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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지진해일 대재앙의 교훈
이번 동남아 지진해일(쓰나미)은 지금까지 공식 통계만으로도 22만 명이 넘는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만 하더라도 하루에 6천 명씩 시신을 매장해야 하고, 긴급하게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염병 등으로 수십만 명의 추가 희생자가 생겨날 수 있으며, 완전복구까지 5~10년은 걸리는 인류의 대재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진지하게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검토해봐야 한다.
이번 동남아 지진해일은 단순한 자연재해였을 뿐인가 아니면 인재(人災)의 성격도 강하게 갖고 있는가? 만약 인재(人災)의 성격도 강하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어떤 세력에게 있는가? 그리고 세계 노동자민중의 헌신적인 구호활동과 각국 정부의 지원경쟁은 질적으로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각국 정부의 지원경쟁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더 나아가 이런 대재앙이 또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글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지진해일은 자연재해일 수 있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이번 지진해일이 발생했던 것은 현재로서는 인간이 어찌해볼 수 없는 단순한 자연재해일 수도 있다. 지구 속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그로 인한 해일을 통제할 만한 힘을 인류는 아직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 지진이 일어나는 데 인류의 활동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예측들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갈라져서 바다 속 지각에 떨어졌을 때 발생한 충격이 이번 지진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온도가 상승해 지구 내부의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 지진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예측들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므로 이번 지진해일이 ‘단순한 자연재해였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설사 지진해일이 자연재해였다 해도 그로 인한 결과가 모두 자연재해인 것은 아니다. 이번 대재앙에는 여러 사회적 요인들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조기경보체계만 갖추었어도
지진해일에 희생당하지 않으려면 해변가에서 1km 정도 떨어지거나 20~30미터 높이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면 됐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대개 30분이면 충분하다. 실제로 조상들로부터 지진해일에 대해 들어온 어느 마을 사람들은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자마자 산으로 대피해 희생자를 거의 내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조기경보체계만 잘 갖추어져 있었다면 물적 피해는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인명 피해는 거의 없게 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조기경보체계가 없었다고 해서 피할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타이 기상청의 경우 해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았지만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유는 ‘관광산업에 타격이 미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는 정부 관료들이 결국 막을 수 있었던 대참사를 방치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대재앙은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니라 지배계급이 ‘대재앙이 있어도 이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묵인하여 이루어진 대학살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다.
우리들은 자본가계급이 거의 항상 이와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아주 잘 안다. 삼풍백화점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건물에서 물이 많이 새고, 금이 크게 갈라지며, 흔들리는 등 붕괴 조짐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삼풍백화점 자본가들은 귀금속품을 챙겨서 자기 몸만 빠져나왔을 뿐, 삼풍백화점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과 쇼핑 중이던 시민들은 대피시키지 않았다. 자본가들에게는 사람의 생명보다 돈벌이가 100배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지진해일은 지난 100년 동안 태평양에서 주로 일어났으며 인도양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 국가들이 지진해일에 대비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저명한 지질학자 케리 시 교수가 2003년 7월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초대형 지진해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알리고 섬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요령을 교육시키며,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거듭 경고했는데도 인도네시아 관리들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그런데 케리 시 교수가 경고한 지역들은 모두 이번의 지진해일로 큰 피해를 본 곳이다. 따라서 이번 대재앙은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었기에 피할 수 없었던 자연재앙인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는데도 자본가정부의 관료들이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겼기에 발생한 대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 차원의 착취와 극심한 가난이 대참사를 낳았다
인도네시아 관리들은 ‘조기경보체계를 설치하고, 주민들을 교육하는 데 들어갈 돈이 없다’고 했다. 만약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겼다면 대재앙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주장은 형편없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 정부가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더 가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도네시아는 1,500억 달러의 외채를 지고 있다. 이것은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의 65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04년에 약 140억 달러 정도를 갚을 예정이었다. 이것은 그 해 계획된 조세 수입의 대략 절반에 해당한다. 스리랑카 역시 101억 달러의 외채에 짓눌려 있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피해국들은 대개 국민총소득의 50퍼센트가 넘는 외채에 시달려 왔다. 이 빚을 갚느라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과 복지에 쓰일 돈이 삭감되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국민의 2/3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할 정도로 극심한 가난을 겪기까지 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 자본가들은 인도네시아 같은 가난한 동남아 국가 노동자민중을 쥐어짜서 배를 불려왔던 것이다.
