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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철학
우리는 왜 철학을 다루어야 하는가?
철학을 대하는 일반적 관점들
왜 이런 반응들이 나올까?
우리의 철학 - 실천철학
철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유물론과 관념론
모든 것은 변화한다
어떻게 이런 운동이 일어나는가? -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운동의 방식 - 양의 질로의 전화 및 그 역의 법칙
운동의 전체상 - 부정의 부정의 법칙
자연의 법칙과 인간사회 즉 역사의 법칙
실천을 향하여
우리는 왜 철학을 다루어야 하는가?
모든 이론은 실천의 지침, 행동의 지침일 때 현실적인 의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실천과 결부되고 실천 속에서 증명되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론들은 ‘죽은 이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에 대하여, 정치에 대하여, 문화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등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철학을 다룰 때에도 우리는 철저하게 실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철학에서는 경제, 정치, 법, 언론, 교육, 문화, 사회 등 구체적 사안들을 대하는 데 필요한 기본관점과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그 문제들을 항상 노동자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뼈대가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수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모든 문제들에 일관되고 통일된 방침으로 대응하며 실천할 수 있는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 분석의 방법을 바로세우는 것, 그것이 철학을 배우는 목적입니다.
철학을 대하는 일반적 관점들
그런데 그동안 철학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실천의 무기로 철학을 습득하기는커녕, 도대체 철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철학에 대한 올바른 접근방식을 찾기 위해 우선 일반적으로 철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보도록 합시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철학은 과연 필요한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 철학 이야기들은 대체로 어렵고, 추상적이고, 현학적이고, 때때로 말장난 같으며 골치만 아프게 하는 쓸데없는 논의인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철학이란 비상한 두뇌를 가진 철학자들 또는 한가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며, 우리 같은 대중은 감히 접근할 수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왜 이런 반응들이 나올까?
이런 생각들이 널리 퍼지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간의 철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존 철학자들은 철학을 대중의 삶과 괴리된,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세상의 잡다한 일들과는 무관한 지극히 순수한 그 무엇으로 다루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대중의 삶 속에서, 현실에서 전개되는 인간집단들의 투쟁 속에서 철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서재에 처박혀 (또는 속세를 떠나 은둔자 생활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철학은 실천 속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실천을 통해 진리임이 증명되는 철학이 아니라 오직 일개 철학자의 관념의 산물이 되었습니다. 개념이 개념을 낳고, 이론이 이론을 낳는 현학적인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철학가들은 진리의 이름 아래 신비롭고 난해한 세계를 펼쳐놓았고, 철학은 철학적 언어에 익숙하지 못한 대중이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확립된 철학이 대중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런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이론들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을 해명하기는커녕 어떤 철학자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본질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아낼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의 실천에 대부분의 철학들이 아무런 지침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많은 철학자들이 기존의 사회질서와 기득권 집단을 옹호하고,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을 비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변증법을 체계화한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헤겔은 철학이 발전하는 데에서 대단히 혁명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변증법적 사고방식은 모든 사물을 운동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멸망하여 마땅하다! 이것이 헤겔의 주장이었고, 또한 그것은 낡은 봉건사회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의 철학적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계급대립 격화과정은 또한 헤겔철학이 보수화되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주장했던 ‘모든 것은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전제와는 일치하지 않는 ‘최종적이고 완결된 진리의 체계’를 추구했습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한, 진리의 체계 또한 고정되고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운동하고 발전해가는 열린 체계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한 헤겔은 자신의 논리학체계를 통해 철학은 완성되었다고 선포했고, 자신을 통해 이른바 절대이념의 논리적 표현이 완결되었으므로 그 절대이념의 표현인 사회현실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절대이념이 구현된 완결된 사회로 간주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독일의 지배체제였던 군주체제가 인류발전의 최종단계인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로써 헤겔철학은 일종의 ‘국가철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현재의 지배질서를 정당화하는 것! 더 이상의 사회변화를 위한 투쟁을 거부하는 것! 이것은 발전의 법칙인 변증법의 본질과 부합할 수 없는 관점이었기 때문에, 헤겔학파는 분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부는 완전히 보수화되어 지배계급을 철학적으로 옹호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는 변증법의 혁명적 성격을 계승하며 헤겔좌파를 형성했습니다. 이중 최상의 부분을 이루고 있던 맑스와 엥겔스는 기존 변증법의 관념론적 성격을 벗겨내고 유물론에 기초한 현실적 변증법을 발전시켰습니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발전하기 시작한 유물론적인 변증법은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본질적으로 이해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발전의 원동력인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했으며, 역사 발전의 법칙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철학은 더 이상 특별한 사상가들의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언어유희가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보수화된 헤겔철학과 마찬가지로, ‘초인’을 내세우는 니체철학 또한 반동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니체철학은 정당한 요구를 내세운 노동자들의 투쟁을 노골적으로 부정했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에서 대중의 능동적 역할을 부인했습니다. 역사적 운동의 주인공인 대중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그는 ‘초인’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것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중의 능동성과 잠재력을 폄하하고 몇몇 뛰어난 개인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는 엘리트주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파시즘이 준동하던 시기에 히틀러를 영웅시하고 나치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능동적인 실천의 무기가 되지 못하는 철학, 반동적인 철학은 당연히 거부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철학 - 실천철학
철학이 우리의 투쟁 속에서 의미있는 것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의 지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철학은 우리 삶의 무기이자 투쟁의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천의 지침이 되는 철학, ‘실천철학’은 어떤 것입니까?
