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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노동자당, 노조관료, 노동자계급
[1972년에 발표된 이 글은 세계에서 가장 큰 트로츠키주의 노동자계급 운동을 일구었던 과거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역사를 냉철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 글은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어떻게 노동자대투쟁의 물결과 결합해 비록 초보적이지만 노동자계급에 뿌리내린 계급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를 다룬다. 또한 이 정당이 어떻게 독자성을 철저히 견지하지 못한 채 여러 노조관료 분파들과 뒤섞임으로써 건강한 노동자투사들로부터 멀어지고 소부르주아에 기반을 둔 정당으로 퇴보하는가를 다룬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진정한 노동해방 세력은 좌우파 노조관료로부터 반드시 독립해 있어야 하며, 극악한 착취와 억압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는 밑바닥 노동자들에게 굳게 뿌리내려야 한다는 점을 절절하게 호소한다. 또한 미국처럼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통이 약하고 조합주의가 팽배한 나라에서는 노동해방 투사들이 ‘정치 활동가’가 아니라 단순한 ‘노조 서기’로 전락하는 것, 노동해방 조직이 ‘정치조직’이 아니라 단순한 ‘노조 지원 단체’로 굴러 떨어지는 것의 위험성을 설득력 있게 경고한다. 따라서 이 글은 노동운동의 조건이 미국과 꽤 비슷한 한국노동운동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 글 마지막의 경고는 [노동자의 힘]은 물론이고 수많은 소위 ‘좌파’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읽어야 한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경험 등을 바탕으로 해서 노동조합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일반적 원칙을 정립한 것이 우리 소식지 지난 호에 실린 ≪노동해방 투사와 노동조합운동≫이다. 함께 검토할 것을 권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몇 차례 더 미국노동운동의 경험을 계급적으로 평가한 글들을 번역 소개할 것임을 독자들에게 약속드린다. 본문 안의 옮긴이 주는 [ ] 표시로 처리했다.]
2차 세계대전 전야와 전후 초기에,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은 세계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지도조직으로 여겨졌다.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이 혁명운동 안에서 이런 특권적 지위를 가진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트로츠키가 미국지부 활동과 지부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부가 무엇보다도 그의 도움이라는 이점을 누렸다. 다른 한편, 전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은 작았던 반면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은 규모가 컸기에 다른 나라 조직들 수준을 어느 정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이 노동자계급과 실질적인 연계를 맺지 못하고 있던 때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자랑스럽게도 수백 명의 노동자계급 투사들을 당원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노동자계급의 몇몇 부문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약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이미지는 30년대의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끌어들일 수 있었던 수백 명의 노동자계급 투사들은 오래 전에 빠져나갔다. 그래서 지금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대다수의 다른 트로츠키주의 경향들과 비슷하게 베트남 반전운동이나 여성해방운동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미국 소부르조아 지식인들 가운데에서 주로 충원하고 있다.
그에 관한 몇 가지 신빙성 있는 통계자료를 보자.
1946년에 열린 사회주의노동자당 대회에서, 당 지도자의 한 사람인 패럴 답스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당원의 거의 절반이 주로 기간산업의 노동조합들에 속해 있다.” “꽤 많은 당원들이 노동조합들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많은 새 당원들이 미국의 주요 산업분야에서 뛰어난 노조 투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런 분야에서 모두 41개 당 지부가 움직이고 있다.” (댄 프라이드,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산업별노조회의(CIO)의 성장>, 팀 월포스, ≪미국에서의 맑스주의를 위한 투쟁≫)
그 당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당원 규모는 약 2,000명 정도였다. 그리고 답스의 주장에 따르면, 당원들 가운데 800에서 1,000명 가량이 기간산업의 노조 투사들이었다. 또한 당 대회에서는 자동차, 철강, 고무, 철도, 그리고 해운업에서의 당 활동이 보고됐다. 하지만 24년 후 1970년 여름에 열린 오버린 총회에서는 상황이 꽤 달랐다. 총회에 참가한 700여 명의 당원들 가운데 단지 115명만이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었고, 5명만이 전미자동차노조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다른 기간 산업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원은 아무도 없었다.(월포스, ≪1970년 사회주의 활동-교육 총회 보고서≫)
실제로 노조 투사들은 주로 교사들, 사회복지사들, 그리고 노동자계급 주변부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 외의 경우 당원들의 대다수는 1965년 이래 거대한 규모로 발전해 왔고,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온 베트남 반전운동에서 모집된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왜 불과 몇 년 사이에 노동자계급에 뿌리를 두었던 조직이 실제 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노동자계급을 완전히 포기하는, 본질적으로 소부르주아적 구성을 지닌 조직으로 바뀌어 버렸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역사 속에서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당이 처음에는 노동자계급 투사들을 획득했다가 결국에는 잃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배워야만 한다.
