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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전쟁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국제정책인 제국주의 전쟁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낳을 수밖에 없으며, 그 전쟁은 틀림없이 한 줌의 ‘선진’ 열강이 저지르는 후진 약소국가들에 대한 국가적 억압과 약탈 및 교살 격화를 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제국주의 전쟁문제는 1914년 이래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의 정치에서 가장 중심적인 문제였다. 이 문제에 수억 인민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다.”(레닌, <10월 혁명 4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레닌이 85년 전에 쓴 이 글은 올해 여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을 이해하는 데, 더 나아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최근의 전쟁들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용하다.
약 1,200명의 사망자, 3,000명 이상의 부상자, 레바논 남부의 학교, 병원을 비롯한 제반 주거 시설의 80% 파괴를 낳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은 공식적으로는 끝났다. 하지만 휴전은 그야말로 잠시뿐이다. 소규모 전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더 크고, 더 격렬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 자체가 원래부터 미 제국주의의 거대한 중동전략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그리고 제국주의 침략전쟁은 미국의 중동전략과 그 뿌리인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중동과 세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연대투쟁만이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킬 수 있다.
미 제국주의의 중동전략
이스라엘의 레바논전쟁은 미 제국주의의 중동전쟁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였다. 따라서 우선 큰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동은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특히 미국에게는 더욱 더 전략적 지역이다. 왜냐하면 중동에는 세계 석유의 60퍼센트, 세계 천연가스의 30퍼센트나 있기 때문이다. 이미 1945년에 미국 국무부는 중동의 유전을 “전략적 영향력의 엄청난 원천이며, 세계역사상 가장 거대한 노획물의 하나다”라고 말했다. 에너지는 경제에서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에너지를 둘러싼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경쟁은 대단히 치열하게 벌어진다.
가령 지금 유럽은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량의 1/3을 소비하는데, 미국이 러시아를 거치지 않는 새로운 중앙아시아-유럽 파이프라인(BTC 송유관)을 건설하려고 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파이프라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금 ‘제2의 중동’이라고 불리는 카스피해 석유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카스피해에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BTC(아제르바이잔의 바쿠 → 그루지야의 트빌리시 → 터키의 세이한) 송유관 공사가 미국 주도로 39억 달러가 투자돼 지난 5월에 시작됐다. 클린턴이 1999년 BTC 송유관 건설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공사의 어려움과 고비용 때문에 논란이 됐다. 하지만 미국은 에너지 수송루트를 다양화하고, 무엇보다 러시아 송유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BTC 송유관 건설을 밀어붙였다. 미국은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중국의 진출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카스피해 인근의 아제르바이잔 유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현재 약 20%를 그곳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터키와 지난 6월 BTC 송유관을 확장시켜 시리아와 레바논 영토를 지나 이스라엘에 이르는 송유관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런 자본가계급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이번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 이면에 숨어 있는 진정한 동기였다.
중동에서 미국의 야심은 절대 BTC 송유관을 건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중동을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쥐려 한다. 9․11테러를 이용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카스피해 유전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카스피해 인근의 모든 요충지에 군사기지를 지어놓았다. 그리고 이라크 침략은 무엇보다도 세계 2위의 산출량을 자랑하는 이라크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카스피해와 중동 석유 둘 모두를 끼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이란이다. 그래서 미국은 어떻게든 이란을 공격하려 해왔다. 미국은 이번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을 통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한 다음, 시리아와 이란을 장악하겠다는 큰 구도를 그리고 있었다. 미국이 이란을 직접 공격할 경우,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은 이란 공격 전에 먼저 헤즈볼라를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비난여론이 높은데도 이스라엘을 계속 감싸고, 휴전을 늦춘 것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점령하는 것이 그만큼 미국으로서는 사활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휴전을 하루 늦출 때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하루 3~40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추가로 발생했지만, 미국은 한 달 동안이나 휴전을 미뤘다. 