한 가지 사례로 이야기를 해봅시다. ‘인간본성’에 대한 고찰이 있습니다.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철학자들은 개별 인간을 고립시켜 추상화하고, 절대불변의 인간본성 예를 들어 이기심, 탐욕 등이 인간의 역사 전체를 지배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 결론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무의미하고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현실에 순응하면서 그리고 각 개인의 품성과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의 철학 즉 실천철학은 인간을 추상화시키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곧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며 그 성격은 인간의 존재조건과 생활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규정합니다. 실천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변증법적 관점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생성과 발전, 소멸의 과정을 거치며, 다른 존재들과의 연관 속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들여다 봅시다. 여기에서 가장 주요한 사회적 관계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 속에서 자본가들은 항상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경쟁을 벌이며 노동자들을 쥐어짭니다. 현실에서는 자본가들이야말로 이기심과 탐욕의 화신으로 등장합니다. 반면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본가에게 고용되어야만 하며 뼈빠지게 일해야 합니다. 집단적으로 협력하며 일해야 하는 노동조건에 의해 필연적으로 단결하기도 하지만, 자본가들이 조장하는 경쟁에 의해 동료들끼리 다투고 분열하기도 합니다.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은 단결이지 탐욕이 아닙니다. 오히려 때로는 동료들과의 단결을 위해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기까지 하는 것이 노동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이란 자본가들이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것이며, 이윤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자본가들에게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점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고대노예제사회가 그랬듯이, 그리고 중세봉건제사회가 그랬듯이 자본주의 사회도 생성과 발전의 과정을 거치고 결국에는 소멸의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대규모로 발생시키고 퍼뜨리고 있는 이기심, 탐욕 따위도 결국 자본주의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지 않습니까?
반면 아주 오래 전, 원시공동체사회에서는 이기심이나 개인적인 탐욕이 생겨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은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리면 생존조차 불가능하며, 오직 공동의 집단노동과 분배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사냥꾼들은 혼자서도 총 한 자루를 들고 능히 맹수와 대결할 수 있지만, 돌도끼와 창 따위밖에 갖고 있지 못했던 원시인들은 집단적으로 사냥에 나서지 않으면 먹이감을 구하기는커녕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즉 원시공동체사회의 인간들은 당시의 불충분한 생산력 때문에 공동체주의를 ‘강요’받았습니다. 그 결과 개인적 소유라는 관념은 끼어들 틈도 없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그들의 관점에서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시맨이라는 영화를 보면 한 백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와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모험을 끝내고 그는 부시맨에게 수고비조로 몇 장의 지폐를 건네줍니다. 그런데 부시맨은 그 돈을 잠시 들여다 보고는 허공에 내던져버립니다. 그가 세상의 욕망을 초월한 도인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는 저 철학자들의 규정에서 벗어난 특별한 예외적 경우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부시맨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조건 속에서 지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했습니다. 지폐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는 것은 오직 지폐를 있어야만 먹고 살 수 있으며 그 지폐가 생활수단을 구하는 데 유용한 사회에서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본성이라는 것은 그 인간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사회의 물질적 생활조건과 동떨어진 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실천과 투쟁을 부질없는 시도로 매도하기 위해 퍼뜨리는 ‘탐욕과 이기심이라는 인간본성’은 돈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뿌리인 사적소유제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노동자의 투쟁의지를 마비시키려는 자들의 어떠한 농간에도 넘어가지 않고 당당하고 확신에 찬 운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실천철학은 모든 사물을 ‘역사적 변천의 과정을 거치는 운동’의 관점에서 파악하며, 그 자체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발전과정에 대한 역사적 시야를 얻게 되며, 우리의 현재 위치와 발전전망, 실천의 기본방향을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실천철학의 일반적 의의입니다.