미국 좌익반대파의 특징
초기에 미국 좌익반대파는 국제 좌익반대파의 다른 지부들과 유사한 발전과정을 따라 미국공산주의동맹(좌익반대파) 그룹을 형성했다. 그들은 공산당과 싸웠고, 그로 인해 축출됐다. 그리고 1933년까지 [즉,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 스스로 미국공산당과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의 한 분파라고 자처하는 독자적 조직을 만들었다. 독일에서 코민테른의 정책이 실패[코민테른의 극좌적인 사회파시즘 노선이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도왔다]한 다음, 미국공산주의동맹은 새로운 공산당과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20년대 말과 30년대 초에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처한 조건은 같은 시기 유럽 동지들이 처한 조건과 차이가 있었다.
그 당시 미국 노동자계급은 정치적 경험을 갖지 못했으며 그런 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사회당과 공산당 모두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층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 점과 관련해, 공장들에서 그리고 노동자계급 운동 전체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의 통제력은 매우 약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로부터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계급 속에서 유일하게 조직된 세력은 노동조합 조직, 즉 미국노총(AFL)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노총은 노동자계급을 비교적 느슨하게 통제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미숙련노동자들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숙련노동자들의 일부만을 통제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노조관료제는 다양한 경향들이 뒤섞여 있었고, 전혀 동질적이지 않았다. 몇몇 미국노총 지부들에서는 미국노총에서 분리한 독립노조들이 여러 문제들에서 미국노총을 비판했다. 가령 조합주의, 타협주의, 자본가들과 공공연하게 협력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이런 특수한 조건 때문에 미국공산주의동맹은 자기 계획을 갖고 적어도 노조운동의 몇몇 부분과 정규적이고 성과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이점은 미국 좌익반대파에는 어느 정도 노조 활동과 일상적인 노동자계급 투쟁 경험을 지닌 투사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캐넌이 단적인 사례였다. 미국공산당의 설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캐넌은 세계산업노동자협회(IWW)와 함께 혁명적 조합주의 단계를 거쳐 맑스주의에 도달했다. 세계산업노동자협회는 1905년 창립됐는데 혁명적 조합주의 관점에서 계급투쟁을 바라봤다.
공산당에서 축출된 다음, 그는 스탈린주의 노동자투사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급진적 운동(당시 노조운동의 극좌파)에 속해 있는 다른 노동자들을 함께 트로츠키주의 운동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 트로츠키주의 운동이 노동자들로부터 완전히 단절됐을 때,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 운동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마스티(Muste) 그룹
미국 조합주의의 가장 급진적인 분파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분파는, 전직 목사인 마스티가 이끌었던 혁신적노동자행동(Progressive Labor Action)이라 불리는 조직이었다.
1917년에 마스티는 섬유노조가 이끈 로렌스지방 대파업에 참가했다. 그 이후로 마스티는 미국 조합주의의 극좌 편에 섰다. 파업 이후 상당기간, 그는 미국노총 소속 일부 연맹들이 재정을 지원한 정치학교를 이끌었다. 하지만 미국노총의 시각에서 볼 때 정치학교의 교육내용이 너무나 반체제적이었기 때문에 학교는 곧 폐쇄되었다. 그러자 마스티는 가장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노조투사들을 끌어 모았고, 당의 맹아인 혁신적노동자행동을 창립했다.
어떤 점에서, 마더 존스[미국 노동운동의 어머니]와 함께 마스티는 미국 노동자계급 운동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대공황이 닥쳤을 때 노동자계급의 분열을 막기 위해 실업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제안하고 착수한 최초의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노력은 전국실업자동맹을 낳았고, 이 조직은 곧 고도로 공업화된 중서부지역과 버지니아 서부지역에서 새로운 지부들을 조직했다. 아주 중요하게도, 마스티 그룹은 1934년 2월에 오하이오 주의 톨레도 지방에서 오토라이트 대파업을 이끌어냈다. 마스티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업을 주도했다. 노동자들이 결국 승리한 것은 동맹으로 강하게 조직되어 있던 도시 실업노동자들의 지원 덕분이었다.