미 제국주의에게 중요한 것은 중동 노동자민중의 생명이 아니라 중동의 석유였고, 또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스라엘에 더 많이 팔 수 있는 자국의 군사무기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보면, 이렇게 미국이 중동을 장악하려고 혈안인 것은 단순히 부시정부가 ‘우파’ 정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 제국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윤율이 끊임없이 하락하면서 경쟁이 더욱 격화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에 더 깊은 뿌리를 박고 있다. 쇠퇴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반영해 제국주의 강국들이 세계 곳곳에서 불꽃을 튀기며 경제적, 외교적으로 충돌하고 있다(가령 북핵과 대만문제를 둘러싸고는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에서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 자본과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경쟁이 첨예해질수록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또한 강화되며,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자본가계급에 종속시키기 위한 책동 또한 날로 증폭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중동전쟁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세계 자본가계급이 세계 노동자계급을 상대로 벌이는 계급투쟁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전쟁
전쟁은 ‘또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다. 따라서 전쟁을 이해하려면 전쟁을 벌인 두 당사자들의 ‘정치’(국내외 정책의 총체)를 반드시 역사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먼저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인가? 현재 문제가 되는 이스라엘 지역은 기원전 63년에 로마에 멸망당한 유대국이 있었던 자리다. 로마의 지배 아래서 유대인들은 대거 추방당하거나 서기 70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해 아랍화됐다. 그 이후 이 지역에서는 주로 아랍 민족이 2,000년 가까이 살아왔다. 소규모의 유태인들은 인구의 압도적 다수인 이슬람인들 사이에서 최소한 1,500년 간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영국은 1차 세계 대전 때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한 편에 섰던 터키를 약화시키기 위해, 아랍 진영에 터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면 전 아랍 지역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맥마흔 협정). 하지만 영국은 그 뒤 이와 정반대로 발포어 선언을 발표했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부장관 발포어는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태인국가 건설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발포어 선언은 부유한 유대인이 많은 미국을 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자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비롯한 제국주의 점령지를 지키는 데 시온주의 정착자들을 동맹세력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시온주의란 유대인들의 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을 뜻한다). 미국은 이런 발포어 선언을 지지했다.
영국이 1917년 발포어 선언을 해 유대인 이주를 합법화하고 1922년부터 이 지역을 위임통치하자 유대국가 창설을 위한 시온주의 운동이 본격화됐다. 1917년 당시 유대인은 이 지역 인구의 10%에 불과했는데 수천 년 동안 거주해 왔던 아랍인들에게 영국의 이런 정책은 어처구니없는 처사였다. 이스라엘은 아랍인들의 땅에서 아랍인들을 쫓아내면서 등장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유대인 정착촌’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했다. 한편 당시에 영국, 캐나다, 미국 등 소위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유대인 난민들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대단히 꺼렸으며, 그 결과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같은 유대인 억압을 피하려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민주적’ 제국주의 국가들의 더러운 위선을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국경선을 넓히기 위해 국가테러와 전쟁을 지속했다. 1967년에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 고원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 지구를 점령했다. 1978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를 침공했고, 1982년에는 레바논 영토의 반 이상으로 점령지를 확대했다. 이스라엘은 2000년에 후퇴할 때까지 레바논을 계속 점령한 채 저항세력과 전투를 벌였다.
이스라엘은 미국이나 자본가언론이 위선적으로 떠들어대듯이 ‘중동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가 절대 아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점령한 다음 43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추방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계속 살고 있는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정치적 무권리, 끔찍한 가난, 실업, 강제추방의 위협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좁은 빈민굴에 불과한 가자지구에서는 전체 면적의 1/3을 6천 명의 유태인과 이스라엘 주둔군이 차지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2/3에서는 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민중이 좁은 공간에 갇혀 힘겹게 지내고 있다.
이스라엘 자본가계급은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에게도 저임금, 사회보장 감축, 실업, 높은 세금, 전쟁위기 등을 강요해 왔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이슬람인인가 유태인인가를 막론하고 모든 노동자들과 민중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며 군홧발로 짓밟고 있는 자본가계급의 테러독재 국가다.
이런 이스라엘 뒤에는 항상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건국 초기부터 중동의 전초부대로 이용해왔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막대한 중요성을 가진 중동지역을 통제하는 데서 이스라엘을 전략적 동맹자로 삼아 왔다. 그 결과 미국은 전체 해외원조의 40%를 이스라엘에 쏟고 있는데, 이런 원조의 대부분은 결국 미국으로부터 이스라엘 정부가 무기를 구매하는 데 쓰인다.