철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철학적으로 올바른 관점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모든 실천과제들이 즉각 해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략하게 비유를 들어봅시다.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데는 반드시 나침반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먼 옛날 뱃사람들은 나침반이 없어도 별자리의 도움을 받아가며 바다를 건넜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침반을 이용한 항해술과, 별자리를 이용한 항해술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의식적으로 도구를 발명하고 개선시켜 나가는 현대의 인간과, 단지 자연에서 그대로 얻을 수 있는 날카로운 돌맹이나 나무막대를 도구로 활용할 뿐인 원시시대 인간의 차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처럼 나침반은 우리가 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항해를 해나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나침반이 있더라도, 나침반에 올라타 거친 파도를 헤치고 바다를 건널 수는 없습니다. 자세하고 정확한 지도도 있어야 하며, 망원경도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튼튼한 배가 있어야 하고, 능숙하게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선원들과 선장이 있어야 합니다. 나침반의 역할은 이 모든 것들이 정확한 길을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일관된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지도를 읽을 줄도 알아야 하고, 기관실을 관리 정비할 수도 있어야 하며, 키를 다룰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선장에게는 항해 도중 닥칠 위험들을 예견하고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며, 선원들에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규율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때 나침반도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에는 철학자들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진리를 철학을 통해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철학은 모든 과학들 위에 있는 과학, 즉 ‘과학의 과학’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고고학 등의 개별 과학들이 발전하자, 이제는 ‘과학의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개별 영역들에서 현실적인 연구의 축적이 중요한 것으로 대두되었습니다(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 철학은 이 개별 영역들의 관계에 대한 실증적 해명을 추상적 사유로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절대적 진리’로서의 철학은 해체되고 그러한 자연과학적 성과물의 축적내용에 대한 분석방법, 사유방법에 대한 이론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 이론의 한 축이 형이상학이고, 다른 한 축이 변증법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의 차이를 간략하게 다루어 봅시다.
자연과학적 탐구가 발전하면서 사변적인 철학을 통해 모든 진리를 파헤치려는 헛된 수고는 중단되었지만, 인간의 사고활동에서 또다른 습관이 생겨났습니다. 걸음마 시절의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개별 과학들은 존재하는 현실을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 발전 속에서 고찰하는 대신 그러한 연관과 운동에서 떼어내어 고립되고, 정지되어 있는 것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바로 그것이 형이상학적 사고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시적으로, 또 부분적으로는 유용합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일반적으로는 어떤 대상을 연구할 때 그 대상을 전체적인 연관과 운동, 변화 속에서 다루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포괄적인 분석은 그 속에 포함된 개별 지점들의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한다면 여전히 추상적인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고대의 몇몇 철학자들은 천재적인 직관을 통해 변증법의 맹아적인 관점을 확립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변증법은 자연과 인간사회(역사)와 사유의 각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확립되지 못함으로써 말 그대로 직관적 통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추상적인 변증법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증법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사회, 사유의 각 영역에서 변증법의 법칙들이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개별 요소들에 대한 독립적인 연구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별 요소들에 대한 연구는 어디까지나 전체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전체적인 연관과 운동을 파악하기 위한 과도적 단계로서만 의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의 시야는 좁은 범위에 고정될 것이고,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즉 숲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숲을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과 풀, 토양, 그 숲에 서식하는 새와 짐승, 벌레, 기후에 대한 개별적인 파악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연구에만 그친다면 결코 전체로서의 숲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키가 큰 나무 아래에 있는 나무들은 왜 키가 작을까? 그것은 햇빛과 키 큰 나무와 작은 나무의 ‘연관’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 키작은 나무의 나뭇잎이나 나이테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것만으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연관에서 떼어내고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그런 연구가 하나하나 축적되어가면 언젠가는 숲 전체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사실 개별 과학들은 처음에는 대개 형이상학적 방법에 의해 출발했지만 연구성과들이 축적되고 이해가 깊어질수록 변증법적 방법에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리학을 예로 들어봅시다. 