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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노동자권력, 파리꼬뮌
파리꼬뮌의 배경
1851년에 나폴레옹 3세(‘루이 나폴레옹’이라고도 함. 나폴레옹의 조카)의 쿠데타와 함께 1848년 혁명의 시대는 끝이 나고 말았다. 노동자혁명으로 전진하는 과정을 거쳤던 1848년 혁명은 소부르주아지의 배신으로 결국 파산해버린 것이다. 나폴레옹 3세도 박정희처럼 18년 동안 집권했는데, 이 정권은 프랑스에 경제적 파탄뿐만 아니라 국가적 굴욕도 가져 왔다. 그러나 물밑에서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1866년에 파리에 살았던 180만의 총인구 중 57%가 공업, 12%가 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체 시민의 60% 이상이 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하층 고용인이었다. 한마디로 파리는 당시에 전통적인 노동자 도시였다. 비록 이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대공장, 대회사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마찌꼬바 같은 소규모 작업장에서 일하는, 수공업자 기질이 강한 노동자들이었지만 말이다. 당시 이 노동자들의 임금은 19세기 전반과 비교해볼 때 약간 상승해 있었다. 하지만 불황이 닥치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해고했다. 도시에는 위생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아 전염병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병들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또한 프랑스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노동자의 임금상승 폭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본가의 이윤은 하늘높이 솟구쳤다. 또한 인구가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파리를 개조했는데, 이 개조의 결과 도심에 살고 있던 노동자들은 변두리로 쫓겨나야 했다. 변두리에서 작업장이 있는 도심까지 걸어가기 위해 노동자들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야만 했다.
나폴레옹 3세는 자기 삼촌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헛된 망상을 품고 있었다. 그 결과 독일에서 비스마르크가 국력을 차근차근 키운 다음 전쟁을 유도했을 때 거기에 걸려들고 말았다. 나폴레옹 3세는 기고만장하여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를 외치며 군대의 선두에 서서 독일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프랑스 군대는 비스마르크의 잘 훈련된 군대에 여지없이 격파 당했고,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군대와 함께 독일인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전제주의 나폴레옹 정부의 군대가 붕괴되자 이 틈을 타서 파리에 공화제 정부가 수립됐다(제3공화정). 이 정부는 독일에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으나 독일의 요구조건이 너무나 굴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전쟁을 계속할 것을 결의했다. 독일군은 장기간 파리를 포위했고, 결국 독일 프로이센 국왕을 카이저라고 칭하는 연합독일제국이 베르사이유 궁전 루이 14세의 호화로운 홀에서 1871년 1월에 선언됐다. 베르사이유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고 경축 행사가 떠들썩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 파리 노동자민중은 슬픔과 고통과 견딜 수 없는 굴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결국 1871년 3월에 ‘파리꼬뮌’이 등장했다. 파리꼬뮌은 독일의 침략에서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자본주의 착취 사슬에서 노동자들을 해방시켜야 하는 2중의 임무를 지니고 있었다.
파리꼬뮌의 역사적 의의
파리꼬뮌은 멀리 18세기 말의 프랑스대혁명에서 영감을 얻었다. 프랑스대혁명 때 꼬뮌(인민자치위원회)이 혁명무대에 등장한다. 도시 최하층민의 지지를 받았던 꼬뮌은 점점 더 대담해지면서 프랑스 자본가계급의 공식 대표들과 권력을 다투었다. 이 혁명꼬뮌은 지배계급의 법 테두리를 뛰어넘어 대담하게 투쟁했으며, 혁명 속에서 새로 등장했지만 혁명이 제기한 문제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단지 사건을 기록하기만 하던 입법의회, 국민공회 같은 조직에 저항했다. 1871년의 파리 노동자계급은 1790년대의 혁명꼬뮌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파리꼬뮌은 세계 최초의 노동자권력이었다. 파리꼬뮌 이전에는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사상이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꼬뮌은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드러내주었다. 먼저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낡은 상비군, 경찰, 관료제를 그대로 둔 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는 없었다. 자본가권력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박살’내서 ‘제거’해야 했다. 거대한 구렁이처럼 사회의 몸뚱이를 칭칭 휘감으며 그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이 기생적 반동집단을 노동자들이 그대로 둔 채 이용하여 노동해방을 쟁취할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확신했다.