다음으로 레바논은 어떤 나라인가? 레바논 지역은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았다. 오스만 터키 치하에서는 중동지역 상당 부분이 어떤 국경도 없는 자유지역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원을 효과적으로 약탈하고, 주민들을 보다 쉽게 통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국경선을 그었다. 과거에 여러 종교 분파들은 서로 평화공존했다. 그런데 1920년에 위임통치하던 프랑스가 시리아 분할정책의 일환으로 기독교도가 많이 거주하던 베이루트를 중심으로 레바논을 따로 만들었다. 그리고 레바논에서는 ‘분할통치’를 위해 기독교인들에게 특권을 제공하면서 레바논의 여러 종교분파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 가령 프랑스 제국주의는 기독교인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대통령은 기독교인이 맡는다(대신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는다)’고 레바논 헌법에 아예 못 박아 놨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레바논의 끔찍한 내전이 단순히 종파들 간의 ‘종교분쟁’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과 분할통치로부터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레바논과 시리아는 일련의 반란과 총파업을 통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그리고 레바논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풍부한 무역과 은행의 중심지가 되었다. 레바논은 ‘중동의 스위스’, ‘중동의 홍콩’으로 불렸다. 그 결과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법칙인 계급양극화의 확대가 레바논에서 나타났다. 그 결과 자본가들의 부는 하늘높이 쌓였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총 10년간 총리를 했고, 테러당해 죽은 하리리는 재산이 30억 달러(약 3조원)가 넘고, 많은 금융회사와 호텔, 해외에 투자한 유가증권, 베이루트의 일간지 하나와 국영TV네트워크의 1/3을 통제한 엄청난 갑부였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자들의 빈곤이 증대하고, 실업이 늘어났으며, 노동조건이 악화됐다. 사회복지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길게 늘어선 판자촌들과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난민들의 캠프들이 소위 도시의 ‘빈곤벨트’를 형성했다. 이런 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적 화약고가 되었다. 이런 사회적 화약고는 1970년대 초중반 가난한 노동자민중들의 전례 없는 시위란 형태로 터졌고(이때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합세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다시 터지게 될 것이다.
레바논에서 최초의 본격적 내전은 1958년에 일어났다. 기독교계 대통령이 친서방정책을 펴자 이슬람 세력이 반발해, 1958년 5월 정부 지지파와 반대파가 시가전까지 벌였다. 레바논의 정치, 사회적 불안정은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들어와 베이루트와 남부지역에 난민 캠프를 설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1970년 9월에 요르단 국왕이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자국의 정치,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킨다며 대량학살하자, 아라파트를 비롯한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기간요원들이 레바논으로 피신해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75년 4월 베이루트 교외에서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아이들이 가득 탄 버스를 기독교 우파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습격해 27명을 죽이자, 이걸 계기로 1976년 11월까지 내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약 4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넘게 다쳤다.
내전 기간에 시리아는 사태를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국경을 넘어 개입했다. 그런데 실제 목적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레바논을 통제하는 데에서 이스라엘에 선수를 뺏기지 않는 것. 둘째 PLO와 레바논 좌파의 승리가 이들의 지지 기반이 되고 있었던 중동지역 전체의 가난한 노동자민중의 자신감을 고취해서 지배계급에 맞선 봉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 따라서 시리아는 1년 정도 지역의 평화를 추구하는 중립적 중재자인 척했지만 결국 이스라엘과 미 제국주의, 레바논 기독교 우파 팔랑헤당과 한편이 되었다.
시리아가 레바논에 개입하자 이스라엘은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테러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1978년 3월 레바논을 침공했고, 1982년 6월에는 육해공을 통해 전면 침략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집중포격을 퍼부어 서베이루트와 모든 도시의 이슬람인․팔레스타인 빈민가를 철저히 황폐화시켰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완전히 몰살시키려 했다. 이스라엘 비행기들이 매일같이 폭격을 퍼부었다. 사브라와 차틸라의 난민 캠프들에서, 서베이루트에 인접한 아파트 주거단지에서 시체가 날마다 쌓여갔다. 심지어는 이런 맹공격을 당해 죽거나 부상당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던 두 개의 병원과 학교마저 폭격당했다.