근대물리학에서 ‘법칙’이란 대단히 기계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인간까지도 일종의 기계장치로 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바위처럼 굳어있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를테면 한 뭉치의 카드가 놓여 있는데, 하나의 카드 뒤에 어떤 카드가 나올 것인가는 기계의 톱니바퀴가 움직이듯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물리학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하나의 카드 뒤에 어떤 카드가 나올 것인가는 숙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카드를 넘기는 순간 구체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법칙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파악되지 않으며, 보다 생동감있고, 다양한 요소들이 고려되며, 법칙의 실제적인 작동과정과 그 안에서의 구체적인 계기들이 강조됩니다. 근대물리학에서는 앞의 카드와 뒤의 카드가 법칙의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되 개별 카드들의 ‘연관’에 의한 상호작용은 보지 못했습니다. 현대물리학은 이와 같은 기계적 단순성을 극복하고 실질적으로 변증법적 이해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처럼 현실 자체가 변증법적으로 운동하기 때문에 현실의 논리를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변증법적 사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초부터 변증법적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훨씬 수월하게 사물과 운동의 전체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개별 요소들의 위치와 의미도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금까지의 논의가 이 단락의 주제인 “철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단락의 처음에서 우리는 철학의 역할을 나침반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나침반만으로 항해가 가능하지는 않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실천의 항해를 할 때에는 철학이라는 나침반뿐만 아니라, 투쟁의 조건과 목표를 밝혀주고 미래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학, 자본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투쟁의 힘을 동원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정치학, 투쟁의 무기를 창출하고 성장시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조직론, 투쟁의 목표와 경로를 알려주는 전략전술 등등 다양한 영역들에서 노동자의 관점을 확립해야만 합니다.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철학이 자동으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개별 영역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개별 연구들을 실천철학의 방법 즉 ‘유물론적 관점에 기초한 변증법적 방법’으로 수행한다면 우리는 보다 일관되고 정확한 결론들에 보다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학을 예로 들어 봅시다. 노동자계급의 경제학을 확립한 맑스는 그 이전 시대의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자본, 임금노동, 지대, 산업자본과 상업자본 등을 분석하면서 스미스와 리카도가 남긴 유산을 활용했는데, 그들과 맑스의 가장 큰 차이는 경제학의 연구대상인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방식을 영원불변한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일시적이고 변화하며 생성-발전-소멸의 길을 걷는 과정으로 보느냐입니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출발점에서 시작했던 스미스와 리카도는 많은 개별 부분들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모든 것을 운동하는 사물로 바라보는 변증법적 관점에 기초하지 못함으로써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사정이 있었는데, 다름 아니라 그들 자신이 자본가이거나 지주였으며 따라서 그들의 처지 즉 지배계급의 처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단 이 점을 차치해 놓는다면,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가장 큰 장벽은 그들의 연구방법이 변증법적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스미스와 리카도가 그랬던 것처럼 맑스도 자본주의 경제의 개별 지점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맑스는 자본주의를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변화발전하는 운동으로서 연구했습니다. 자본의 운동을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자본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 자본의 운동이 어떤 내적 동력(모순)에 의해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왜 자본주의는 몰락할 수밖에 없고 어떤 방식으로 몰락의 원인과 새로운 사회의 맹아들을 성숙시키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맑스는 철저하게 유물론적이었습니다. 주어진 현실을 결코 주관적으로 왜곡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현실적으로 파헤쳤습니다. 그 결과 맑스의 경제학의 결론은 ‘계급들의 운동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대립과 투쟁이 격화되어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했습니다. 반면 고전파경제학의 성과는 거부하고 한계만을 이어받은 일련의 경제학자들은 계급간의 대립, 계급간의 투쟁이라는 명백한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아예 계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도 잘 맞아떨어졌는데, 그래서 지금까지도 일반적인 경제학들은 무미건조한 수치들과 도표, 그래프, 공식들로 가득차 있고 계급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운동은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철학에 기초한 분석은 각각의 대상에 대한 연구를 생기있게 만들어주고, 무엇보다 각각의 사안들이 갖는 계급적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노동자의 실천과제들을 명쾌하게 해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관점은 각각의 주제들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경제학에서 본 것처럼 철학 자체가 그 모든 연구과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확고한 유물변증법적 관점뿐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독자적 연구가 없었다면 맑스의 ≪자본론≫과 같은 저작은 결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주제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의 구체적 대상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게을리한 채 변증법의 몇 가지 법칙으로 현실을 꿰맞추려 한다면 우리가 얻는 것은 천편일률적이고 앙상한 독단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철저한 유물론적-변증법적 관점으로 무장할 것! 그러나 철학 자체에서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 현실의 바다에 뛰어들어 굽이치는 파도와 직접 대결할 것! 이것이 오늘날 철학에 대해 취해야 할 우리의 태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철학학습의 관점과 실천철학의 의의를 다루어봤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실천철학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다루어보도록 합시다.