다음으로 노동자계급은 기존 권력과는 완전히 다른 자기 자신의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냈다. 꼬뮌 전사들은 상비군을 폐지하는 대신 노동자민중의 민병대를 건설했고, 소수 지배자들의 관료제 정부 대신 다수 노동자민중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노동자민주주의 권력을 세웠다. 이 새로운 권력에서는 노동자들이 직접 공무원을 선출하고,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었으며, 공무원에게 일반 노동자의 평균임금만을 지급했다. 이로써 사회로부터 나왔지만 사회로부터 분리돼 사회 위에 군림하는 한줌 지배자들의 권력은 사라졌으며, 사회와 혼연일체가 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권력이 탄생했다. 여기에서도 노동자민중의 대표기관은 있었지만 이 기관은 국회와 같은 자본가들의 잡담가게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위해 의사를 ‘결정’하고, 직접 ‘집행’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대표자들을 대중이 ‘소환’할 권리를 갖고 있는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기관이었다.
한 마디로 파리꼬뮌은 노동자계급이 혁명을 통해 자본가권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세운 세계 역사상 최초의 사례였으며,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사회적 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최종적으로 발견된’ 정치형태였다. 그렇게 때문에 마르크스는 ≪프랑스내전≫에서 “꼬뮌은 [기존] 국가의 결정적 부정이었으며, 따라서 19세기 사회혁명의 개시였다. 그러므로 파리에서 그 운명이 어떠하든 꼬뮌은 세계 일주를 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적중했다. 파리꼬뮌은 1905년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1917년 10월 혁명으로 전 세계에 위용을 드러낸 러시아 소비에트와 그 뒤를 이은 독일의 레테, 이탈리아의 공장평의회, 칠레의 코르돈 등으로 자태를 바꾸며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전진이 있는 곳마다 다시 등장했다.
파리꼬뮌은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혁명적 정책을 발표했고 하나씩 실행해 나갔다. 야간노동 폐지, 공장의 벌금제 폐지, 교육에서 종교적 요소 제거, 무상교육, 최근의 주택임대료 전액 면제, 프랑스 군국주의의 상징인 나폴레옹 동상의 파괴, 인터내셔널 독일인 회원의 꼬뮌의원 선출, 전쟁배상금은 전쟁 당사자들이 지불할 것 등등. 이런 조치들은 파리꼬뮌이 착취받고 억압당했던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의 이해를 대변하며, 자본가, 정부 관료, 성직자 지배층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 싸우며, 노동자 국제주의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 정책들에 대해 프랑스와 유럽의 노동자인민은 뜨겁게 환호했고, 지배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몸을 벌벌 떨어야 했다.
두려움에 떤 것은 개량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혁명은 개량주의자들이 수십 년 동안 약속했지만 거의 확보하지 못했던 개량들을 단 하루 만에 쟁취해버렸고, 그것을 넘어서서 단숨에 전진해버렸기 때문이다. 개량은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이라는 진리가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파리꼬뮌이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본질적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혁명이 탄생시킨 정부는 바로 ‘노동자계급 정부’였던 것이다.
오류와 한계
꼬뮌 전사들은 크게 보면 몇 가지 실수 때문에 승리의 열매를 딸 수 없었다. 첫 번째는 혁명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중간에서 멈추었던 것이다. 그들은 ‘수탈자들을 수탈’하는 데까지 과감하게 나아가지 못했다. 가령 프랑스 자본주의의 중추신경인 프랑스 은행을 접수하지 않았다. 그들은 머뭇거리며 소액만을 차압했다. 결국 이 은행은 반동 정부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꼬뮌이 프랑스 은행에서 가져온 돈은 총 2천만 프랑이었지만, 같은 기간에 베르사이유 반동정부는 2억 5천 8백만 프랑을 빌려갔다.