이때까지는 유능한 조직가로서 그리고 매우 전투적인 투사로서 마스티는 일상투쟁에 완전히 몰두했을 뿐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투쟁이 점점 더 급진화되자(그 결과로 1937년에 노동자계급 투쟁이 크게 고양됐고, 대중적 노조운동이 탄생해 [숙련노동자 중심의 기존 미국노총(AFL)과 별도로] 산별노조회의(CIO)가 만들어졌다) 마스티와 그의 동료들은 곧 그들의 노조운동 조직을 실질적인 정당으로 전환하는 것을 1933년 말에 고려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노동자당이 1934년 초에 솟아나올 수 있었다.
혁신적노동자행동이 창립된 다음부터,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계속해서 마스티와 그의 그룹의 발전에 열광하며 주의를 기울여왔다. 그 결과 마스티가 이끌고 있는 수백 명의 전투적인 노동자투사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그 당시 미국공산주의동맹의 주요한 목표가 되었다.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는 1934년 말에 성공했다. 그 시기 두 번의 미니애폴리스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새롭게 얻은 명성이 이 성공을 촉진시켰다.
미니애폴리스는 그 당시 오픈샵(open shop)이 지배하는 도시였다[오픈샵 제도에서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도 사장이 고용할 수 있다. 반대로 클로즈드샵(closed shop)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만 고용할 수 있는 제도다.]. 다시 말해, 공장들 안에서 사장들은 노동조합을 사실상 불법으로 여겼다. 그때까지 미국노총의 어떤 시도도 계속해서 실패했다. 그 도시에서 지역 트로츠키주의 그룹은 노동자들에게 잘 알려진 전 공산당 투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미국노총 574지부 안에 팀스터노조[트럭운전사노조]를 조직했다. 이 노조의 지도자는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아주 밀접한 동지였다.
1934년 5월에 터져 나온 첫 번째 파업은 자본가들에게 노조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1934년 7월 16일에 시작된 두 번째 파업은 단지 첫 번째 파업의 자연스런 결론이었다. 지역 자본가들은 팀스터 노조의 사례가 확산되는 게 두려워 트럭운송업 사장들에게 몇 달 전에 한 양보를 철회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두 번째 파업은 5주 동안 지속되었다. 파업 노동자들은 도시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사장들이 돈 주고 산 용역깡패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은 피켓라인[파업규찰대]을 깨려고 했다. 그들은 실패했다. 두 번째 파업도 성공했다.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들이 끝없이 토론만 하는 조직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노동자당의 많은 투사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공산당이 막으려 했지만, 미국노동자당과의 통합은 1934년 12월에 달성됐다. 마스티 그룹[미국노동자당]은 미국공산주의동맹에 빠르게 흡수됐다.
게다가 통합으로 노동자 출신 투사들의 수를 상당히 늘림으로써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한층 강화될 수 있었다. 이렇게 미국공산주의동맹과 미국노동자당이 통합해서 만들어진 것이 노동자당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조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곧바로 트로츠키의 조언에 따라 새 당의 당원들이 사회당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좌파가 당 지도부를 장악해 사회당은 당시 미국 노동자계급의 급진화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사회당 내 활동경험은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 있었던 비슷한 경험에 비해, 미국 트로츠키주의 세력에게 훨씬 많은 성과를 안겨주었다. 사회당 가입과 탈퇴는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활동으로 미국 트로츠키주의 세력은 청년 사회주의자들 다수뿐만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 특히 해운과 자동차 산업 분야의 노동자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1938년 말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상당한 수의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당당한 새 조직으로 창건됐다.