똑같은 자연재해일지라도 부자나라인가 가난한 나라인가에 따라 그 피해 정도가 확연히 다르다. 한 예로 2004년 가을 허리케인이 아이티와 미국 플로리다 지역을 동시에 강타했는데, 아이티에서는 2,000명이 사망한 반면 플로리다에서는 1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타이처럼 동남아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제가 발전한 나라의 경우 피해가 적었던 반면,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처럼 상대적으로 덜 발전한 나라의 경우 피해가 막심했다. 결국 동남아가 선진강대국과 초국적 자본들에게 극심하게 수탈당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인류가 발전시켜온 놀라운 경제성장의 혜택을 보다 고르게 나눠가질 수 있었다면 이렇게 끔찍한 대재앙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동남아 국가들이 자국민의 생명보다 자국 자본가 및 초국적 자본가들의 이익을 더 중시함으로써 동남아 민중을 희생시킨 ‘깃털 수준의 살인공범’이라고 한다면, 선진국과 초국적 자본들은 ‘이번 사건의 몸체를 이루는 주 살인범’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쩨쩨했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최근에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의 자본가정부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지원액을 늘렸다. 하지만 지진해일 사태가 막 발생했을 때 그 강대국들은 아주 시큰둥한 반응만을 보였을 뿐이다. 세계 최대의 부자나라인 미국 부시 자본가정부는 처음에 고작 1,5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너무 인색하다는 비난이 일자 부시는 지원액을 3,500만 달러로 늘렸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에서 매일 아침 식사를 하기도 전에 3,500만 달러를 쓴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고 나서야 미국은 지원액을 3억 5천만 달러로 10배나 더 늘렸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자본가정부는 이라크를 파괴하는 데 1주일에 10억 달러나 쓰고 있다.
중국 자본가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의 맹주로 무섭게 돌진하고 있는 중국이 12월 30일까지 내놓은 지원액은 겨우 260만 달러였다. 이것은 뉴질랜드의 360만 달러는 물론 홍콩 한 재벌의 310만 달러보다도 더 적은 규모다. 크기로 볼 때 중국의 한 성(省) 정도인 대만이 제공하기로 한 구호금(530만 달러)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안팎으로부터 계속 비판을 받고서야 중국 자본가정부는 2억 달러로 지원액을 늘리겠다고 했다.
이런 문제에서는 한국 자본가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부가 처음에 제시한 액수는 60만 달러였는데, 이 돈은 원화로 환산할 때 7억 원도 안 되는 소액일 뿐이다. 일급 부자들이 사는 강남 대치동의 타워팰리스는 시가로 17억 원에 이르므로, 그 돈은 집 반 채 값도 안 되는 것이었다. 국내외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고서야 한국 정부는 500만 달러로 번복했으며, 다시 ‘인류대재앙에 대한 책임의식이 고작 이것뿐이냐’는 비판적 분위기에 떠밀려 5,000만 달러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세계 노동자민중이 보여준 뜨거운 인류애
대단히 인색했던 자본가정부들을 압박한 것은 세계의 노동자민중이었다. ‘현대사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이번 재앙에 대해 세계의 노동자민중은 주머니돈을 털어 열심히 지원했다. 노동자민중의 지원 손길이 거대한 파도를 이루었다. 이 거센 파도를 거스를 수 없었기에 자본가정부들은 마지못해 지원 액수를 최소 10배에서 최대 100배 이상까지 대폭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노동해방운동과 혁명전통이 강해 연대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사회 저변에 뿌리내린 유럽 쪽에서 먼저 노동자민중의 모범적인 지원 물결이 만들어졌다. 가령 독일의 경우 국민의 95%가 성금을 하겠다고 밝혔고, 1월 초에 이미 그 중 2/3 가량이 성금을 한 상태였다. 그래서 독일의 구호성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재난구호 모금 역사상 최대치인 3억 유로를 기록했다. 독일 정부가 5억 유로를 내겠다고 말했던 것도 슈뢰더 총리가 말했듯이 “독일 국민들(즉 노동자민중)이 그러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유럽 나라들도 비슷했다. 이렇게 아래로부터 뜨거운 인류애가 솟구쳐 오르자 유럽연합은 1월 5일 정오에 3분간 애도 묵념시간을 가졌다. 이때에는 공장도 기차나 지하철도 은행도 학교도 거리의 차들도 모두 멈추어 섰다. 모든 유럽인들은 숙연하게 머리를 숙이고 인류대참사를 애도해야 했다.