두 번째는 적에게 지나치게 아량을 베푼 것이었다. 그들은 적을 쳐부수는 대신에 도덕적으로 설득하려 했다. 그들은 내전에서 직접적 군사작전의 의의를 과소평가했다. 그래서 파리를 장악한 다음 곧바로 적들의 소굴이었던 베르사이유로 진격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적들에게 사악한 세력을 모아 5월의 ‘피의 대학살 주간’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이런 약점은 넓은 시야와 전략적 계산능력이 부족했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파리 시민들은 ‘피의 대학살 주간’을 앞두고도 이상할 정도로 축제에 빠져 있었다. 바스티유 광장에는 과자를 파는 노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회전대는 시끄럽게 돌았으며, 곡예사가 큰 소리로 외치는 등 활기찬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미술관은 언제나 공개되었고 밤이 되어도 극장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콩코르드 광장에 잔디를 심는 작업에 수많은 시민이 참가했다. 혁명은 억눌렸던 자들의 축제이며, 이런 축제 속에서 인민은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으므로 축제가 벌어지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축제에 지나치게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꼬뮌의 전사들은 혁명을 어떻게 더 철저히 밀어붙여야 하는지, 반혁명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등 혁명 전체의 명운이 걸린 문제들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고 부분적이고 직접적인 생활상의 만족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었다.
세 번째는 애국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독일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국가방위 정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정부는 ‘국가배신 정부’이며, 파리 노동자계급을 억누르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었다는 점이 오래 지나지 않아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 자본가정부는 파리꼬뮌을 파괴하기 위해 독일 지배계급과 굳게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이것은 러시에서 1917년에 자본가 임시정부가 다가오는 러시아 노동자혁명을 압살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자본가정부와 손을 잡고 제국주의 전쟁을 계속했던 것과 완전히 맥락이 같다. 그런데 파리 노동자계급은 애국에 눈이 멀어 자국 자본가계급의 반동적 성격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그 결과 블랑키 같은 혁명가들조차 자신의 신문 제목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처럼 자본가들의 구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구호를 내걸었다. 파리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착취 사슬을 끊기 위한 노동자해방 투쟁에 전력을 다해야 하며, 노동자해방을 통해서만 민족적 억압의 사슬도 끊을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 말고도 다른 한계가 있었다. 가령 파리꼬뮌은 다른 도시의 노동자민중 및 농촌의 농민들을 굳건한 동맹세력으로 조직하지 못했다. 그 결과 파리는 고립됐고, 적들은 파리꼬뮌을 파괴시킬 수 있었다.
파리꼬뮌은 패배했지만 러시아혁명은 성공했다
파리꼬뮌의 패배로 유럽 노동자계급의 전위가 파괴되고 말았다. 자본가계급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에 의해 노동자계급의 모든 조직이 파괴되었고, 가장 헌신적인 지도자들이 학살당했다. 프랑스 노동자계급이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 이상의 시간이 불가피하게 필요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국제적 계급이다. 이 점은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자리를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대신하여 더 멀리 전진함으로써 뚜렷하게 입증됐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파리꼬뮌의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들은 파리꼬뮌의 패배로부터 충분히 배워 어떻게 혁명을 더 멀리, 더 철저하게 밀어가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레닌과 트로츠키 같은 러시아의 위대한 노동자계급 혁명가들은 파리꼬뮌의 경험을 여러 번에 걸쳐 깊이 연구했으며 교훈을 도출해 러시아 노동자계급에게 되풀이해서 가르쳤다. 그 결과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10월 혁명 당시 50년쯤 전에 파리 노동자계급이 저질렀던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다음의 기록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봉기의 주요 작전은 오전 2시에 시작되었다. 무장노동자나 수병이 핵심이 되고 인민위원의 지도 하에 소규모 전투부대들은 동시에 또는 일정한 순서에 따라 철도역, 발전소, 탄약고, 식품점, 급수시설, 드보르초비 교량, 전화교환소, 국영은행, 대형 인쇄소 등을 점령했다. 전신국과 우체국은 완전 장악되었다. 모든 곳에 믿을만한 경계병들이 배치되었다. ··· 전화교환국 점령과 거의 동시에 약 40명의 해군수비대 수병들이 예카테리닌스키 운하에 위치한 국영은행 건물을 점령했다. 수병들은 ‘신속히 움직이며’ 건물을 점령했다. 국영은행의 점령은 어느 정도 상징적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볼세비키당 중핵들은 1871년 파리꼬뮌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비판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꼬뮌의 지도자들은 국영은행에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10월 25일 훨씬 전에 다수의 볼세비키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가 국가기구의 가장 신성한 기관들이 점령되었다는 소식은 수도의 지구들로 급속히 퍼져 열광적인 환희의 물결을 일으켰다.”(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하권, 280~287쪽)
물론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적에 대한 관대한 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레닌과 트로츠키 같은 혁명의 지도자들은 ‘대담하라, 대담하라, 더욱 대담하라’고 외치며 적에 맞서 단호히 투쟁하도록 가르쳤다. 이렇게 대담하게 혁명을 전개했기에 10월 혁명은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고, 국내외 자본가들이 힘을 합쳐 반혁명 내전을 벌였을 때에도 확실하게 격퇴시킬 수 있었다. 한편 이 대담성은 1917년 4월과 7월 시기처럼 혁명의 기운이 채 무르익지 않은 시기에 섣부른 봉기를 일으키려는 모험주의 경향에 맞서 ‘참을성 있게 선전 선동하라’고 요구하며 ‘정치적 소방수’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혁명적 신중함과 맞물려 있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농민들과도 굳건한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다수가 ‘군복 입은 농민’들이었던 병사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으며, 농촌으로 파고들어가 노동자계급 혁명만이 농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음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 10월 혁명을 성공시키고 장기간 사수할 수 있었다.
