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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대선 결과와 한국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지방선거 시기가 다가오면서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등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의 발걸음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미 몇몇 후보자들이 결정되고, 당의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 당들이 “진정으로 노동자의 계급적 이익을 대표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여기에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 당들이 진정으로 노동자의 투쟁과 함께 하고 노동자의 미래를 이끌어갈 당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프랑스에서의 대선 결과는 한국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 투쟁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프랑스에서의 대선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보도가 된 내용은 극우 파시스트인 르뼁이 급속하게 두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와 연관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나는 기존 “좌파” 정당인 사회당과 공산당이 완전히 찌그러들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가 언론에서 보통 “극좌파”로 표현되는 흐름(즉 노동자의 입장과 요구를 철저하게 대표하려는 흐름)이 극우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엄밀히 따진다면 지난 대선과 올 해 대선을 비교했을 때 극우파의 성장은 그다지 별 볼 일 없는 정도였다. 반면 “극좌파”에 대한 지지도는 대략 두 배 이상 상승했다. 극좌파 후보로 나왔던 세 명 중 한 사람은 이번뿐만 아니라 이미 몇 차례 대선 후보로 참가해 4~5%의 지지를 모았었고, 27세의 노동자인 다른 한 후보는 처음으로 선거활동에 뛰어들어 4%를 넘는 지지를 끌어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것은 “위기와 대안”의 관계를 보여준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본가들의 무제한적인 탐욕과 경쟁은 주기적으로 경제위기를 발생시킨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의 정체와 실업자 증대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기존 좌파이면서 집권당이기도 했던 사회당은 자본가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을 적절하게 뒤섞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법제화하되, 임금은 동결 내지 삭감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절충적인 정책은 노동자들도, 자본가들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것은 서로 화합할 수 없는 대립적 이해관계를 하나로 섞어놓으려는 시도였으며, 노동자와 자본가 서로에게 양보하고 화해할 것을 요구하는 정책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적인 위기 극복의 효과도 없었다.
그 결과 기존 집권 좌파정당은 점차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로부터 “무능력한 집단”으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새로운 대안이 등장해야만 했다. 자본가들은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할 세력을 원했다.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노동자와 자본가 그 중간에서 적절한 타협과 조화를 추구했던 정치경향은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프랑스사회당(그리고 이미 그 아류로 전락하고 있던 프랑스공산당)이 찌그러드는 것은 불가피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프랑스 정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리 나라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어떤 교훈을 던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노동자가 자신의 독자적인 계급적 이익을 철저하게 관철시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계급의 이익과 뒤섞으려 한다면 결국 스스로 발목을 묶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결국에는 원칙적 정치세력과의 대결에서 좌초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비추어볼 때, 노동자의 요구와 자영업자의 요구를 뒤섞거나,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경향이 우리 나라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내에 잔존하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예컨대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울산시장 후보는 단순히 “개혁”을 내걸면서 “노사의 균형과 대화”가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장은 노동자가 아닌 다른 시민도 동시에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기가 노동자의 입장을 선명하게 대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동자의 입장을 선명하게 대표하지 못하는 후보가 왜 (“시민후보”가 아니라) 민주노총 후보로 나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어떤 요구를 내걸고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가”야말로 그 운동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정치세력화운동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표”를 모으는 데 열중하거나 의회에 진출하는 것 자체에 주안점을 두는 정치세력화운동, 노동자의 독자적인 입장과 요구, 투쟁을 전면에 내걸지 않는 그런 정치세력화운동에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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