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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투표함에서 이슬람사원까지 - 별로 좌파적이지 않은 ‘대안’을 추구하는 SWP
지난 몇 달 동안 영국 좌파 가운데 일부는 격렬한 논쟁에 휩쓸렸다. 그 논쟁은 혁명가들이 종교단체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는 것을 둘러싼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이슬람조직들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에 이 문제는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제기되었다. 당시 SWP는 전쟁저지연합 내 자신들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이용하여 런던이슬람사원위원회나 영국무슬림의회 같은 이슬람 조직의 대표들을 전쟁저지연합 운영위원회 새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전쟁저지연합과 관계 맺고 있던 다수의 활동가들과 그룹들이 이러한 시도에 대해 내켜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다. 이들 이슬람단체 대표들 일부가 연단에 나와 거의 반유대주의에 가까운 연설을 하거나 이슬람 근본주의 그룹들의 테러활동을 지지했을 때 특히 그랬다.
이 활동가들의 불만은 전쟁저지연합과 영국 핵비무장운동이 이라크전쟁 전에 대규모 반전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영국무슬림협회와 힘을 합치기로 했을 때 더욱 커져갔다. 영국무슬림협회는 겉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 논쟁은 2003년 지방선거가 끝난 후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SWP 당원으로 사회주의자연합에서 유일하게 공천을 받은 시의원인 마이클 레벌렛이 자기가 프레스톤 구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 그 지방 이슬람 성직자들 덕이었다고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들 이슬람 성직자들이 이슬람 사원에서의 금요 기도회 때 신도들에게 자신을 후보로 추천했던 것이 선거 승리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SWP는 레벌렛이 고취한 이슬람 사원에서 선거운동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방법을 어느 정도는 사회주의자들의 이후 행동방침으로 제시했었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SWP의 입장에서 이런 전환은 자칭 ‘신노동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 건설이라는 그들의 오랜 정책과 모순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최근의 전환은 그동안 그들이 늘 견지해온 오랜 정책의 또 다른 부산물이다.
‘신노동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이라는 단어 선택 그 자체는 아무런 도전적 성격을 갖지 않는다. 이런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SWP는 신노동당에 대한 혁명적 대안을 제시할 의도가 없음은 물론, 심지어는 블레어에 앞서 오랫동안 노동자계급을 희생시키며 자본가들의 이익을 보호해왔던 구노동당의 범죄이력에 맞선 좌파적 대안을 건설할 의도 역시 없음을 보여주었다.
SWP는 순전히 블레어에 대항한 ‘선거 차원의 도전’만을 건설하려 하는데, 이 도전을 다른 어떤 기반 위에서 형성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 4년 전에 SWP가 다수의 다른 혁명적 그룹들과 선거 차원의 연합체로 사회주의자동맹을 건설하는 주도력을 행사하며 제시한 것도 바로 이 (선거주의) 정책이었다. SWP가 반세계화 운동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 것, 좀 더 최근에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에 대한 태도의 방향을 결정지었던 것도 재차 이 정책이었다.
그러한 정책이 가진 문제점은 그러한 정책 자체가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맑스주의 혁명가들이 대표하기 위해 분투하는 계급, 즉 노동자계급의 이해로부터 필연적으로 이탈하여 이리저리 표류하며 동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SWP가 지난 4년(2000~2003)동안 견지해온 소위 ‘신노동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이라는 정책이 보여준 굴곡을 되짚어 살펴보면 바로 이러한 표류경향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SWP와 사회주의자동맹
사회주의자동맹은 SWP의 ‘신노동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을 처음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4년 전, 첫 번째 런던 광역시 의회선거 직전에 사회주의자동맹은 SWP와 더 작은 다수의 혁명적 그룹들을 포괄적인 조직으로 묶었다. 이 포괄적인 조직은 혁명가들이든 개량주의자들이든 가리지 않고 블레어 총리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좌파들에게 열려있는 조직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마치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를 초월한 영국 광교회파(廣敎會派)처럼 말이다.
사회주의자동맹은 최우선적으로 선거 연합체적 성격을 가지는데 SWP의 계간지인 ≪국제사회주의≫ 최근호가 잘 표현한 것처럼 그것의 강령은 ‘혁명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치, 옛 노동당 당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최대치’적 성격을 띠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들 강령은 사실상 ‘구노동당’ 언어로 정식화된 일련의 요구에 불과할 뿐인지라 정말이지 많은 구노동당 지부들도 이들 강령을 글자 한 자 안 고치고 그대로 출판했을 것이다.
의미심장한 것은 그 강령이 노동자계급이 일상적으로 부닥치는 문제들인 일자리 삭감이나 임시직화 그리고 전반적인 노동조건 악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여 년간 빼앗긴 기초적인 것들을 다시 획득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이 반격을 취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언급에서도 마찬가지다. SWP가 보기에 그런 언급들이 ‘옛 노동당 당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최대치’의 한계를 벗어나게 될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SWP가 구애를 펼치는 대상인 노동조합 관료들이 텃세를 부리는 세력권에 흙을 묻히고 들어가 그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십중팔구 어느 정도는 둘 다였을 것이다.
하여간, SWP가 이러한 접근을 선택한 결과, 노동자계급은 자신들에게 핵심적인 이러한 주장들을 런던 광역시 의회선거 캠페인에서는 들어볼 수조차 없었다. 오직 혁명가들만이 이번 선거를 그러한 주장들이 울려 퍼지도록 활용하여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표현할 수 있는 연단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동맹의 강령을 바탕으로 한, 25명 정도의 혁명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활동가들의 캠페인을 지배한 것은 오히려 켄 리빙스턴을 지지하는 활동이었다(사회주의자동맹은 이런 지지 활동을 벌였고 이들이 발간한 모든 자료에는 커다란 글씨로 ‘켄을 시장으로 뽑읍시다!’라는 글귀가 박혀 있었다). 이 캠페인은 모험가에서 정치 선동꾼이 된 켄 리빙스턴에게 어떻게든 투표하는 것이 블레어와 그의 정책에 복수하는 길이라는 환상을 부추기는 데 일조할 뿐이었다.