노동자당 건설의 사활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파리꼬뮌이 실패한 반면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핵심적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객관적 요인의 차이를 간과할 수는 없다. 가령 1871년 당시 파리에 비해 1917년 러시아는 자본주의가 훨씬 더 발달해 있었으며, 노동자계급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더 강했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수많은 자본주의 강도국가들이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와 자국에서 터져 나오는 노동자 투쟁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기에 러시아 노동자 정부에 화력을 충분히 집중시킬 수 없었을 때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객관적 요인 못지않게 중요한 것 또는 더욱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랜 투쟁 속에서 단련되고 정치적으로 성숙한 노동자당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파리꼬뮌에서도 블랑키파, 프루동파, 맑스주의파 등 여러 혁명세력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블랑키파, 프루동파는 심각한 사상적, 조직적 약점을 갖고 있었고, 맑스주의파는 객관적으로 영향력이 너무 취약했다. 이런 조건 때문에 파리꼬뮌은 멀리 보고 날카롭게 계산하는 ‘전략적 판단’ 없이, ‘혁명적 단호함’이 부족한 상태로 혁명을 밀어가야 했고 결국 수만 명이 학살당해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쓰라린 패배를 당해야 했다. 하지만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근 20년 이상의 피의 계급투쟁을 통해 단련된 볼세비키 당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류를 최소화하며 혁명을 당당히 성공시킬 수 있었다. 파리꼬뮌만이 아니라 1917년 10월 혁명 전후로 일어난 수많은 혁명들(가령 독일혁명, 이탈리아혁명, 중국혁명, 프랑스혁명, 스페인혁명 등)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반면, 러시아혁명이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숙한 노동자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볼세비키당 보다도 더 단련되고, 더 성숙한 노동자당을 건설해야 한다. 지금의 세계 자본가계급은 1917년 10월 혁명 당시의 세계 자본가계급보다 더 오랜 계급투쟁의 경험을 가져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혁명을 저지할 수 있는 더 막강한 능력을 갖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어느 곳에서나 크게 똬리를 틀고 있으며,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닌 노조관료제를 통한 노동자통제가 대표적이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본가 언론방송의 세뇌공작, 부르주아 교육기관을 통한 지배이데올로기 주입, 약간이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위협이 될 경우 서슴지 않고 자행되는 폭력경찰 투입과 구속, 수배 조치 등등.