노동자민중의 뜨거운 인류애는 유럽 대륙에서만 피어오른 것이 아니었다. 미국 자본가정부가 쩨쩨하다고 손가락질 당하던 바로 그 순간에도 미국의 평범한 노동자민중은 모금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것은 9·11 이후 최대의 자발적 모금운동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성금이 또 하나의 해일을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지진해일로 미국 사람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미국인 희생자 수는 많지 않았지만 미국의 가난한 노동자민중은 자본가정부와는 정반대로 인류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과 형제애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역사에서 항상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배자들, 부자들은 피지배자들, 가난한 자들의 아픔에 대단히 둔감하며, 설혹 그 아픔에 대해 안다고 하더라도 가급적이면 외면하려 하는 반면, 오히려 같은 피지배자들, 가난한 자들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이야기해주듯이 같은 계급적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고 서로 연대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지배자들, 부자들은 ‘남의 불행을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이기주의자들인 반면 피지배자들, 가난한 노동자민중은 ‘남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으로’ 여기고 불행 없는 세상을 간절히 열망하는 공동체주의자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모든 인류는 형제’라고 생각하며, 막연히 ‘인류공동체’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순한 휴머니즘에서는 벗어나야 하며,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단호한 계급투쟁을 통해 노동자해방 공동체를 건설할 때만 착취와 억압이 없는 진정한 인류공동체가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깨달아야 하지만 말이다.
강대국 자본가정부의 기부에 담긴 음흉한 의도
강대국 자본가정부가 서로 지원경쟁을 벌이는 것은 단순히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들은 여기에서도 눈을 부라리고 주판알을 튕기면서 온갖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다.
먼저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대량살상무기도, 후세인 정부가 빈 라덴 집단과 연결되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음이 분명해졌다.
결국 그 전쟁은 세계에서 두 번째인 이라크의 석유를 강탈하고,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이 생산한 무기를 소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치러진 범죄적인 침략전쟁이었음이 뚜렷해졌다. 부시 자본가정부는 두 손과 온 몸이 피로 범벅이 된 끔찍한 살인마집단임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자본가정부는 3억 5천만 달러를 지원하고, 15,000여 명의 미군을 파견하여 복구활동을 벌임으로써 ‘다른 어려운 나라들을 돌보는 맏형’이라는 ‘양의 가면’을 쓰려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지금 이라크, 이란, 북한의 ‘3대 악의 축’ 가운데 나머지 두 나라인 이란과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전쟁이란 미국 자본가정부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과시하고, 자국 안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며, 군수물자를 소비할 수 있는 유력한 계기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추구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자본가정부로서는 세계적 차원의 거센 불만과 저항의 기운을 이번 지진해일 사태에 대한 지원 제스처를 통해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일본, 독일, 중국, 호주 같은 다른 강대국의 자본가정부들도 모두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재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령 일본과 독일 자본가정부는 이번 활동을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며, 더 나아가 일본 자본가정부는 이번을 자위대 파병의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 쓰나미 피해 지역은 풍부한 자원과 상품시장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다. 따라서 강대국 자본가정부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재난 구호활동을 하는 것은 이 지역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경제적 경쟁을 정확히 반영한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최근 동남아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70년대 이후 동남아를 ‘엔 블록’으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여 자기 집 ‘앞마당’ 정도로 만들었다. 그런데 중국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함에 따라 일본과 중국의 불꽃 튀는 동남아 쟁탈전이 본격화됐다.