그런 노선으로 사회주의자동맹을 창설하면서 SWP는 몇 가지 목표를 추구했다. SWP는 블레어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옛 노동당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사회주의자동맹으로 끌어당기길 원했다. 동시에 SWP는 블레어에 의해 초래된 불만들을 십분 이용해서 사회주의자동맹이 괄목할 만한 득표를 하기를 원했고, 가능하면 바뀐 선거제도에 딸린 비례대표제에 힘입어 런던 광역시의회에서 한 석 정도는 얻기를 원했다. 스코틀랜드사회당이 스코틀랜드 의회선거에서 용케 그럭저럭 해냈던 것과 상당히 비슷하게 말이다. SWP는 이러한 득표력을 기반으로 사회주의자동맹이 충분히 신뢰를 받아서 궁극적으로는 노동당 좌파를 넘어서는 ‘제3당’이라는 대안에 대해 그간 노동당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줄곧 보여준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봤을 때, SWP가 어느 모로 보든 실패했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옛 노동당원들이 밀물처럼 사회주의자동맹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선거 직전이든 직후든 마찬가지였다. 사회주의자동맹의 당원들과 청중은 사회주의자동맹을 구성했던 다양한 혁명적 그룹들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중 SWP 당원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몇몇 지역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주의자동맹 후보자들이 획득한 득표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사회주의자동맹이 선거구 투표에서 거둔 전체 득표 2.7%와 비례대표제 성격의 선거투표제도까지 감안해 집계된 1.6% 득표는 한 석이라도 획득하기 위해 이론상 필요한 최소한도인 4~9%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이 결과로 봤을 때, 이 정도의 득표를 가지고 노동당 당원들이 노동당에서 손을 떼고 사회주의자동맹으로 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SWP는 녹색당에게 선거연합체를 구성하자며 접근하면서 사회주의자동맹이 호소하는 대상을 더 광범위하게 넓혀 놓으려 했다.
그러나 누군가 잘 말했듯이, ‘영국 자유민주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일 뿐이라고 묘사한 것을 건설하려 했던 SWP의 시도는 실패했다[자유민주당은 자유주의 성향의 중간계급 정당이다]. 녹색당 당 대회가 SWP의 제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SWP는 다시 동맹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대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2001년 총선에서 사회주의자동맹은 선거용 강령에서 조금 더 급진적인 언어를 채택했다. 예를 들면, 그 선언은 ‘도산위기에 빠져 대량실업이 임박한 모든 기업을 인수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관리하는 공기업으로 전환한다.’라는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선언은 노동자계급이 그러한 요구들을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면적인 투쟁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한 것이 있다. SWP는 유권자들에게 이번 선거에 사회주의자동맹이 내세운 98명의 후보들에게 투표함으로써 ‘투표함에 분노를 던져 넣어라’라고까지 호소했다. 그러나 정작 SWP는 사회주의자동맹 후보에게 투표할 수 없었던 80%의 유권자들에게 그들이 여전히 노동당에게 투표한다면, 블레어는 이들 투표를 오히려 투표한 사람들(즉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데 이용할 것이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즉, SWP는 노동당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는 태도는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SWP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른바 ‘대안’이라는 것이 얼마나 협소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드러난 결과가 보여주듯, 사회주의자동맹이 총선에서 거둔 득표는 얼마 전 런던 광역시 의회선거 득표와 거의 비슷한 평균 1.6%였다. 그러한 득표는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 좌파에 대항해 나섰던 모든 후보자들이 얻은 총 득표수와 거의 동일하다(일단 그러한 비교가 가능한 선거구들에서 말이다). 분명 SWP 지도부는 이런 결과에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낮은 정치의식화라는 전반적인 환경 및 사회주의자동맹이 선거영역에선 여전히 신참자라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득표는 절대 하찮은 것이 아니다. 그러한 득표수는 비록 작지만 블레어에 반대하는 혁명적 좌파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유권자 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힘이 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실망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물론, 사회주의자동맹이 가진 선거상의 잠재력에 대해 SWP와 그 동맹자들이 거듭 피력한 바 있는 지나친 낙관주의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실망감이 크긴 할 것이다. 어쨌든 SWP와 그 동맹자들은 그들이 보기에 실망스러운 경험을 거울삼아, 선거에서 자신들의 정치에 물을 타는 게 아무런 이익이 없으며, 차후에 있을 여러 선거에서는 차라리 혁명가로서 주장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사회주의자동맹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든 독립적으로 각각의 조직을 통해서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회주의자동맹은 여전히 바로 위에서 지적한 똑같은 개량주의적 지향에 확고하게 기초를 둔 채 존재하고 있다.
반세계화 - 개량주의로 가는 또 다른 길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있었던 세계무역기구(WTO)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것에서 시작된 반세계화 조류가 발전하자, SWP는 이것을 두고 ‘1960년대 이래 좌파에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라며 대대적으로 반겼다. 그리고 SWP는 이 ‘기회’를 이용해 보고자 ‘저항의 세계화’라는 자기 자신의 전선체를 지체 없이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이러한 조류가 SWP의 언급처럼 어떻게 그토록 크게 ‘좌파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일까? 그러한 조류가 1960년대와 같이 혁명적 사상에 개방적인 새로운 젊은 세대의 출현을 선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일까? 이것은 SWP가 그 조류에 대해 ‘이미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라고 주장할 때 이미 잠재적으로 전제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SWP의 알렉스 캘리니코스 자신도 <반자본주의 운동과 혁명적 좌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러한 소위 ‘반자본주의’라는 것이 여전히 ‘최우선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다국적기업에 반대한다는 것에 의해 정의되는 산만한 이데올로기’라는 점, 그리고 이 때문에 ‘좀 더 응집력 있는 사회주의 의식으로’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설사 이러한 조건을 단다고 해도 반자본주의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그릇된 인상을 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홍색도 아닌 어떤 조류에 거짓으로 혁명적 색깔을 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자본주의적 조류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저지른 잘못된 행실을 현 정부들이 바로잡아주길 바라는 단 하나의 공통된 목표만을 가진 NGO들, 종교단체들, 개량주의적 노동조합 관료들 그리고 노골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잡다한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자본주의적 요소’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그 저항들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이 표현한 분노에 관해 말하자면, 그러한 분노는 자본주의 체제가 내뿜는 가장 참을 수 없는 ‘과도함’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래야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분노는, SWP의 주장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향한 것은 아니다.