조합주의적 기회주의
그러나 당은 매우 빠르게 노동자계급 출신 투사들이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창립되었을 때, 당에 참가한 노동자들 대부분은 주로 급진적 노조운동가로 활동해 왔을 뿐이며, 노동자계급 속에서 정치활동을 수행해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활동을 해야 하는 정치투사의 임무를 무시해 왔다. 이 점은 자신들을 노조 안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 투사가 아니라, 사회주의에 호감을 가진 노조운동가들로 보았던 사회당 출신 당원들뿐만 아니라 마스티 그룹 출신 노동자들에게도 공히 해당되었다. 캐넌은 사회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사회당은 노조운동 곳곳에 자기 사람들이 있지만, 진정한 당의 영향력은 없다. 왜냐하면 사회당 노조 활동가들은 당에 대해 어떤 의무감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제임스 캐넌, ≪미국 트로츠키주의의 역사≫). 그런데 이 점은 또한 사회주의노동자당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그것은 만만치 않은 문제였다. 미국 노동자계급에겐 정치적 전통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조차 자연스럽게 자기 투쟁을 노조의 틀 안에 가두곤 했다. 그 점을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는 1934년에서 1937년까지 용솟음쳤던 거대한 노동자투쟁의 물결이었다. 이 투쟁물결은 새로운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인 산별노조회의(CIO)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노동자당이 정치적 성과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노동자당이 그런 전통을 계승했지만, 당에 가입한 노동자계급 투사들을 나중에 혁명투사, 즉 정치적 투사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치조직’으로서 노동자계급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기에 당은 자기 투사들에게 노조기구 안의 분파투쟁을 이끌게 하는 데 만족했다. 당은 스스로를 노동조합 좌파로 간주하면서 자기 정책을 점점 더 노조의 상황에 수동적으로 적응시키는 방향으로, 결국에는 미국노총의 관료주의에 적응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와 같은 극도의 수동성 때문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미국 노동자계급의 억압받는 층 대다수에게, 특히 흑인들에게 완전히 이방인으로 머물러 있었다. 1939년 4월에 트로츠키는 이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노총에서 출발한 낡은 조직은 노동귀족의 조직이다. 우리 당도, 그 중에서도 흑인이 가장 극심하게 착취당하고 있는 피착취 노동자대중의 일부가 아니라 노동귀족적 조직들의 일부다. 우리 당이 아직까지도 흑인문제에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불안한 징조다. 노동귀족이 기회주의의 기반이자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게 만드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가장 억압받고 차별받는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의 가장 역동적인 대열이다.” (월포스, ≪트로츠키 : 1939년 4월, 존슨과의 토론≫)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미숙련노동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 증명되었다. 1935년과 1936년 사이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노조체계 특히 미국노총에 수동적으로 순응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역동적 힘으로부터 단절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산별노조회의(CIO) 안에서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나중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이 그쪽으로 방향을 전환했을 때는 결국 너무 늦어버렸고 매우 제한적인 성과만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상 수백만 미숙련노동자들이 가입한 산별노조회의(CIO)의 등장은 본질적으로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로 남아 있었다.
1939년 8월에 히틀러와 스탈린의 협정[독소불가침조약]이 체결된 후에야 산별노조회의(CIO) 안에서 제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까지 진보파(즉 친루즈벨트파) 노조투사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막아왔다. 그러나 소련이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은 다음 스탈린주의자들은 더 이상 루즈벨트[당시 미국 대통령,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유명하다]를 지지하는 진영에 머무를 수 없었다[소련이 나치 독일과 손을 잡아 미국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소련의 통제를 받던 미국 스탈린주의자들은 더 이상 미국 루즈벨트 진보파와 협력을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루즈벨트 지지 진영에는 온갖 종류의 노조관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있던 노동자들에게서 어느 정도 신뢰를 잃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트로츠키가 경고했는데도 트로츠키주의 투사들은 잘못 홀려서 친루즈벨트파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실제 그들은 새로운 동맹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친루즈벨트 관료들에 대한 공격을 거부했고, 스탈린주의 노동자들을 획득하기 위한 행동은 모두 포기해 버렸다. 결국 그것은 또 다시 공산당이 수천 명의 노동자계급 투사들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둘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노조관료들과 완전히 동맹을 맺는 걸 의미했다. 미국 노동자계급 가운데서 가장 정치적인 분자들이었던 이들 투사들은 히틀러-스탈린 협정 때문에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렸다.
트로츠키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폭로했다. 1940년 6월에 가진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자들과의 토론에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얘기했다.
“진보파들의 지지는 불안정하다. 그것은 평조합원들의 흐름이 아니라 노동조합 상층에만 기초한 것이다. 이제 전쟁이 시작되면 그들 진보파는 우리와 맞서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강한 계급적 기반[노조 상층의 기반이 아닌 평조합원들 속의 기반]이 필요하다.”