따라서 결국 강대국 자본가정부의 지원은 또 다른 ‘투자’의 성격을 지니며, 그것도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억압과 약탈을 강화하기 위한 ‘덫’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만약 세계 노동자민중이 미국 자본가정부의 재난구호에 담긴 음흉한 제국주의적 의도를 예리하게 간파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세계 노동자민중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면서 얼마든지 또 다른 전쟁으로 치달아갈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동남아 노동자민중이 ‘사랑의 손길’이라면서 강대국 자본가정부가 내놓는 지원의 손길이 ‘약탈을 강화하기 위한 손길’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더 강화된 약탈과 종속의 늪에 빠져 신음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이, 더 성실하게 지원하고 부채 전액을 즉시 탕감하라
강대국의 지원에 불순한 계급적 의도가 담겨있다는 이유로 강대국의 지원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어리석다. 강대국 자본가정부의 지원은 ‘덫’이라는 부정적 성격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압력의 산물’이라는 긍정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세계 노동자민중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대로 강대국 자본가정부를 압박하여 생색내기 차원에서 쥐꼬리만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재앙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대폭 지원하라고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리고 강대국 자본가정부들이 자신이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도록 강제해야 한다. 강대국 정부와 IMF 같은 국제 자본가기구들은 2003년 12월 이란의 밤 시(市)를 강타한 지진 때에도 11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겨우 1,750만 달러만이 전달됐다. 니카라과, 온두라스, 방글라데시, 팔레스타인, 르완다 등 지난 몇 년간 재난과 분쟁으로 고통 받은 지역들에서 매번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2002년에 부시 대통령은 아프리카 국가의 개발지원금으로 한 해 최대 5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대참사가 발생했을 때 강대국 자본가정부들은 그 참사에 쏠린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호응을 얻기 위해 약속을 남발한다. 하지만 노동자민중이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가 빠듯하고 자본가언론방송이 냉정하게 외면해서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됐을 때 강대국 자본가정부는 자신이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린다. 그리고 이번 참사의 핵심원인 중 하나였던 동남아의 극심한 가난은 엄청난 부채 때문이므로, 즉시 부채 전액을 탕감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도 이미 독일 슈뢰더 총리가 ‘부채의 일부 탕감이나 상환 유예’를 주장했고, G7(선진7개국)과 파리 클럽(서방의 채권국 모임) 회원국들은 채무를 일시 유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이번 지진해일 피해국의 부채를 전액 완전히 탕감해야 5~10년씩이나 걸려야 겨우 수습될 대참사의 고통에서 동남아 노동자민중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부채 전액을 즉시 탕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더 많은 희생을 묵인하고 조장하는 사실상의 살인행위로 규정하고 강대국 자본가정부, 국제 자본가기구를 거세게 공격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고국 방문의 자유를!
한국에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피해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그들은 가족의 생사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미등록노동자(소위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일단 출국하고 나면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없다. 큰 빚을 지고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평생토록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도 이들이 인도적 차원에서 고국을 방문하여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한국 자본가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자본가정부는 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고국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가? 그것은 만약 고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것을 허용할 경우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왔던 불법체류자 단속추방 정책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게 허물어질 것이었으면, 왜 수십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죽이면서까지 그토록 혹독하게 통제했겠는가?’, ‘한번 허물어지면 앞으로도 계속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본가정부의 생각일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가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인류의 고통을 줄이고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지배질서를 철저하게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 점에서 자본가정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다. 그런 만큼 그들의 이번 재난 지원은 대단히 위선적인 것이다.
자본은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고혈을 짜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의 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금지된다. 그래서 자본가정부는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 같은 데에서 짐승처럼 부려먹기 위해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이주노동자들의 고용을 허가할 뿐이며,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변덕스런 노동시장 상황에 맞추어 이주노동자들을 끌어다 썼다가 내보냈다가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본의 필요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결정되는 소모품이서는 안 되며 인간적 필요를 위해 자유롭게 왕래할 권리를 갖는 당당한 인간이어야 한다.