SWP도 분명히 깨닫고 있는 이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자, 그들은 그 조류가 가진 한계들, 예컨대 반(反)정치주의적 편견, 계급정치의 부정 등의 측면들을 폭로하지 않기로 했다. 심지어는 그 조류가 개량주의를 서툴게 모방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SWP는 이러한 조류와 충돌해야만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비판을 최소화하는 노선을 택했다. SWP의 월간지인 ≪사회주의비평≫ 2001년 6월호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대중운동을 체제에 반대하게끔 밀어붙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 운동을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노선을 가지고 쪼그라들게 만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과적으로 그 기회를 내던지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소외시키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SWP는 그들 잡다한 조류에 대한 비판을 오직 자신들 내부의 논의로만 한정시켰으며 계속 자신들의 혁명적 강령을 감추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어떤 조류들(즉 개량주의 조류들)을 ‘(자본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SWP가 자신의 강령을 포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책략일 뿐이다. 이것은 정작 SWP에게 중요한 것은 그 계급적 내용이 무엇이든 자신들도 그러한 ‘대중운동’의 한 구성요소로 비치기를 간절히 원하는 데 있다는 점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물론, SWP는 대놓고 반세계화운동의 꽁무니를 쫓는 것과 자신의 정치적 전통 사이의 충돌을 화해시켜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자신이 향하고 있는 (개량주의적) 방향에 혁명적 전통의 옷을 입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그래서 SWP는 시애틀에서의 ‘조직된 노동자들과 반세계화 활동가들의 단결’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궁극적인 승리는 이러한 ‘단결’을 ‘지속적인 운동’으로 전환시키면 달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SWP가 지적하지 않은 사실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이러한 ‘단결’이 미국 노동조합 관료들이 미국의 일자리와 산업을 대외경쟁(특히 멕시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요구한 데서 시작됐다는 사실 말이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이것은 반동적인 요구로서, 노동자계급의 이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반세계화 운동으로의 전환에 ‘계급적 측면’을 조금이라도 보태려는 또 다른 시도로 2001년에 출판된 한 SWP 팸플릿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가 정말 IMF나 세계은행, WTO 그리고 그들 뒤에 서 있는 다국적 기업들과 대결하려면, 우리는 시위를 하는 것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투쟁을 연결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거리에서 뿐만 아니라 각각의 공동체에서도 투쟁을 계속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시키는 부를 만드느라 우리의 등골을 빠지게 하는 작업장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즉, SWP는 노동자계급이 반세계화 운동 조류의 목표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SWP는 ‘다른 투쟁들을 연결하는 운동’을 주장하지만 어떤 계급적 기초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런데, 선택된 목표들은 ‘반세계화’ 저항 활동가들의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들을 제쳐두고 단지 ‘반세계화’ 운동의 보병역할을 하는 것으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SWP는 자기 자신을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받아들일 만하게 만들고, 무슨 대가를 치르든 간에 더 거대한 개량주의적 ‘운동’ 속으로 들어가려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SWP는 자신의 강령을 감추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노동자계급 속에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무엇이든 이용하여 노동자계급이 ‘반세계화 운동’ 흐름(사실은 중간계급)을 따라가게 만들도록 하고 있다.
거꾸로 뒤집힌 국제주의
그러나 SWP는 반세계화 조류를 지향해 온 자신들의 노력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다시 한 번 실망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원들은 각종 국제적인 시위나 포럼 같은 정치적 성격의 해외여행을 즐거운 마음으로 다녔지만, 정작 영국에서는 주목할 만한 어떤 반자본주의적 조류도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프랑스나 이태리, 미국 같은 나라들의 경우와 조금이라도 비교될 만한 규모는 분명 아니었다. ‘저항의 세계화’라는 반세계화 조직도 그것을 압도적으로 장악한 것은 SWP 당원 자신들이었던 나머지, 사실상 반쯤은 죽은 상태로 존재했다.
그럼에도 얼마 안 있어 SWP 지도부는 또 다른 중요한 ‘좌파를 위한 기회’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9·11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이후 부시가 추진한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그 기회를 제공했다. 이를 위해 2001년 11월, SWP는 새로 전쟁저지연합이라는 특별한 조직을 출범시키는 데 참여했다. 이 조직은 지금까지 본 것들 가운데 가장 ‘최소치’의 ‘반미 평화주의 강령’에 기초한 조직이다. 흥미롭게도 이 조직의 강령은 ‘반테러전쟁’ 뒤에 놓인 정치적 동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국) 노동당 정부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언급 또한 없다. 그 강령은 정말이지 누구라도 수용할 수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경향은 이라크에 대한 전쟁이 추진된 이후 특히 더 그랬다. 영국 전쟁저지연합은 혁명적 좌파뿐만 아니라 다종다양한 세력들에게 열려있는 문자 그대로 좌파들의 광교회파로 바뀌었다. 그러한 세력들로는 영국 공산당, 스카길의 사회주의노동당, 전쟁에 반대하는 일부 노동당 국회의원들, 온갖 종류의 평화주의자들, 런던이슬람사원위원회나 영국무슬림의회 같은 이슬람 조직들을 포함한 다양한 신념을 가진 종교집단들, 쿠르드족 민족주의자들, 변호사와 언론인 그리고 사회사업가들로 구성된 일련의 자유주의 집단들 그리고 다수의 전국단위 노동조합들을 들 수 있다.
이것은 SWP가 발행하는 ≪사회주의비평≫ 2001년 11월호에서 윤곽이 제시된 정책과 맞닿아 있다. <모든 전선에 대한 공격>이라는 제목이 달린 한 단락에서 SWP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책임이 있다. 우리는 가능한 가장 넓은 단결이라는 기초 위에서 대중적인 반전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그 글은 이러한 ‘가능한 가장 넓은 단결’이라는 것이 실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이것은 전쟁에 반대하는 것에만 기초한 단결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테러리즘을 비난하는 다른 항목들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런 시도를 하게 되면 동맹자가 될 수 있는 일부 중요한 잠재적인 대상들을 배제시키고 주적이 서구 제국주의 말고 다른 무엇이 더 있을 수 있다고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작부터 정확히 SWP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의 단결을 위하여 다른 무엇보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노골적으로 재갈을 물리고자 했다. 그 이슬람 근본주의가 영국 내에 있는가 해외에 있는가 여부에 상관없이 그랬다. 그보다는 SWP가 반전운동으로 끌어들이길 원했던 무슬림 조직들 같은 ‘동맹자가 될 수 있는 일부 중요한 잠재적인 대상들을 배제’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차라리 더 맞겠다.
그래서 이들은 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오랫동안 제국주의 열강들의 도구였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 그래서 그들이 무척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당이 실은 수십 년 동안 영국 제국주의가 이집트 노동자계급에 대항하여 사용한 무기 중 하나라는 점에 개의치 않는다. 또한, 탈레반 체제가 미 제국주의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소련과의 경쟁에서 파생적으로 생겨난 흉측한 괴물이라는 점도 개의지 않는다. 이들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종다양한 이슬람 근본주의는 착취당하는 대중 사이에서 등장하는 어떤 형태의 계급조직이든 확고히 분쇄하고 대중에게 중세적 독재의 올가미를 씌우고자 하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측면도 마찬가지로 무시한다.
따라서 이런 모순적인 굴곡을 거치면서 SWP는 제3세계 노동자계급에 대한 국제주의적 임무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 점은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으로부터 물리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이라크 노동자계급에 대해서 특히 더 그렇다. 물론 SWP는 자신들이 제국주의에 맞선 전투를 이라크 밖에서 해야 하는 국제주의적인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국제주의를 손쉽게 방기하는 데 이런 핑계를 이용할 뿐이다.