유물론과 관념론
실천철학의 기초는 유물론입니다. 그런데 지배자들의 철학에서 유물론은 비참하게 왜곡되는 처지를 겪었습니다. 유물론은 정신의 가치를 부정한다! 유물론자들은 하나같이 물질만능주의자들이며, 도덕을 부정하고, 탐욕과 쾌락의 노예들이다! 이처럼 지배자들의 철학은 자본가들에게나 들어맞을 비난을 유물론에 뒤집어씌웠습니다. 유물론이 이런 비난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은 물론입니다.
유물론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은 관념론입니다. 유물론과 관념론,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질과 정신(존재와 의식) 중에서 어느 것이 일차적이고 어느 것이 이차적인가, 과연 어느 것이 근원적이며 어느 것이 부차적으로 파생되어 나온 것인가? 이것을 ‘철학의 근본문제’라고 합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철학은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구분됩니다.
관념론자들은 정신, 의식이 일차적이라고 대답합니다. 예를 들어 헤겔은 현실에서 전개되고 있는 역사는 구체적인 목표와 의지를 갖고 있는 인간들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절대정신’이 발현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절대정신은 궁극적으로는 ‘신의 의지’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 주장은 실천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그에 따르면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결국 절대정신이 실현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인간들이 갖는 의지, 자본가들이든 노동자들이든 능동적으로 역사를 개척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의지는 사실은 신의 뜻인 것입니다. 또한 인간들의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은 사실 줄 끝에 매달린 꼭두각시들이 춤추는 인형극과 같은 것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게 될 것이며, 그저 우리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더욱이 관념론의 관점은 종교를 정당화하는 데 대단히 유용합니다. 정신이 모든 것이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세속에 대한 부질없는 미련을 버려라!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현실의 고통은 내세의 축복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이처럼 관념론과 종교가 만나면 자본가들의 착취와 억압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투쟁의지를 마비시키는 무소불위의 괴물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반면 유물론자는 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물질이 일차적이며 정신(의식)은 물질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 여기에서는 어떤 사람의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가가 아니라 그의 현실적인 존재 조건이 어떤가가 일차적 중요성을 갖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주위의 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본가들에 대항한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저 사장놈처럼 잘 살 수 있을거야”라든지, “어차피 글러먹은 인생, 될대로 되라지” 또는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고 살면 되지 골치아프게 싸울게 뭐람” 등등 여러가지 의식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의식을 갖고 있든 현실에서 노동자로 짓눌리며 산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을 현실 그대로 직시하는 것, 그것이 유물론입니다. 그리고 만약 노동자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살며, 자본가들이 어떻게 세상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물러대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비열하게 기만당하고 있으며 억눌리고 있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파악할 수 있다면 투쟁에 나서지 않을 노동자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투쟁의식을 짓누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퍼뜨립니다. 컵에 물이 절반 정도 들어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고 “어? 물이 반잔밖에 없네!”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와! 물이 반잔씩이나 있네!”라고 한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고 불만을 가질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해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면 항상 행복할 것이다.
여기에서 관념론과 유물론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반잔밖에 없다고 말하든 반잔씩이나 있다고 말하든 컵 안에 물이 절반 들어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본가들과 관념론 철학자들이 실제로 말하고 싶은 것은 비지땀을 흘리고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반잔의 물을 내밀고는 그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유물론자는 다르게 말합니다. 담뱃불을 끄는 데는 반잔의 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수백, 수천 명의 노동자들의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반잔의 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당신들이 부당하게 빼앗아간 우리의 물을 내놓아라! 당신들은 모래를 쌀로 여기라고 우기듯이 반잔의 물(즉 특정한 물질)로 ‘만족’하라고 한다(즉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물질적 조건은 중요하지 않으며 정신이 일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한 물이 없이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즉 물질적 조건이 구비되어야 그에 걸맞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의식은 존재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이차적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야 당연한 것이니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유물론이 올바르다는 점은 약간의 현실감각만 갖고 있더라도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로는 유물론을 인정하면서 실천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관념론에 빠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관념론의 주요한 특징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파업을 앞두고 있는 사업장이 있습니다. 임금이 사정없이 깎여나가고, 수많은 동료들이 잘려나가며, 다수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파업을 준비하고 한 판 붙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파업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운데 우리가 파업을 하면 회사가 망할 것이다,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다보면 언젠가는 사장이 잘 해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는, 현실적으로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서 자기 처지와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파업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힘을 비축해야만 합니다. 조직을 정비하고, 파업기금을 모으고, 대중을 결집할 수 있는 요구를 명확하게 정식화해야 하며, 가장 적절한 시점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막무가내로 당장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방책 없이 무조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것, 이런 태도 또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관념론적 태도이며, 무의식적으로 관념론에 근거한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실천,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관념론적인 실천과 투쟁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다른 사례를 봅시다. 파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자본가들과의 교섭이 이루어집니다. 이 때 자본가들은 우리의 요구에 대한 단호한 저항과 거절, 협박, 물리적 탄압 따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온갖 달콤한 말들과 약속, 보장책들을 내놓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가가 ‘약속’을 했고 협상이 타결됐으므로 이제 문제는 해결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것 또한 결코 유물론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투쟁하는 적과의 협상, 약속 등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힘’이 강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합니다. 우리의 투쟁력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또는 하나의 싸움이 끝났다고 해서 조직적 결집력과 규율이 이완되는 경우 자본가들은 아주 손쉽게 기존의 약속을 내다버리고 “협상은 무효다!”라고 선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들에게 “그것은 약속 위반이다!”