이런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매일 매시간 노동자들에게 계급적 요구와 투쟁전술을 제기하고, 크고 작은 투쟁을 진두지휘하며, 그럴듯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외교적 선언 뒤에 숨어있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날카롭게 폭로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까발려내고 노동자해방 세상의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연히 이런 정당은 계급투쟁의 단단한 무기가 되기 위해서 대단히 규율 잡힌 결사체, 아주 민주적이면서도 응집력 있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이 정당은 파리꼬뮌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운 역사적 교훈을 러시아 노동자계급에게 넘겨준 러시아 볼셰비키 당처럼, 후대의 노동자계급이 선배들의 계급투쟁을 뛰어넘어 승리를 향해 돌격하도록 돕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경험의 전달벨트’이기도 하다. 이런 노동자당 건설의 사활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동자권력의 사상을 복원하여 널리 전파시키자
위대한 파리꼬뮌의 경험은 또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우리는 ‘노동자권력’ 사상을 당당히 복원하여 광범위하게 퍼뜨려야 한다. 한국에서 80년대에는 ‘민중권력’, ‘민주정부’ 따위의 민중주의적 대안만 널리 퍼졌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변화 이후에 혁명적 민중주의 운동은 급속히 허물어졌다. 민주노동당 정치관료, 민주노총의 노조관료로 전락한 과거 민중주의 운동의 주류세력은 자본주의의 개혁만을 열심히 부르짖을 뿐이다. 이들에 반대하는 좌파 세력들의 대부분도 노동자운동의 전투성을 고양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노동자투사들에게 노동자해방과 노동자권력의 전망을 제시하는 작업은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투사들은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극심한 고용불안, 찢어질 듯한 가난, 숨 막히는 노동통제에 불만을 품고 투쟁에 떨쳐 일어서지만 원대한 목표와 꿈을 갖지 못한 채 싸우다 패배를 거듭하며 좌절과 사기저하에 빠지고 있다.
하지만 다음 글이 보여주듯이 치열하게 싸우는 노동자들일수록 그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우리에게는 하루 속히 꼬뮌 강령을 작성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 위험이 크면 클수록, 강령도 필요한 것이다. ··· 포탄이 파리에 떨어지고 있을 때, 전사들은 그들이 목숨 바쳐 지킬 만한 공화국의 개념을 꼬뮌에게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파리꼼뮨≫, 지양사, 125쪽) 물론 지금 시기가 파리꼬뮌 때처럼 혁명의 시기가 아니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고용안정 쟁취, 민주노조 사수,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 3권 쟁취 같은 당면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의의를 정확히 제시하는 것은 항상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와 함께 싸우는 노동자투사들에게 한 사업장의 투쟁은 전체 계급투쟁의 한 부분이며, 발전해 가면 결국 총노동 대 총자본의 격돌로 나아갈 것이며, 여기에서 승리해 노동자권력을 통한 노동자해방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필요성은 조금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노동해방 투사들이 언제 어떤 시기든 전면에 내세워야 할 기본 과업이다.
노동해방 투사들은 노동자계급이 마침내 쟁취해야 할 노동자권력과 노동해방이란 무엇인지를 파리꼬뮌, 러시아 소비에트와 같은 살아 있는 노동자 해방운동의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아직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노동자계급의 원대한 목표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는 노동자 투사들만이 자본과 정권의 극심한 탄압, 노조관료의 교활한 투쟁파괴 책동, 후진대중들의 투쟁대열 이탈이 벌어지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굽힘없이 전진할 수 있다.
파리꼬뮌 전사들은 피를 강물처럼 흘리며 쓰러졌다! 즉결처형 2만 5천 명, 연행과 구속 4만 5천 명, 사형선고 93명. 산더미 같은 시체들이 여기저기에 방치됐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여름의 강한 햇살에 냄새를 풍기며 썩어갔다. 어느 학교에 쌓인 시체더미는 자그마치 가로 100m, 높이 3m의 벽을 만들 정도였다. 죽지 않은 전사들에게도 남태평양 섬으로의 유형과 강제노동, 망명지의 굶주림과 소외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꼬뮌 전사들은 온몸을 다 바쳐 ‘노동자권력의 현실적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파리꼬뮌을 통해서 노동자권력 사상, 노동해방 사상은 비로소 ‘이론의 땅’에서 ‘실천의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파리꼬뮌 전사들의 정신은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 러시아 볼세비키 전사들의 뇌리에 박혔고, 러시아 노동자혁명을 성공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이 이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 투사들에게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파리꼬뮌 전사들은 죽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자 해방정신은 더욱 또렷이 우리의 뇌리에 살아 부활하고 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첫 번째 바통을 이어받아 진군했으나 스탈린 관료집단의 반혁명에 의해 최종 승리를 거머쥐지는 못하고 퇴각해야만 했다. 그러나 21세기 노동자계급은 이 바통을 넘겨받아 반드시 승리의 고지에 도달할 것이다. 파리꼬뮌은 부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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