계급보다 숫자를 중시하다
SWP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론적 근거를 그들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반전운동에서 그들에게 진정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반전운동행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가에 있다. 하지만 SWP가 정말 이런 행진 그 자체로 전쟁으로 치닫는 전체 경향 자체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까지 제국주의 정부들이 거리든 여론조사든 어쨌든 대중의 바람에 따라 자신의 정책을 결정해왔다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만약 전쟁에 대한 반대가 이윤에 직접 위협을 가한다면 사태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려면 거대한 노동자계급 집단이 반전운동의 맨 앞 무대를 차지했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되려면 아주 다른 종류의 반전운동이 등장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한 계급노선을 기반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본의 독재에 반대하는 성격의 운동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자연히 그런 경향은 SWP가 애당초 관계 맺고 싶어 안달하던 ‘동맹자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잠재적인 대상들’을 쫓아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예를 들어, 중간계급 자유주의자들과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종교단체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계급에 기초한 반전운동이란 것이 등장할 수 있을까? 당장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노동자의 대다수가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집단적 힘에 대해 아직 자신감이 없고, 이들이 일반적으로 탈정치화된 탓에 이러한 계급에 기초한 반전운동이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그러한 운동이 등장하려면, 필시 혁명정당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이미 자본가 국가와의 계급 전투에서 단련되고 노동자계급 내에서 충분한 신뢰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지지자들 중 상당한 부분을 전쟁에 반대하는 전투로 동원하고 지도할 수 있는 그런 정당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정당의 건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실제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혁명가의 역할이란 것이 혁명정당의 대체품으로 급한 대로 여러 세력과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를 맺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강령을 포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런 행태를 이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반대로 혁명가의 역할은 자신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조직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자신들의 강령을 유지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설사 이것이 시류를 거스르는 것이라도 말이다.
SWP가 그동안 이러저러한 것들을 포기해왔던 점을 봤을 때, 위에서 말한 이런 사활적인 과제로부터도 그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물론, 그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데에서 노동자계급이 가지는 잠재적인 역할에 대해 입 발린 말을 한다. 그들은 스코틀랜드 기관사들이 전쟁 물자를 실은 열차를 저지한 것을 열렬히 환영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SWP는 이미 자기가 펼친 정책의 포로가 된 상태였다.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평화주의적인 중간계급 반전운동을 SWP가 거리낌 없이 수용하는 바람에 스코틀랜드 기관사들의 예를 따르자는 뒤이은 SWP의 호소는 그저 명목상으로만 그런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사실, SWP는 자신들이 건설하는 데 기여한 반전운동의 한계들을 알고 있다. 그것을 다음과 같은 예에서 잘 알 수 있다. ≪사회주의비평≫ 2003년 5월호에서는 “2백만 명을 거리에 불러 모은 다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물으면서, 그 대답으로 이렇게 말했다. 즉, 모든 사람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7백만 명에게로 가야 한다. 모든 노동조합원들은 그들 주위에 더 많은 사람들을 조직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미조직 대중이 결여한 자금과 이메일 주소와 청중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대한 규모의 반전행진이 사태의 진행을 바꾸는 데 실패한 후에도, SWP는 노동조합 기구의 재원을 이용하고 노동자들이 반전운동을 지지하게끔 ‘노동조합 관료들’이 선의로 이끌어주길 바란다는 면에서만 노동자계급의 역할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여전히 노동자계급 대중 그 자체의 의식적인 동원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닌 채 말이다. 숫자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 노동자들의 의식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을 가능케 하는 기회를 찾는 것은 부차적이게 된다.
SWP가 취한 정책의 역설은, 그렇게 해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쩌면 강령을 단호하게 포기했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수도 있다. 반전운동을 움직이게 하는 현재의 환경은 정말이지 혁명적 사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반전행진의 규모가 SWP를 우쭐대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행진을 지배하는 것은 전의를 불태우는 노동자들의 결의와 분노가 진정으로 담긴 표현들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자본의 기관들이나 UN에 대해 환상을 드러내는 평화주의적인 중간계급의 정신이 그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엄청난 평화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SWP의 혁명적 사상은 익사할 뿐이다. SWP가 고집스럽게 ‘동맹자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잠재적인 대상들’에 적응하게 되면 오히려 더 자신들의 사상만 묻혀버리는 탓에 물에 훨씬 깊이 빠지게 될 것이다.
혁명가와 종교
‘단결’ 혹은 숫자를 위해 SWP가 영국 무슬림 집단에게 추파를 던지자 그들이 일반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 침묵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됐다. 왜냐하면 어찌됐건 영국좌파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먼 나라에서가 아니라 바로 영국 노동자계급의 일부에서 이들 이슬람 집단이 수행하는 반(反)노동자계급적 역할 때문이었다. 이들 집단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가 비판받자 SWP는 줄줄이 여러 반박논리들을 써먹곤 했다. 그것은 많은 경우 자신들에 대한 비판자들을 ‘이슬람혐오주의자’로 맞비난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니까 말이다.
SWP 주간지인 ≪사회주의노동자≫는 한술 더 떠, 혁명가들의 임무는 이슬람 사원들을 방어하는 데 있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혁명적 좌파들은 세속주의자이자 무신론자이다. 하지만, 혁명적 좌파들은 똑같이 중요한 원칙인 종교예배의 자유 또한 방어한다. 정부와 우익들의 공격을 받는 이들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2003년 8월 2일자, <전쟁 이후의 좌파>)
≪사회주의노동자≫가 말한 것처럼 무슬림 종교가 ‘정부와 우익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것이다. 지난 시기 아시아 사람들이 공격을 받았던 것은 그들이 가진 종교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반테러 전쟁’을 통해 인종주의가 고무되었던 것 때문이었고, 노동당 정부가 이민자들을 공격하면서 퍼뜨린 범죄적인 악선동 탓이었다. 그리고 사실, 고통을 받았던 것은 단지 아시아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피부색깔이 다르거나 억양이 서투른 모든 이민자들이 다 그랬다.
물론 몇몇 근본주의적 이슬람 성직자들이 도발적인 연설을 한 탓에 공격을 받는 등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하지만 살인을 옹호하는 완고한 편견에 사로잡힌 이런 자들을 방어하는 게 과연 혁명가들의 역할일까? 이슬람 종교와 그 기관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사실 매우 부유하다. 지난 20여 년간 그들은 이전보다 더 부유하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 1980년대 초 대처 정부가 시작한 정책 때문이었다.