라고 항의하더라도, 이 항의는 실질적인 투쟁의 힘으로 전환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자본가들은 그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해 힘으로 밀어부칠 것이고, 힘이 없다면 우리는 밀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섭, 협상을 다룰 때에도 우리는 실제 현실에서 충돌하고 있는 이해관계와 힘의 관계를 고려하고 판단해야지 자본가들이 내뱉는 수백, 수천 가지의 약속 따위를 믿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존재와 의식의 관계를 기준으로 유물론과 관념론의 차이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존재와 의식의 문제를 다루되 이 문제를 다루는 두 가지 유물론 즉 기계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물론에서는 존재와 의식 중 존재가 일차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의식이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입니까? 초기의 유물론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유물론자는 인간을 일종의 기계장치로 간주했습니다. 과거의 유물론은 기계적이었습니다. 의식의 역할은 배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유물론, 변증법과 결합된 유물론은 결코 존재와 의식을 절대적으로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존재가 일차적인 규정성을 갖지만, 거꾸로 의식이 존재를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앞의 예에서는 노동자이되 자본가의 의식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자본가의 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그는 영원히 자본가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원인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되, 이 규정이 항상 곧은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의식이 존재를 반영할 때에는 현실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왜곡된 형태로 반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곡된 반영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현실의 본질이 항상 본질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근대화 이후 지금까지의 정부들은 본질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자본가 정부였지만 항상 표면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민의 정부로 위장해온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자본가들의 의식적 영향력이 대단히 강력하다는 점입니다. 자본가들은 이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올라서는 과정과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근 이백여년간 대중에게 의식적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수단과 방법들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선거, 의회, 법, 행정, 언론, 방송, 교육, 문화, 종교, 가족, 철학, 공권력, 현장통제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수단들이 자본가 의식을 퍼뜨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반면 이에 맞서 노동자의 투쟁정신을 보급할 수 있는 수단들은 지극히 부족하며, 여전히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의식적 영향력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한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현실에 맞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본가들의 의식적 영향력을 분쇄하기는커녕 그에 필적할 만큼의 영향력도 갖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끊임없이 기만당하는 가련한 처지에 놓이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노동자계급의 의식적 힘을 키워나가는 방식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주관적 열망만을 부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물론은 특정한 주관적 관념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 발을 딛고, 현실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예로 든 노동자는 자본가들의 영향력에 짓눌려 잘못된 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 의식은 그의 현실적 존재와 일치하는 의식이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안정한 균형상태는 현실로부터의 충격이 가해지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유물론자들이 사용하는 방식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 본질을 폭로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이해관계의 대립과 투쟁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의식이 자기의 존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노동자의 정신과 자본가의 정신이 뒤죽박죽된 혼란이 따를 것이지만, 노동자계급의 의식이 지속적으로 강화되기만 한다면 결국 자본가 의식을 쫒아내고 노동자로서 자기 존재에 걸맞는 의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존재와 의식의 관계에서 일차적으로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지만, 반대로 의식이 존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원인이던 것이 결과로, 결과이던 것이 원인으로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킵니다. 존재와 의식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계적 유물론에서는 존재와 의식의 관계를 고정되고 일방적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반면 변증법적인 유물론에서 이 두 요소는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순환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실천철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경우를 봅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있습니다. 한 여름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낙엽이 지고 겨울이 찾아옵니다. 한 겨울 추위가 아무리 매섭더라도, 때가 되면 얼음이 녹고 새싹이 자라납니다. 밤이 깊어지면 아침이 오고, 비가 온 뒤에는 해가 뜹니다. 어느 것 하나도 영원불변한 것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나 알래스카를 예로 들면서 그런 곳은 항상 덥거나 항상 춥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들도, 아주 오래 전에는 (대륙들의 모양과 위치도 달랐을 뿐더러) 다른 기후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단순한 변화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연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생존능력을 갖지 못한 생물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살아남은 종들은 환경에 적합하게 적응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자연만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사회도 변화를 거쳐왔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고대노예제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을까요? 노예들은 자신이 영원히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고, 노예주들은 자신이 영원히 지배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예제사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중세봉건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백년 동안 이어져온 조선왕조도 결국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인간의 사고방식과 관습도 변화해 왔습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서양중세사회에서는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은 금기시되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면서 금욕적인 생활이 권장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데올로기였을 뿐이고 중세의 고위 성직자들은 그 자신이 토지소유주로서 부유한 지배계급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번창하면서 낡은 관념은 일소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배계급들은 더 이상 부에 대한 욕망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윤을 향한 자본가들의 탐욕은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으로 칭송되었고,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 대신 땀흘려 일함으로써 부를 얻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설교가 이루어졌습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등장, 이른바 종교개혁은 곧 기독교가 봉건사회의 물질적 존재조건으로부터 벗어나 자본주의적 존재조건에 적응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습니다(여기에서도 존재와 의식의 관계에 대한 유물론적 입장이 증명됩니다). 요컨대 자연에서도, 인간사회에서도, 인간의 의식(사유)에서도 변화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운동이 일어나는가? -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변화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킬까?
