 집회 참여 총인원 : 전국주요도시에서 1,500,000여명
5. 대국민 선전물 : 3,900,000부 제작,배포
- 세계 노동자의 연대와 지지투쟁 : ALO-CIO 등 22개국가에서 항의시위을 전개하고, ICFTU와 국제산별노련에서 국제조사단을 파견하였으며, 국제기구(ILO)에 제소 등
96~7년 노개투와 이후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을 비교할 때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최악으로 30,000명 참여하는 총파업도 있었으니 말이다. 매년 반복된 민주노총 총파업이 아니라 제2의 노동법개악 저지투쟁과 비교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외형적인 숫자상의 문제가 아닌 노동운동 전략, 전술상의 문제로 본다면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 96~7년 총파업은 조합원 사이에서 확산되는 위기의식과 단위노조의 적극적인 조합원, 현장활동가들의 강력한 현장활동, 이 세 박자가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울산의 예를 들어보자. 대마불사라며 고용에 큰 위기를 느끼지 못한 울산조차 정리해고제 도입에 반대하는 기운이 높아졌다. 기아차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나 할 것 없이 정리해고제 도입에 위기의식은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한 경제에 짙은 어둠이 깔리면서 위기의식은 현실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 단위노조도 적극적으로 조합원 조직화에 매진했다. 현자의 예만 보더라도 그렇다. 당시 단협에 조합원 교육시간이 없는 관계로 조합원들을 모이게 했고 10여명만 넘어도 임원들이 교육에 들어갔다. 이런 비공식적인 교육이 900회가 넘었다. 출투 등 일상적인 활동이 강화된 것은 기본이다.
- 지역의 해고자, 현장활동가들도 몇 달 전부터 투쟁을 준비했다. 지역선봉대를 구성해 현중, 현자, 효문, 남구 사업장까지 순회 출․퇴투를 조직했다. 현장조직동지들은 자체 사업 외에도 자기 사업장 출퇴투 때 적극 결합했다. 이는 단지 울산만의 활동이 아니다. 정리해고제․근로자 파견제․변형근로제․ 파업권 제약에 맞선 투쟁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결사항전일 수밖에 없었다. 김영삼 정권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노동자계급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4. 96~7년 총파업투쟁에서의 전술 문제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노동자계급의 역동성을 무시한 것은 YS만이 아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 역시 노동자계급의 역동성을 우려하고 있었다. 투본 지도부 역시 연말, 연시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가슴 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신정연휴 후 총파업이 가능하겠느냐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지도부의 고민은 총파업투쟁의 강화로 날려버렸다.
총파업투쟁은 시종일관 두 가지 전략에 부딪쳐 있었다. 하나는 ‘국민의 여론’이었다. 다른 하나는 국회일정이었다. 노동운동의 투쟁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 전술보다 국민과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이 더 컸다. ‘국민의 여론’에 조응하기 위해 세 가지가 제약되어야 했다. 첫째, 공공부문의 파업 자제다. 둘째, 노동자투쟁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노동자지역 조직화보다 시민 선전 중심의 집회조직화에 집중됐다 셋째, 폭력투쟁의 자제다.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국회일정에 따른 전술 구사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양치기 소년으로 불리도록 만들었다. 지배계급의 국회일정에 따른 전술은 지도부의 신뢰를 깨는 것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을 지치게 만드는데 특효약이었다. 더욱이 국회통과 후 투쟁배치는 사기저하를 수반해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초반 투쟁동력을 염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의 파업을 자제시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술이다. 대정부를 상대로 한 총파업투쟁에서 사보, 병원, 지하철 등 투쟁동력과 파괴력 있는 사업장의 파업을 자제시키는 것은 권투에서 다리를 묶고 시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다. 총알 없이 총만 들고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와 뭐가 다르겠는가.
지도부의 우려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투쟁동력은 지배계급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력한 투쟁이 언제가지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선도적으로 치고 나오는 대공장을 중심으로 투쟁동력을 확대하기 위한 실천계획이 있어야 한다. 지역공단 조직화를 위한 계획은 시민 조직화보다 훨씬 수월한 일이다. 주저하고 있는 사업장을 자신 있게 조직할 수 있는 것은 투쟁대오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이다. 따라서 공단 조직화를 위한 계획과 실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나 공단 조직화 사업은 고사하고 자기 사업장 투쟁동력을 강화하는 것조차 지역집회에 가로막히는 상황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예상을 뒤엎고 총파업 첫날, 8,000 대오가 동참했다. 그러나 내부 조직화보다 지역집회 참석이 우선시 되면서 투쟁동력을 소실하게 된 대표적인 사업장이었다. 이는 총파업투쟁동력을 파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공업노조 역사의 치명적인 오류로 남게 된다. 막강한 중공업노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회복할 수 있는 잃어버린 것이다.