당시 대처 정부는 그 기간 동안 시내 폭동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했고, 이 정책은 그 이후 이어진 정부들에서 연이어 답습되었다. 이 정책은 소위 ‘이민자 공동체 지도자’들이 자신의 공동체를 단속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이를 위해 국가가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이러한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각 공동체 내에서 가장 반동적인 세력들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의 경우 종교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것은 아시아 노동자계급 거주지에서 특히 사실이다. 그곳은 오랜 무신론적인 전통이 존재했고 심지어는 공산주의적인 전통도 존재했다. 후자를 대표하는 조직들 가운데는 인도노동자연합 같은 단체들이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 재정지원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대상은 종교단체들과 무슬림 기관들이었다. 비록 주류 종교인 영국 국교회가 받는 것보다야 훨씬 적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블레어는 종교단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실제로 늘려 나갔다. 많은 무슬림 학교들을 포함해 새로운 종교학교들을 더 세우려는 블레어의 계획은 이미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까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수행한 특정 과제들을 그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종교단체들에 더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늘려주려 블레어가 추진하는 계획의 단지 한 측면일 뿐이다. 그러한 과제의 예를 들자면, 공동체 보건문제나 사회서비스를 위탁하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무슬림 종교가 정부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주장은 순전히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SWP의 주장은 또 다른 관점에서 아주 놀라운 점을 보여준다. 도대체 언제부터 맑스주의자들이 ‘종교예배의 원칙’을 ‘세속적이고 무신론주의적인’ 것과 똑같이 중요한 것으로 바라보았단 말인가? 칼 맑스가 자신의 책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중 잘 알려져 있는 한 구절에서 주장한 것을 한번 상기해보자.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영혼이 없는 상태에서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 속에서의 행복인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으로 누리기 위해 필요한 요구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상태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들 또한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종교비판은 종교를 후광으로 삼는 고달픈 현세 비판의 맹아이다.”
즉, 종교는 사회적 억압에 물질적 기초를 두고 살아남는다. SWP가 좋든 싫든, 억압이 없는 사회를 위해 싸우는 것은 사실 종교와 투쟁하는 것이다. 혁명가들은 일부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되듯,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로 무신론자들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투적인 무신론자들이다. 이 말은, 우리가 종교를 억압적인 세계 구조의 한 부분이자 사회-정치적 충격이라는 측면에서 인종주의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 바라보면서 그것에 대항해 싸운다는 것을 뜻한다. SWP는 혁명적 전통 가운데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SWP는 영국에서의 종교적 반동에 대항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온 아시아 노동자계급 활동가들에 대한 연대의 임무 또한 저버리고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노동자적 활동 탓에 이민공동체의 주류 분위기(민족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슬람 사원으로부터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도 그렇지만, 이 활동가들은 아시아 젊은이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종교를 믿는다고요? 상관없어요!’라고 말하는 영국인 혁명가들도 결코 반기지 않는다.
SWP는 종교를 믿는 것이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실제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정말 단순히 부정하려 든다. 지금은 무슬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인 이와 같은 방법들이 다른 종교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위에서 이미 인용한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영국 좌파들이 반전운동이 배출한 지역적, 전국적 지도자들을 포함해서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 급진화하는 부분에 등을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이미 20세기 전반부에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들을 무시한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한 어리석음을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누구라도 역사에 대한 그런 형편없는 무지(왜곡?)와 대면하다 보면 황당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세기 초 이스트엔드 지역의 유대인 활동가들은 SWP가 새롭게 발견한 ‘급진화한’ 동맹자들과는 다르게 무신론자들이었다. 이게 진실이다. (그나저나 SWP의 동맹자들이 도대체 무엇에 의해 급진화됐다는 것인가? 온건하고 단조로운 반전행진? 의아할 따름이다.) 더구나 이들 활동가들은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혹은 유대인 노동조합원들이었다. 이들은 그 시절 가장 끔찍한 체제들 중 하나였던 짜르 치하 러시아의 가혹한 조건 속에서 활동하다 억압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은밀히 지하에서 활동하면서 정당과 노동조합을 건설해왔고 파업과 대중운동을 지도했다. 사실, 이들 가운데 많은 활동가들이 영국의 사회주의적 조직 혹은 공산주의적 조직을 건설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스트엔드에 사는 그들의 자녀들은 그 사이에 러시아혁명으로 비옥해진 동일한 전통에 힘입어 정치 의식화되었다. SWP의 말과는 정반대인 이런 객관적인 역사적 상황을 한사코 무시하려는 SWP야말로 정말로 어리석은 것이다.
이어지는 ≪사회주의노동자≫의 다음 호에는 이미 언급한 프레스톤 지역의 사회주의자동맹 시의원이자 수완 있는 고참 SWP 당원인 마이클 레벌렛의 기사가 하나 실렸다. 자신의 ‘이슬람 사원에서의 득표행위’에 대한 비판에 답하면서 그는 심지어 무슬림 종교에 반제국주의적 치장을 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는 ‘프레스톤에 사는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자신들의 반제국주의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택했다’고 주장했다.
글쎄, 어쩌면 프레스톤에서는 국지적으로 그런 풍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의 나머지 지방, 특히 영국에서 가장 많은 아시아 인구가 거주하는 런던에서는 모든 연령대의 아시아 이주민 여성들이 놀랄 정도로 점점 더 많이 스카프 혹은 베일 같은 것들을 쓰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지역에 사는 이들 여성의 대다수는 레벌렛이 말한 대로 그러한 것을 쓰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과 남자 형제들이 가하는 일방적인 강요 탓이다. 이들 남자 형제들은 자기의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들도 자기들의 자매들에게 그만큼의 권위가 있다는 것을 몹시 보여주고 싶어 한다. 또, 이 여성들은 여성을 괴롭히는 맛에 사는 지역의 깡패들로부터 받는 위협 때문에도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이 여성들을 상대로 한층 더 함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종교로 정당화된 ‘전통’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그 ‘전통’은 여성을 사회에서 멸시받는 집단으로 격하시키고 그들을 남성의 독재에 복종시키며 그들에게서 독립성이라면 어떤 것도 전부 박탈해버린다.
레벌렛이 안다고 했던, 베일을 ‘선택’했다는 이 여성들 각자는 필시 그녀들이 교육받은 중간계급 환경 출신들일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는 여성들이 일정한 자유를 획득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 빈민가에 사는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은 강요에 의해 베일을 쓰고 있다. 이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레벌렛과 SWP가 하는 것처럼, 선택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는 중간계급 여성들 소수가 반제국주의적 상징으로 베일을 쓰는 것을 두고 자기만족감에 빠져 그냥 묵과해야 하는가? 아니면 종교의 반동적 역할만을 강화하고, 훨씬 더 많은 수의 노동자계급 여성에게는 억압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는 그런 ‘상징체계’에 도전해야 할까?