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변화가 신의 섭리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할이란 결국 헤겔이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 힘, ‘절대정신’ 따위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겔은 비록 관념론적인 방식이기는 했지만 운동이 일어나는 원동력으로서 ‘모순’, 즉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및 상호침투’라는 것을 발견하는 성과를 남겼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관념의 영역에서 펼쳐진 헤겔의 유산을 현실세계로 끌어내려, 현실운동의 원동력으로서 모순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연구했습니다.
자연은 모순의 작동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들을 제공합니다. 생명체의 경우를 봅시다. 어떤 노래가사를 보면 산다는 것이 곧 죽는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생명체의 운동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은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죽음은 깃들어 있습니다. 신체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을 들여다보면 어떤 세포들은 새롭게 태어나 온 몸에 생명력을 주는 반면 어떤 세포들은 자기의 역할을 마치고 죽습니다. 새로 태어난 세포와 죽어가는 세포 사이의 통일과 투쟁, 이것이 생명을 유지 성장시키는 원동력입니다. 만약 신선한 세포보다 죽어가는 세포가 더욱 많아진다면, 그 결과 마침내 더 이상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세포가 온 몸을 차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생명운동의 원동력인 모순이 해체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물론 이것은 운동의 끝은 아닙니다. 죽음의 과정은 부패의 과정으로 ‘이행’하는데, 부패과정은 죽은 세포에 남아 있는 생명력의 잔재라는 요소와 습기와 공기, 박테리아 등 세포를 분해시키는 요소 사이의 투쟁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부패의 과정을 통해 죽은 세포들은 자연과 완전한 일체가 되어가고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재료가 됨으로서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즉 운동은 계속됩니다.
이 과정을 검토해보면 생명운동이란 곧 삶과 죽음이라는 ‘대립물’이 한 생명체 안에 ‘통일’되어 있으며 동시에 그 안에서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대립물들이 하나의 존재 안에 통일되어 있는 한 그것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서로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즉 투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싸움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두 대립물 중 어느 한쪽이 우세하게 되면 그 존재는 더 이상 기존의 형태나 형식을 유지할 수 없으며 다른 형태나 형식으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이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 사물의 운동 즉 생성, 발전, 소멸을 거치며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모순’이라는 개념의 의미입니다.