폭력투쟁에 대한 자제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회의조차 날치기 노동법 개악에 맞서 장외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판에 분노한 노동자계급이 자기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는 단지 분노의 표시만은 아니다. 분노의 표시를 통해 투쟁동력을 강화하고 초반 기선 제압을 통해 승리의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기아차노조, 현자노조 등 전국과 지역의 투쟁을 이끌고 있는 선도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선 정권의 물리력 앞에서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한편, 자기 사업장 투쟁을 조직하기 못한 노민추 등 개별 활동가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폭력투쟁은 중요한 요소였다.
결정적으로 ‘수요파업’으로의 전환은 지도부의 노선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현장에서 어떻게 주 일일 파업을 할 수 있냐며 반대해도 지도부는 강행했다. ‘수요파업’전환이 총파업투쟁동력을 급감시켰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1월 18일 ‘수요파업’전환 후 민주노총 총파업은 사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현장으로 복귀한 단위노조는 정권과 자본의 불법파업 공세에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조직력 있는 핵심 대공장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단위노조에서 벌어진 일이다. 단위노조에 선 구속과 해고, 손배가 만연했다. 조합원들은 다시는 정치총파업하지 않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치총파업 결과 무사한 민주노총 지도부와 초토화된 현장 사이의 간극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심각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투쟁을 한 번 더 왜곡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단 한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면 이렇게 어려운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대선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하자고 선동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선택으로 ‘수요파업’으로 전환함으로서 코너에 몰려 있는 YS정권의 숨통을 틔어주었으면서도 자기반성은 일절 없다. 투쟁전선은 급격히 대선으로 흐트러졌다.
마지막으로 국제연대투쟁에 대한 잘못된 전술이다. 국제노동단체들에게 남한의 96~7년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은 95년 프랑스 공공부문 총파업투쟁의 이후 새롭게 전개되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연장으로 여겨졌다. 이미 10여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몸소 느끼면서 투쟁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노동자계급에게 프랑스 공공부문 총파업은 하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어 남한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횃불로 등장했다. 강력한 노동운동이 존재하는 남한에서 신자유주의 관철을 위한 노동법개악 맞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투쟁하는 것, 강력한 투쟁을 통한 승리는 새로운 희망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국제노동운동단체, 특히 호주 등 운송 하역노조는 한국 수출입선박에 대한 하역거부를 투쟁전술로 제출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중한 거부’를 했다. 국제경쟁력에 지장 주는 행위가 국민의 여론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아니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국민경제를 해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이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의 제소, 국제조사단 파견 등은 국제연대 총파업보다 대정부투쟁에서 그리 효과 있는 전술이 아니다. 국제노동계급과의 연대파업으로 국제주의를 실현하고 김영삼 정권을 무릎 꿇리는 것이 다른 나라의 노동자계급에게 승리의 자신감을 심어주어 자국에서의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5. 살펴야 할 것들
1). 노개위에 이은 노사정위원회 참가 문제.
2). 1기 노사정위원회의 참가와 정리해고제․자파견제 합의한 문제.
3). 97년 임단투에 미친 영향.--경제위기로 치달으면서 ‘회사 살리기’경향의 강화로 역대 79건이라는 최소의 파업건수 기록.
4). 경제위기에 따른 노동운동의 대응 조직화에 실패.
5). 『국민승리 21』로 정치세력화의 협소화 됨.
97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 추대
- “일어서라 코리아”로 선거 참여
- 97년 9월 제7차 대의원대회에서 '국민승리21' 추천 국민후보로 권영길 위원장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킴.
- 조합원 모금운동으로 860,000,000원 선거자금 지원
- 권영길 후보 1.2% 득표(35만여표)
6). 현장조직의 분화--국민파와 결별--와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건설
7). 올바른 정치파업 조직화 전술에 관하여--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
8). 96~7년 노개투를 승리한 투쟁이라고 자평하는 지도부와 다르게 현장에서 느끼는 패배감의 해소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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