게다가 레벌렛과 SWP의 주장처럼 이 여성들이 정말 급진화된 것이라면, 혁명가들은 이 여성들이 자신의 급진적인 ‘반제국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종교적 상징, 즉 반동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혁명적 운동의 한 부분이 극적인 실패를 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까? 혁명가들에게는 그러한 문제들에서 자기만족감에 빠질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위선적인 자기만족감은 강령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더 나쁘게는 우리 자신을 여성들에 대한 억압의 공범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반전 감정을 투표함으로 돌리기
물론, SWP가 취한 접근에는 항상 어떤 일관성이 있다. SWP가 전쟁과 세계화에 반대하며 보여주는 한 판의 열광적인 행동주의는 궁극적으로는 선거에서 ‘신노동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겠다는 오랜 목표에 부응하게끔 짜인 것이었다. 아직 조지 부시가 이라크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회주의비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좌파에게도 역시 책임이 있다. 첫 번째는 무슬림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인데, 이들은 신노동당에 대한 급진적 대안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우리와 같이 힘을 합쳐 활동해왔다. 종교적 신념은 분명 그런 일을 같이하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럴만한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다음 달에 지방선거가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160명의 사회주의자동맹 후보들을 직접적으로 힘이 나게 했는데, 이들은 선거에서의 지지를 위해 무슬림 유권자들을 겨냥하는 반전강령을 바탕으로 했다. 이러한 호소가 이슬람교 신자들 쪽으로 관심을 전환하는 데 실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하긴 어렵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동맹 구성원들과 후보들 전부가 이런 호소에 기꺼이 주의를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하여튼, 이 후보들이 평균 두 배 정도의 득표를 거두었다는 사실(그럼에도 여전히 5% 미만에 머물렀다)을 봤을 때, 이 같은 현상은 프레스톤 지역에서 벌어진 것과 유사하게 무슬림 유권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지지표가 탄생한 것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전체 노동당 지지자 사이에서 소수가 블레어에 항의투표를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SWP는 앞으로 가야할 길을 보여준다며 즉각 ‘프레스톤 모델’에 올라탔다. 그리고 SWP는 같은 생각을 가진 ‘동맹자들’에게 자신의 주간신문 지면을 개방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사회주의노동자≫ 6월 14일자에는 아사드 레흐만의 긴 기사가 실렸는데, 그는 뉴햄 감시그룹의 대표 자격으로 영국 전쟁저지연합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이 그룹은 런던 동부 자치구 내의 인종주의 문제를 감시하는 것이 주 활동이다). 이 기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세 개의 그룹들을 단결시킬 필요가 있다. 무슬림공동체, 사회운동 그리고 노동조합들이다. 이 그룹들은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선거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 ··· 우리는 좌파만의 운동을 원하지 않는다. 또 다른 혁명정당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이라면 이미 SWP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코틀랜드사회당처럼 그 안에 혁명가들이 존재하는 옛 노동당 형태다. 스코틀랜드사회당은 의석을 한 석에서 6석으로 늘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성장 가능성 있는 정치적 대안을 지지하는 것을 통해 블레어를 혼내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에서 그것이 가능했다면, 여기서 우리도 해낼 수 있다. ··· ‘정의와 평화를 위한 무슬림’이나 ‘뉴햄 공공업무 캠페인’ 같은 조직들이 있는데, 이들은 각종 시위를 조직하고 동원할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 로비하거나 이슬람 혐오주의에 도전하는 등 더 넓은 범위의 정치적 캠페인에 사람들을 연결시키기도 한다. ··· 반전운동은 이슬람 사원을 재탈환할 수 있는 기회다. ··· 이것은 내가 정치적 이슬람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세속적인 좌파들이 새롭게 일하는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SWP는 레흐만과 같은 진정한 ‘동맹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사상을 널리 알리게 하고, 이슬람 집단들을 포함하여 더 넓은 연합을 선호하는 흐름이 실제로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SWP는 이 주제에 관한 자신의 사상을 더욱 구체화했다.
“현재 반전 좌파들의 과제는 전쟁에 반대하는 세력들 가운데 신노동당에 대한 가능한 가장 큰 규모의 대안을 형성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동맹은 전쟁 이전 시기에 좌파들이 만들 수 있었던 최대의 결집을 대표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러한 계획이 손을 뻗을 수 있는 잠재적인 범위를 엄청나게 확장시켰다. ··· 영국 전쟁저지연합을 지지했던 무슬림공동체 사람들에게는 신노동당에 맞선 발전 가능성 있는 대안을 찾고자 하는 명백한 열망이 있다.”(8월에 발행된 같은 신문 기사에서 인용)
따라서 사회주의자동맹은 더는 SWP의 목표에 적합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자동맹은 블레어에게 선거라는 방식으로 도전할 의사가 있는 반전운동 활동가들, 특히 무슬림 집단과 힘을 합쳐야 했다. 따라서 ‘좌파적’ 대안이라는 바로 그 개념이 의문시됐고 제안된 선거동맹의 기초는 용의주도하게 더 넓게 개방되었다. 게다가, 이런 방향에 대해 사회주의자동맹 내에 있을지 모를 반대파를 미리 제압하려고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이 시도는 마찬가지로 SWP 내 반대파도 염두에 둔 것이다.
“전국적, 지방적 수준 모두에서 신노동당에 대한 진정한 정치적 대안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우리를 둘러싼 정치 환경을 재구축하는 것보다 자신의 종파적 순수성을 더 우위에 놓는 사람들을 거부해야 한다. 존재하는 현 좌파조직들보다 더 큰 세력들이 사회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세력들이 새로운 좌파를 재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통로를 끊어버린다면, 어쩌면 지금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블레어 정부의 잿더미 속에서 우익들이 재부상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마치 이러한 선거동맹으로 보수당을 영원히 퇴장시킬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물론, 그런 전망은 SWP가 제안한 선거동맹이 노동당이 기존에 하던 역할을 인수받아 양당 체제로 진입하는 새로운 부르주아 정당을 의미하고, 이와 반대로 블레어의 노동당은 보수당이 기존에 맡던 역할을 넘겨받는 것을 의미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혁명가들이 도대체 그러한 정당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기존 정당들이 하듯 고용관계 서류들을 처리하는 것을 해야 할까? 어찌 되었든,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한편으로 이런 책략들이 사회주의자동맹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SWP가 목표로 삼은 무슬림 동맹자들을 어떤 의미에서도 노동당(‘신노동당’이든 ‘구노동당’이든)의 좌파에 자리 잡고 있다고 묘사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SWP가 ‘대안’을 건설하기 위해 추파를 던지는 대상은 단지 무슬림 집단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조합 기구들 또한 그런 대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회주의자동맹은 노동조합 기구들이 가진 정치자금을 지원받고자 오랫동안 그들을 대상으로 로비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SWP가 끈덕지게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무진장 노력했음에도, 모든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이들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왔다.