그 뒤 그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노조 신문인 ≪북서부조직자(North west Organizer)≫에 다음과 같이 썼다.
“여러분은 루즈벨트파 조합주의자들의 눈에 타협적으로 비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두려워하게 되면, 여러분은 독립성을 잃고 반(半) 루즈벨트파가 될 것이다. 우리의 정책은 지나치게 루즈벨트파 조합주의자들에게 우호적이다. 나는 ≪북서부조직자≫에서 이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에도 우리가 이 점을 토론했지만, 한마디도, 단 한마디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북서부조직자≫는 바뀌지 않고 있다. 그것은 루즈벨트파에 순응적인 우리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같다.”
트로츠키는 그러한 태도를 “루즈벨트파와 즉각 부딪치기, 평조합원이 아니라 우리의 동맹자들, 관료들, 의식적인 루즈벨트파들과 충돌하기, 즉 우리 계급의 적들과 대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관료와 루즈벨트파에 순응하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행동은 단지 당이 이 관료체계 내에서만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평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독자적 기반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트로츠키는 이 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인 조셉 한센이 이렇게 물었다.
“우리 당이 노조 관료제에 정치적으로 순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트로츠키 동지가 보는지 궁금합니다.”
트로츠키가 대답했다.
“나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북서부조직자≫를 지켜보면서, 나는 그동안 내내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그 신문은 계속 정치에 무관심합니다. 이것은 위험한 징조입니다. 스탈린주의 당에 대한 작업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험한 징조입니다.”
전쟁과 전후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당에 대한 트로츠키의 경고는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트로츠키가 죽은 후에도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동일한 정책을 유지했다. 1941년 12월에 미국노총과 산별노조회의(CIO) 관료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미국이 전쟁에 개입한 뒤에야,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과거에는 동맹자였지만 이제는 ‘빨갱이 사냥꾼’이 된 루즈벨트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거의 1941년부터 신성동맹에 열광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고, 루즈벨트 진보파 조합주의자들과 새로운 밀월을 즐기기 시작했다.[전쟁 시기에 CIO는 자본가계급과 협력하며 노동자들을 용이하게 동원하기 위해 ‘전시노동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을 막고, 임금을 축소하며, 노동시간을 늘렸다. 이처럼 미국의 ‘국익’이라는 ‘신성한’ 목표 앞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포기하고 자본가들과 동맹을 형성하는 미국 노조관료들의 전통을 표현한 것이 ‘신성동맹’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파업이라도 막아내려 한다는 점을 아주 열성적으로 증명했다. 그 점에서 종종 스탈린주의자들은 미국노총과 산별노조회의 관료들을 능가했다. 그들은 평조합원의 압력 때문에 노조관료들이 어쩔 수 없이 돌입을 선포한 파업들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1945년부터 1947년 사이에, 산별노조회의의 지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루즈벨트파와 스탈린주의자들 사이에 또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타 세력들과 차별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대신 두 진영으로 쪼개졌다. 한쪽은 스탈린주의자들을 지지했고, 다른 한쪽은 루즈벨트파를 지지했다. 산별노조회의는 물론 미국을 통틀어 가장 큰 노조 중 하나인 전미자동차노조에서 이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래서 전미자동차노조는 친루즈벨트 ‘진보파’인 로이터 분파와 스탈린주의 세력인 토마스-애디스-레너드 분파 사이의 ‘진흙탕 개싸움’판이 됐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처음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로이터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산별노조회의 관료체계의 스탈린주의 분파에 맞선 투쟁은 스탈린주의자들이 보여준 관료적 폐해와 계급협조 정책에 맞서 진실한 투사들이 벌이는 최초의 투쟁이었다. 이것은 필수적이며 진보적인 투쟁이었다.”(아트 프라이스, ≪노동자들의 약진≫)
로이터에 대해서는 그가 관료라는 점을 무시하고, 그를 ‘1946년에 전미자동차노조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도자’로 묘사했다.(같은 책)
그러나 로이터의 ‘진보주의’는 트로츠키주의 투사들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단순한 관념의 산물이었다. 그런 로이터의 ‘진보주의’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로이터는 아주 빠르게 토마스-애디스-레너드에 대항한 자신의 싸움을 그 시기에 시작된 [노동해방 투사들에 대한] 마녀사냥의 일부로 여겼다. 자동차노조에서 코크란을 중심으로 한 트로츠키주의 투사들은 이제 다른 분파를 지지하면서 로이터를 그만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이런 방침에 대해 일시적으로 반대했지만 결국 같은 편이 되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다음과 같이 썼다.