또 다른 인류대재앙을 막는 단 하나의 길
과학기술의 발달은 과거에는 자연재해였던 것들을 더 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왔다. 바다의 거센 파도는 튼튼한 배를 만듦으로써 더 이상 사람을 삼키는 재앙이 아니게 됐다. 하늘에서 순식간에 떨어져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던 벼락은 피뢰침의 발달로 이제는 온순하게 길들여진 ‘단순한 자연현상’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여 어지간한 자연재해에는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리게 됐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소수 자본가들에게 독점되어 불평등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자연재해조차 끔찍한 대재앙이 되고 있다.
만약 전 세계가 노동해방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면, 동남아 곳곳에 조기경보체계를 세워두고 이중 삼중으로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해일 방어벽을 설치해두며 가옥과 건물, 배를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었을 것이므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대폭 줄어들었을 것이다. 동남아 자본가정부들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을 쳐댔는데, 지금이 노동해방 사회라면 단지 지금까지 쌓아놓은 경제적 성과만을 이용하더라도 그 정도 대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도 예방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세계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연대할 것이다. 지구촌 반대편에 사는 노동자라도 인류의 일부가 겪는 재앙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지원물품을 보내고 격려의 편지를 쓰려 할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기 일을 빨리 마치거나 일손을 놓고서라도 모두 달려가 복구 작업을 적극 거들 것이다. ‘동남아 지진해일로 관광객들이 제주도로, 한국으로 몰려올 것이다. 피해가 큰 만큼 복구공사도 많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떼돈을 벌 수 있겠구나.’라며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본가들의 이기주의적 모습은 전 인류의 연대물결이 ‘거대한 해일’을 이루는 노동해방 세상에서는 조금도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당면 노동자투쟁과 지진해일 참사에 맞선 투쟁은 하나다
다른 나라 언론방송이 매일같이 동남아 지진해일을 집중 보도하고 있을 때 한국의 언론방송은 ‘진흙탕 개싸움’의 정치계 기사나 잡다한 연예계 기사 따위에 매달리고 있었으며, 동남아 지진해일에 대해서는 한 귀퉁이에 조금 집어넣어 가볍게 취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은 이런 자본가언론방송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노조 차원에서 성금을 모금하는 등 지원 작업을 활발하게 전개해야 한다. 이런 지원 작업은 보다 거대하게 자라날 국제적 연대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금모금 등 소극적 지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부채 전액의 즉시 탕감, 성실한 약속 이행, 재난을 이용한 피억압민족과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한 탄압 금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면서 세계 자본가계급을 상대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 자본주의 불평등 구조를 깨뜨려야만 계속 되풀이되는 대재앙을 막을 수 있으므로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 및 그 정부에 맞선 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해야 한다. 그 점에서 불법파견 철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민주노조 사수, 임금인상 등을 위한 노동자투쟁은 모든 대재앙의 근원인 가진 자들의 질서에 크고 작은 파열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동남아 지진해일 대재앙에 맞선 투쟁’과 근본적으로 연관을 맺는다.
이번 동남아 지진해일 대재앙에서 드러나는 세계 자본가들의 탐욕과 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하면 할수록 현장 사안으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도덕적 우월성을 느끼며 더 자신 있게 자본가들에 맞서 투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자통제를 강화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한국인과 외국인들로 노동자들을 더욱 분열시키려 하며,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조건을 개악하려 하는 것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하면 할수록, 동남아 지진해일 문제로 자본가계급과 투쟁하는 것이 더욱더 수월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두 가지 투쟁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리고 이 두 투쟁은 노동자계급이 노동해방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그 길을 향해 단호하게 나아갈 때 더욱더 굳게 결합하고 강화될 수 있다.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 모든 과학기술을 이윤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사용하여 자연의 파괴력을 합리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세상, 노동해방 새 세상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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