이제 PLO는 거의 완전히 패배해, PLO의 수반 아라파트와 그의 측근들은 튀니지로 망명해야 했고, 남아 있는 PLO군대는 7개의 아랍국가들로 흩어져야 했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동맹자인 기독교 우파 팔랑헤당의 인물을 대통령으로 추대해 당선시켰다. 하지만 그는 당선된 지 한 달도 안 된 1982년 9월 14일에 테러로 죽었다. 그리고 그 직후인 9월 15일 이스라엘은 기독교 우파 팔랑헤당과 손잡고 사브라와 차틸라의 난민 캠프에 있던 3천 명을 학살했다.
결국에는 여전히 레바논의 절반을 이스라엘 군대가 점령하고 있던 상태에서, 9월 말에 미군, 프랑스군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평화유지군’(실제로는 또 하나의 점령군)이 ‘이스라엘의 철군을 감독하고, 평화를 유지한다’는 따위의 명목으로 레바논에 들어왔다. 미군과 다른 다국적군들은 1984년 자살 폭탄테러로 287명이 죽은 다음에야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그러고 나서는 시리아가 오랫동안 레바논 정부를 좌지우지했다. 미국은 이런 시리아의 레바논 지배를 묵인했는데, 그것은 레바논을 정치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지역 대리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리아 정부는 1990년 아버지 부시의 1차 이라크 침략 때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일한 주요 아랍지도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레바논 내전은 1990년에야 겨우 끝났다. 내전으로 총 7만 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장 15년간 지속된 레바논 내전은 팔레스타인 다음으로 중동에서 제국주의 간섭, 그리고 이 간섭을 불러온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을 향한 탐욕이 빚은 가장 끔찍한 사례다. 내전의 씨앗은 프랑스 제국주의가 뿌렸고, 이를 발아시킨 것은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가난한 레바논인들(주로 이슬람인)을 적으로 간주한 미 제국주의․이스라엘․레바논 기독교 우파의 동맹이었다. 그리고 이 동맹에는 지금은 미국 및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시리아의 지배계급도 오랫동안 함께 참여해 왔다. 결국 중동에서 전개되고 있는 야만적인 사태들의 배후에는 크고 작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의 패권과 야심이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번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은 이스라엘과 미, 영 등 제국주의 강국들이 주장하듯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 또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보복’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미 제국주의의 첨병’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밝혔듯이 미국․이스라엘의 중동 전체(특히 이란․시리아)에 대한 전쟁의 일부였다.
‘신의 당’이란 뜻의 헤즈볼라는 1982년 6월에, 레바논을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에 저항하던 레바논 시아파 운동들이 재편되면서 만들어졌다. 이 당은 시리아 정권과 이란 정권의 지원을 받았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한 반동적 정치강령을 갖고 있다. 이 당은 결코 노동자계급과 같은 방향에 서 있지 않은 또 하나의 반동정당이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맞선 투쟁에서는 비타협적으로 싸워 왔다. 그것이 그들을 지지하는 이란-시리아 지배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었고, 그들의 승리가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반동적 노선에 기반하고 있다는 결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란의 자금 지원을 통해 4개의 병원, 12개의 의원, 12개의 학교, 2개의 친환경농업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비록 그들은 본질적으로 볼 때 가난한 주민들을 대변하는 세력이 아니며, 단지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는 수단으로 그것을 당분간 이용할 뿐이지만, 이것은 남부 레바논의 가난한 주민들로부터 그들이 지지를 얻고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7%가 헤즈볼라의 무장투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과 그 뒤에 있는 미국은 헤즈볼라를 무력화해야 레바논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고, 그걸 발판으로 시리아와 이란으로까지 지배를 확장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올해 6월 27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해 발전소와 교량을 파괴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자 남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폭격에 반대하며 이스라엘 병사 2명을 잡아 포로로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 동시에 두 개의 전선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므로, 전쟁의 성격은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가 아니라 전쟁을 벌이는 두 당사자들이 오랫동안 어떤 정책을 펼쳐 왔는가를 통해서만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모두 이스라엘이 미 제국주의의의 전초부대로서 오랫동안 중동에서 펼쳐왔던 제국주의적 침략정책의 연장이다. 따라서 전쟁의 성격은 명확하다. “제국주의 침략전쟁!” 당연히 전 세계 노동자계급은 이런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했다.