“1946년에서 1947년 사이의 [전미자동차노조 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토마스-애디스-레너드 파는 노조 민주주의 문제와 태프트-하틀리 선언[미국의 악명 높은 노동법개악 선언]과 같은 다른 주요한 문제들에서 로이터에 비해 더 나은 입장을 제시했다.”(같은 책)
여러 경향의 노조관료들과 완전히 뒤섞여 버렸기 때문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명백한 재앙을 맞게 됐다. 전투적인 노동자투사들은 그 다음 시기에 모두 조직을 나가 버렸으며, 남아 있는 이들은 쉽게 노조관료들에게 순응해버렸다.
이 점은 1952년과 1953년 사이의 ‘코크란 분열’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 분열은 필연적으로 디트로이트와 플린트의 자동차산업에서 활동하던 노조 투사들도 분열시켰다.
이 사건 때문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자신의 노동자계급 요새 가운데 하나를 잃었다. 당에서는 떠났지만 노동조합에서 계속 활동한 투사들은 30년대에 트로츠키주의 운동에 가담한 분자들이었다. 캐넌이 그들의 특징을 묘사했는데, 그들은 연장자로서 특권을 누리는 늙은 노조 투사들, 젊은 미숙련 평조합원들로부터 단절된 숙련노동자들이었다. 이 묘사는 맞다. 불행하게도 이런 유형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주요한 노동자계급적 기초를 구성했다.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번영의 13년 동안 지속됐고, 6년의 매카시즘[빨갱이사냥] 시기에도 유지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노조관료제에 대한 기회주의 정책은 늙은 노동조합 투사들을 노조체계에 깊숙이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던 반면에,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부터는 멀어지게 했다. 이것은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만 나타나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었다. 같은 시기에 공산당 또한 매우 많은 수의 투사들을 잃고 있었다. 이것은 마녀사냥 시기에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들은 노조체계에서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려 하면 당에서 탈퇴해 버렸다.
그 시기가 끝났을 때 사회주의노동자당은 100~200명 규모로 축소된 보잘 것 없는 조직으로 60년대 초반을 맞이해야 했다. 이 시기에 당은 소부르조아의 급진화로부터 득을 보았다[베트남 반전운동이 고양되자 당은 새로운 소부르조아 성원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이 당이 갖고 있던, 뛰어난 트로츠키주의 노동자계급 조직이라는 정체성은 잃게 된다.
실제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경험은 세계 트로츠키주의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이다. 평조합원들을 기반으로 하지 못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무능력은 단순히 미국의 특수한 조건을 운운한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는 없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공장 안의 정치활동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거의 배타적으로 노조 활동을 강조했다. 그리고 노조 투사들을 아주 느슨하게 통제했다. 이런 점들이 사회주의노동자당을 노조관료제에 순응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런 조건에서 미국 트로츠키주의 투사들은 언제든지 이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노조관료들의 지배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곧이어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노조 부문은 노조관료제의 일부가 됐고, 결국 이러한 환경 속에서 붕괴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단지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제4인터내셔널의 다른 ‘노동자계급’ 지부인 벨기에 지부에서도 나타났는데, 그들도 비슷한 진화과정과 운명을 겪었다.
오늘날 프랑스, 영국, 볼리비아, 혹은 실론[스리랑카]을 포함해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의 트로츠키 그룹들, 혹은 트로츠키주의에 가까운 그룹들은 대부분 유사한 태도들을 취하고 있다.
미국에서 주요한 ‘노동자계급 활동’은 노동조합 안에서 ‘[분파]모임’을 만드는 것에 집중돼 있다. 드물지만 공장신문 발간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혁명조직의 기관지가 아니라 단지 현 노조 지도부에 반대하는 노조신문으로 바라볼 뿐이다.
미국에서도 또 다른 그룹들은 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위원회들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자기 활동을 지역 노조 지도자들로부터 파업 지지 성명서나 청원서를 모으는 것으로 제한한다. 이것은 조합주의자들이 그런 손쉬운 방식으로 자신을 진보파 또는 반대파인 체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다시 그들은 사회주의노동자당과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또 다시 노동자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그 결과 혁명적 강령으로부터도 등을 돌린다.(1972년 11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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