예를 들어, SWP는 운송및일반노조연맹(T&G)의 토니 우들리나 통신노동자노조(CWU)의 빌리 헤이스 같은 소위 ‘좌파’ 노조관료들이 ≪사회주의노동자≫ 신문에 자신들을 마음껏 광고하도록 한 면 전체를 털어 제공했을 뿐 만 아니라 이들 노동조합 관료들이 저지른 이러저러한 타협과 거래가 지닌 위험에 대해서도 침묵해버렸다. 이들 노동조합 관료들에게 이런 타협과 거래는 두드러진 특징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정작 이들 구애를 받는 노동조합 관료들은 여전히 고든 브라운*이 블레어에 대한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고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SWP는 블레어에 대한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 ‘노동당의 개조’라는 주문을 거듭 되풀이하는 대부분의 좌파 노조관료들 탓에 훨씬 더 어렵게 됐다”고 몹시 쓰디쓰면서도 무기력한 푸념을 늘어놔야 했다. 어쨌든, SWP가 끊임없이 노동조합 기구들을 끌어당겨보려 했지만, 그 이상 더 멀리 일이 진척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동조합 기구들은 현재 노동당이 통제하는 대부분의 중앙 및 지방 정부의 구조 속으로 아주 많이 통합되어 있다. 따라서 좋게 얘기해도 성공이 불투명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블레어에 도전하는 선거도박에 자신의 안락한 위치를 걸 노동조합 관료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선거에서의 대안을 띄워야 할 SWP 입장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전쟁으로 촉발된 대중의 불만이 서서히 약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2003년 10월 18일자 ≪사회주의노동자≫의 한 논설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러한 대안은 내년 선거가 몰려있는 시기 전에 반드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내년 6월 10일에는 영국 전역에 걸쳐 유럽의회선거, 런던 시장선거, 런던 광역시 의회선거 그리고 웨일즈와 중요한 잉글랜드 지역에서의 의원선거들이 한꺼번에 예정되어 있다.”
이렇게 다급하다 보니 블레어에 반대하는 선거연합을 결성하자는 새 제안들이 등장했던 것이 분명하다. 살마 야쿱이 이것을 처음 제안했는데, 그녀는 버밍엄 지역 전쟁저지연합 위원회 의장이자 해당 지역에서 핵심적인 이슬람 사원의 구성원이었다. ≪사회주의비평≫ 9월호의 한 칼럼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반전운동이 주류 사회의 의제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으로 향하도록 되돌리는 데 기초를 놓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반전운동은 사회 모든 부분을 대변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 이제야말로 경제, 사회, 환경 정책들을 지역과 전국, 그리고 전 세계 수준에서 통합할 목표를 가진 진정한 대안을 만들 때다. 그리고 그러한 대안은 충돌이 아니라 협력을 강조할 것이고,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가장 앞선 우선순위로 놓을 것이다.”
하지만 살마 야쿱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러한 대안을 건설하는 데 손쉬운 지름길이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버렸다고 해서 그들이 필요한 행동을 자동으로 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 연대, 평등, 정의와 평화 같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들은 순전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우리의 열망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활동적이고 헌신적이며 진정한 개입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 2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에 나온 것은,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준다. 이제는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을 데리고 무언가를 해야 할 무거운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진정한 차이를 만들어내려면, 지금보다 더 직접적으로 현재의 체제와 정책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보다 더 잘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긴급히 해야 할 일은 포괄적인 동시에 상세하며 실행 가능한 선언을 작성하는 것이다.”
즉, 그녀가 제안한 선거동맹은 정부 구성을 염두에 둔 강령을 갖춘 선거동맹인데, 이 선거동맹의 생각은 반전 감정을 발판으로 선거에서 후보들을 당선시켜보자는 것이다. 그 후, 살마 야쿱은 영국 ≪가디언≫지의 생태주의자 칼럼니스트인 조지 몽비오와 힘을 합쳐 <단결의 원칙>이라는 제목의 선언 초안을 작성했는데, 이 초안은 살마 야쿱의 제안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 선언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끔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그 선언은 노동자의 권리를 조금 지지하는가 싶다가도 한편에서는 ‘개인의 창조성과 기업가정신’을 지지한다. 또, 세계화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환경보호를 지지하며, 민영화에 반대하면서 국가가 국민들을 ‘돌볼’ 것을 지지한다. ‘비폭력과 평화’를 지지하면서 ‘국제법’을 지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선언은 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약탈이나 제국주의적 전쟁의 전정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 선언은 또한, 계급 구분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 또한 무시한다. 그러한 것들은 중간계급 자유주의자인 살마 야쿱이나 몽비오 같은 사람의 정신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선언은 그들이 SWP에 대한 지지를 끝내겠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SWP는 자신의 발간물에서 그 선언으로부터 거리를 두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선언의 최초 제안자 둘 다 SWP에 가까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살마 야쿱을 버밍엄 지역 전쟁저지연합 의장으로 후원했던 게 바로 SWP였고, 각종 반세계화 행사에 참여할 때 항상 몽비오를 같이 끼고 다닌 것도 바로 SWP였다.
실제로, ‘기로에 선 영국정치’라는 제목 아래 이 두 사람이 함께 연단에 오르기로 한 SWP와의 합동 공개집회가 런던에서 열리기로 계획되기도 했다. 이런 선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SWP가 어느 정도 떠밀렸든 아니든, 그것이 그간 그들이 추구해 온 정책들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좌우간 사실이다. 드러난 것처럼, 이러한 정책의 최종 결과는 기껏해야 블레어에 대한 자유주의적 선거대안일 뿐이다.
공동전선과 혁명가들의 과제
SWP는 끊임없이 정치적 동맹자를 구해보려는 자신들의 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거듭 볼셰비키의 ‘공동전선’ 정책을 종교적 주문처럼 만들어 의존해왔다. SWP는 그들이 벌이는 다양한 캠페인을 위해 그때 그때 만든 조직들을 죄다 이름 그대로 ‘공동전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자동맹, 저항의 세계화, 전쟁저지연합 등이 그렇다. 그리고 내년 6월 선거를 겨냥해 새로운 선거강령을 준비해서 등장할 것이 분명한 선거동맹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 가운데 괄목할 만한 영향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혁명적 정당을 도와주고자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정식화한 정책을 우려먹는 것은 다소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지적해야겠다. 왜냐하면, 이 정책은 거대한 규모의 계급투쟁이 노동자계급에게 제기되는 상황에서, 아직도 개량주의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획득하고자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SWP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한다 쳐도 자신들을 그런 혁명정당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또한, 거대한 규모의 노동자계급 투쟁이 임박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떠한 표시도 발견할 수 없다. SWP가 반전운동을 그러한 투쟁의 반영이라고 간주한다면 정말 어쩔 수 없지만, 그러한 반전운동에는 노동자계급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저 무기력하고 단조롭기까지 하다.