물론 우리는 헤즈볼라의 반동적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강령을 조금도 지지하지 않은 채, 아울러 헤즈볼라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지원하는 이란․시리아 반동정부와 이스라엘 반동정부 사이의 중동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더 큰 배경을 망각하지 않은 채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을 반대해야 한다.
‘평화유지군’의 계급적 성격
노무현정권은 지금 이라크파병에 이어 레바논파병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레바논에는 ‘UN 평화유지군’이란 이름으로 파병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UN 평화유지군’은 레바논에서 절대 ‘평화’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휴전이 성립된 뒤 한 달 동안 1백여 차례나 휴전협정을 위반하며, 매일 밥 먹듯이 레바논 영토를 침범해 왔는데도 UN군은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이미 1982년에 레바논에 파병됐던 UN 평화유지군을 통해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엄밀히 말해 UN 평화유지군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목표를 대신 실현해주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 점령군’일 뿐이다. 이것은 UN 평화유지군의 핵심목표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에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록 미국이 이 평화유지군에 참가하지 않지만, 미국은 이 평화유지군 창설에 적극 찬성했으며,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와 터키 등이 이번 평화유지군 파견에 적극적인 것은 그들이 모두 과거에 레바논을 식민지로 지배한 전력이 있는 국가들로서 레바논을 다시 자기 손아귀에 쥐고 주무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가정부가 레바논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한 포장을 씌울지라도 이라크파병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이스라엘 제국주의의 점령을 도와 그 대가로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이런 레바논파병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대안
먼저 종교분쟁, 인종갈등이 아니라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항상 노동자계급과 피억압민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분할 통치해왔다. 레바논에서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지금 이라크에서는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을 분할통치하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피억압민중이 제국주의 세력의 분할통치 전략에 휩쓸렸을 때, 그 결과는 그야말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게 끔찍하게 학살당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히틀러 못지않은 학살자가 되고, 레바논에서 오랫동안 평화공존했던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이라크에서 종파 간 내전 직전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그 구체적 사례들이다. 이에 덧붙여 중동의 새끼 지배자들(가령 이란의 근본주의 회교 지배자들)이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중동의 전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종교, 인종, 민족의 장벽을 넘어 중동노동자 전체가 계급적으로 단결해서 제국주의 침략자들만이 아니라 중동 자본가계급 전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실제 이렇게 계급적으로 단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레바논에서는 빈부격차가 대단히 크다. 프랑스와 미국 은행들이 최대주주로 있는 외국계 은행들이 은행자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런 은행자산은 레바논 GDP의 세 배나 된다. 레바논 정부는 외국 자본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삭감하기 위한 반노동자 정책을 도입했다. 이렇게 해서 레바논 자본가계급의 부가 솟구쳐 오르는 반면, 레바논의 노동자민중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슬럼가에 살고 있고, 병원과 학교 등이 턱없이 부족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레바논의 가난한 노동자민중이 사는 지역 옆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살고 있다. 또한 레바논에는 건설, 무역, 요식업 등에서 최저임금의 일자리라도 찾기 위해 몰려들어온 시리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70만 명이나 있다.
레바논의 노동자민중, 팔레스타인 난민, 시리아 이주노동자들이 국적과 종교를 떠나 노동자계급의 깃발 아래 하나로 굳게 단결해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자국의 착취자, 모든 특권층에 맞서 싸워야 한다. 1975년에 레바논 정부군이 어부들의 시위대에 발포했을 때 레바논 주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했고, 여기에 팔레스타인 난민들까지 결합했던 사례는 (비록 맹아적이지만) 그런 계급적 단결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도 종교와 민족을 초월한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만이 근본적 대안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고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려는 이스라엘의 반동적 정책도, 그 반대편 극단으로서 평범한 유대인 노동자민중까지를 포함해 유대인 전체를 적대시하며 테러하고, 이슬람민족만의 단일국가를 건설하려는 극단적 이슬람근본주의도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이들 모두는 중동을 피비린내 나는 거대한 전쟁터로 둔갑시키고 노동자민중의 제반 권리를 억압할 수 있을 뿐, 아무런 진보도 가져다줄 수 없다.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 철저하게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자결권을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노동자들이 이슬라엘 자본가들의 반동적 민족주의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스라엘 노동자들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위해서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한편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이스라엘 노동자들과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단결해야 하며, 팔레스타인 자본가들, 지배 엘리트들로부터 철저히 독립해야 하며, 그들에 맞서서도 단호하게 투쟁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민족적 억압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은 계급적 단결을 통한 자본주의 철폐와 노동자해방이라는 전략에 철저히 종속시켜야 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자체로부터 자라나온 것이다. 제국주의, 즉 독점자본의 등장과 확대, 국가와 독점자본의 유착, 자본수출, 석유 같은 자원 약탈과 시장 쟁탈을 위한 침략전쟁은 노동자 착취를 통한 끊임없는 이윤증식을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결과다. 따라서 세계 자본주의를 철폐하지 않는다면 제국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 자라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 제국주의의 ‘한 가지 정책’이나 미국이라는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체, 더 나아가 세계 자본주의 전체를 철폐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특히 쇠퇴기 자본주의의 점증하는 모순은 이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레바논 동시 침공에서 알 수 있듯이 제국주의적 억압과 수탈을 극도로 배가시킨다. 그러므로 더욱 더 근본뿌리를 제거하기 위한 투쟁으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제국주의적 억압을 완전히 끝장내는 것은 여성해방, 완전고용, 충분한 사회복지 쟁취와 마찬가지로 중동 노동자계급이 굳게 단결해 노동해방을 쟁취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그 점에서 자본주의를 그대로 놔둔 채 반제, 반전, 평화를 완전히 달성할 수 있다고 환상을 품는 단순한 민족주의자,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들로부터 노동자계급은 철저히 정치적 독립을 견지해야 한다. 특히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처럼 철저하게 반동적이며,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적대 노선을 갖고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세력에 맞선 투쟁과 독립성을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
그런데 중동에서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노동해방 혁명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노동해방 혁명과 긴밀히 결합해야만 완전히 성공할 수 있다. 특히 중동의 경우는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자본주의가 덜 발전한 나라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약점은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상대적으로 더 발전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노동자혁명과 결합함으로써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중동의 노동자계급은 미, 이스라엘 제국주의 억압에 맞선 투쟁에 멈추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과 동시에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의 노동자계급과의 단결노선을 한 치도 흔들림 없이 견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계급 국제주의 노선을 파괴하는 모든 형태의 이슬람근본주의 지배자들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비로소 ‘검은 석유의 존재’가 전쟁과 야만주의의 온상으로 둔갑하는 거대한 비극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동 노동자계급이 이러저러한 이슬람 민족주의 정권이나 정치세력들로부터 철저히 독립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과거에 중동의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은 미 제국주의에는 반대하지만 자본주의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 정권들, 즉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방 제국주의 열강을 대신해 자국 노동자계급을 착취하려는 민족주의 정권 또는 민족주의 정치세력들로부터 독자성을 지키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중동 노동자민중에게 파멸적인 결과만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이것은 중동에서의 진실한 노동자계급정당의 건설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중동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단결투쟁의 구현체로서 진정한 노동해방 정당을 건설할 수 있는가가 중동이 ‘더 끔찍한 야만’으로 굴러 떨어지느냐 ‘노동해방’으로 도약하느냐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세계 노동자계급의 일부로서 중동의 노동자계급과 최선을 다해 연대해야 한다. 당장은 레바논파병 반대, 이라크파병군 철수투쟁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투쟁은 단순히 평화주의적 관점에서 소부르주아들이 주도하는 길거리캠페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국 자본가계급과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이란 관점에서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광범위하고 위력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 투쟁은 비정규직화, 정리해고, 노조탄압, 비정규직법 개악과 로드맵 공세 등에 맞선 투쟁과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제국주의 침략전쟁과 노동자착취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해방 쟁취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제국주의 전쟁과 착취강화에 맞선 투쟁을 전개해야 하며, 모든 투쟁이 노동해방을 향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고취와 단결투쟁력 강화에 복무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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