물론,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공동전선’ 정책의 토대가 되는 방법이고, 매우 다양한 환경 내에서 SWP가 적용하려 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방법론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론이 실제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 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레닌과 함께 공동전선 정책을 만든 장본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레온 트로츠키는 1932년에 독일 노동자계급이 파시즘의 위협에 대항해 싸우는 방법을 역설한 ≪유일한 길≫이라는 팸플릿에서 이 정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공동전선 정책은 싸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싸우려는 사람들을 분리해내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동요하는 사람들을 앞으로 밀어붙여 최종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이 보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지도자들의 정치적 가면을 벗겨내 노동자계급의 전투역량을 강화시키는 데 있다.”
볼셰비키에게는 공동전선이 무엇보다 먼저 전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을 겨냥한 정책이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전투역량을 강화하고자’ 고안된 하나의 정책이었다. 이것은 행동의 단결을 통해 노동자계급 자신의 결의를 강화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이 실제 싸우려고 하는지 시험받게 하면서 노동자계급이 이들에게 품고 있는 환상을 흩뜨려 놓아 궁극적으로는 ‘투항주의적 지도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개량주의적 지도자들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전투역량을 완전히 발휘하게 하는 데 장애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공동전선 정책이 분명하고 잘 규정된 목표에 집중해야 하며, 그 목표는 노동자계급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즉각 싸울 필요성을 깨달을 정도로 충분히 긴급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혁명적 정당들과 개량주의 지도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모든 협정은 전체 노동자계급이 철저히 파고들어가 따질 수 있도록 공공연해야 한다(전체 노동자계급에게 공개하지 않은 지도부 수준의 협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혁명정당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돕기 위해 노동자계급이 전부 보는 앞에서 자신들의 협정 파트너를 비판하는 것을 유보해서는 안 된다.
독일이라는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에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내놓았다. “사회민주당 혹은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과는 공동의 강령, 공동의 출판물, 깃발, 플래카드를 갖지 않는다! 각자 행진하되 파업은 함께 해야 한다! 어떻게, 누가, 언제 파업할 것인가만 합의하라! 그런 합의는 악마는 물론 악마의 할아버지들하고도 맺을 수 있어야 하는데, 심지어는 노스케*나 그레체신스키같은 작자들하고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손을 묶지 않는다는 한 가지 조건만 동의하라.”
따라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혁명정당은 말과 행동에서 자신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한 것이 볼셰비키가 지닌 공동전선에 대한 개념이었고, 그 정책의 기초에 놓여 있는 방법론이었다. 그렇다면, 이 방법론이 SWP가 다양한 캠페인을 벌일 때 사용하는 각종 정책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SWP는 볼셰비키처럼 자신들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찍이 살펴봤던 것처럼, SWP는 이 기사에서 언급한 어떠한 캠페인도 노동자계급이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노동자계급의 ‘전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한 캠페인들 각각은 계급적 내용이 박탈되어 있고 특정한 정치 환경을 표적으로 삼은 것들이다.
일부 경우, 노동자계급의 작은 소수를 포함할지는 모르지만 늘 일정한 종류의 중간계급 요소가 압도하고 있다. 이 캠페인들은 환상을 버리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자신들이 표적으로 삼는 특정한 정치 환경 내에서도 그렇다. 이와 반대로, 매번 SWP는 이러한 정치 환경 내의 환상에 적응해왔다. 예를 들면, 켄 리빙스턴을 런던 시장선거에서 지원하거나 특정한 종류의 개량주의적인 반세계화 조류에 빨간 칠을 하면서 말이다. 또한, 무슬림 종교집단들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지지를 구함과 동시에 영국 전쟁저지연합 내의 파트너들이 보여주는 김빠진 평화주의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런 평화주의를 수용한 탓에 SWP는 노동당에서 축출당한 국회의원 조지 갤러웨이*보다도 덜 급진적으로 보이게 됐다. 그리고 이들은 아마도 다가올 몇 달 동안, ‘환상의 티켓’으로 불리는 야쿱과 몽비오 류의 우유부단한 자유주의 또한 승인할 것이다.
요컨대, 공동전선이라는 말은 그동안 SWP가 내비친 기회주의라는 치부를 가려주는 역할만을 해왔다.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해왔던 노동자계급 내에서는 늘 기반이 없는데도 그들이 사회 내에서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지름길이라면 무엇이든 끊임없이 찾게 만든 게 바로 이 기회주의다. 이 때문에 SWP 지도부는 점점 더 노동자계급의 계급이해와 그 자신의 혁명적 강령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그 과제가 어렵고 당장은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 해도 모든 혁명가들이 오늘날 긴급히 수행해야 할 일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대변한다고 했던 모든 것을 조금씩 상실하게 되면 언젠가는 반드시 전부 포기하게 되는 (본질적) 성격의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먼저,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이 맞게 될 미래의 투쟁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우리는 노동자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꿰뚫어보게 하고, 실제로는 바리케이드 너머에 있는 가짜 친구들과 자신의 전정한 친구를 분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할 일은 모든 환상과 반동적인 편견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도 포함되는데, 이것들은 노동자계급이 오랜 기간에 걸쳐 제대로 된 반격을 못한 채 공격을 받아왔던 상황에 따른 부산물이다.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또 한 가지의 일은 노동자계급의 전투역량과 그들의 집단적 힘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느끼는 긍지를 재건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붙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들이는 노력의 대부분을 작업장 주위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착취에 신음하는 노동자계급이 매일 매일의 생존과 싸움에 무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 정치를 노동대중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은 매우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사활적인 것이다.
영국에 있는 모든 혁명적 그룹들 가운데, 현재까지는 SWP가 가장 전투적인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나라 노동자계급의 미래에 대해 다른 어느 그룹보다도 더 큰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만일 그들이 자유주의적, 종교적 세력들의 뒤를 쫓거나 유행에 빠져 환상일 뿐인 적과 싸우는 대신, 계급정치과 혁명적 강령으로 결의 있게 전환한다면, 이것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동안 노동자계급 내의 의식과 정치화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전환을 통해 정치적으로 비옥해질 SWP 자신의 전투적 재구성도 위와 똑같은 긍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점점 더 표류에 표류를 거듭하는 것으로부터 이러한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SWP는 그들이 가진 혁명적 자산을 낭비하면서 나아갈 길을 영원히 잃어버릴 위험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영국 Workers’ Fight의 Class Struggle, 2003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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