사유 즉 정신활동의 과정에서도 모순은 작동합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인식능력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식과정이란 곧은 방식으로든 뒤틀어진 방식으로든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의 운동이 두뇌에 반영되는 과정이며, 사유란 이 반영된 내용이 두뇌 속에서 다듬어지고 가공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두뇌를 갖고 있는 한 인식능력에는 내적으로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사실들, 모든 법칙들, 모든 현상과 본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히 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식이 발전하는 만큼 현실 또한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적으로는 인식능력의 한계가 없지만, 외적으로는 제한되어 있으며, 인간의식의 운동과정은 곧 무제한한 인식능력과 제한적인 인식조건 사이의 투쟁인 것입니다. 이 투쟁을 통해 인간의 정신세계는 부단히 확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현실세계 또한 부단히 변화하며 새로운 상황들을 창출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은 세계에 대한 절대적 인식에 도달할 수는 없으며, 절대적 진리를 완성시킬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 진리들의 연쇄사슬을 만들어갈 수 있을 뿐이고, 여러 세대를 거치며 이 사슬들의 연관을 풍부하게 무한히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뿐입니다. 무제한적인 인식능력과 제한된 인식범위라는 대립하는 요소들의 통일과 투쟁, 이것이 인간의 의식을 발전시키는 모순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연과 인간의식에서 모순의 작동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영역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인간사회의 역사라는 영역은 모순에 의한 운동을 보여주는 풍부한 창고입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역사의 발전이 어떤 원동력에 의해서, 어떤 법칙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연구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밝혀내기 위한 실천적 목표에 복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실천적 관점을 갖고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머리 속에서 꾸며낸 무언가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계급들 사이의 투쟁이 역사를 앞으로 밀어가는 원동력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물론 이런 시각은 맑스, 엥겔스 시대에 와서야 갑작스럽게 발견된 것은 아닙니다. 그 이전 시대의 역사가들 또한 예컨대 프랑스 혁명을 다루면서 그 이면에 토지소유를 둘러싼 계급들 사이의 투쟁이 있다는 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계급투쟁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사상가들은 이 계급투쟁의 사상을 제거해버리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계급투쟁이라는 현실을 지워버려야만 봉건적 속박을 타파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이 바로 이어서 자본가들에 대항한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자본가들은 지배계급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프랑스혁명과 같은 부르주아혁명과 함께 이제 이 사회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에 의해 이끌어질 것이며 적대적인 계급관계는 사라지고 만인이 공정한 권리를 향유하게 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에 맞서 맑스와 엥겔스는 더욱 선명하게 계급간의 대립과 투쟁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부르주아 혁명가들이 선포한 자유, 평등, 박애는 현실에서 자본가들만의 자유, 평등, 박애로 귀결되었음을 폭로하고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여전히 계급들 간의 대립과 투쟁 즉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 놓여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보다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맑스, 엥겔스 이전의 사상가들이 계급적 이해관계의 대립과 투쟁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역사적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계급적 이해관계의 대립과 투쟁의 성격을 법적인 것, 제도적인 것, 특정한 사회관념이나 문화에 의한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처럼 위 아래가 뒤집힌 생각을 바로잡았습니다. 법, 제도, 관념, 문화, 정치 등의 ‘상부구조’는 현실사회를 구성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특정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종합 즉 특정한 생산방식의 운동이라는 ‘토대’ 위에 형성된 것이라는 점, 이 상부구조는 상대적으로 독자화되어 토대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토대에 의해 조건지워진다는 점, 그리고 토대에서 근본적인 변화와 이행이 일어날 때 상부구조 역시 조만간 붕괴되고 새로운 상부구조로 변화 이행된다는 점 등을 밝혔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자본주의의 발전과 종교개혁의 연관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역사의 발전을 들여다봅시다. 고대원시사회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를 밀어온 근본동력은 ①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생산력’이라는 요소(이것은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재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며, 노동수단의 발전 및 이와 연관된 노동력의 발전을 핵심으로 합니다) ② 이 생산력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생산관계’라는 요소(이것은 생산 및 교환, 분배에서 인간들이 맺는 물질적 사회적 관계를 말하며, 일정한 시기에 고정된 형식을 취합니다), 이 두 가지 요소의 모순적인 운동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고 개발, 개선시키기 시작한 이래 생산력은 끊임없이 성장해 왔습니다. 돌도끼에서 쇠망치로, 간단한 기계에 의한 생산에서 컴퓨터시스템으로 제어되는 로봇에 의한 생산으로, 풍차에서 증기기관으로, 증기기관에서 전기를 이용한 동력기와 더 나아가 원자력발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처럼 생산력이 발전하는 과정에 따라 생산관계도 변화해 왔습니다. 돌도끼를 휘둘러 짐승을 잡던 시절에는 원시공동체적 생산관계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풍차를 돌려 곡식을 찧는 시대에는 더 이상 원시공동체적 관계는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봉건제적 생산관계 즉 토지소유주인 영주와 실제 노동을 담당하는 농노를 중심으로 하는 생산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봉건제적 생산관계는 한동안 유지될 수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생산력은 계속 발전했습니다. 그 결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고도 남는 잉여생산물의 양이 늘어나고, 따라서 교환이 빈빈해졌으며, 시장과 상업이 발전하고 근대적인 도시들이 생겨났습니다. 상인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중개자의 역할에 만족했지만, 그들의 수중에 쌓이는 부의 규모가 점차 증대하자 이제는 방식을 바꿔 직접 사람을 고용하여 농작물 생산이나 수공업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싹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점은 이제 점차 낡고 볼품없는 것으로 전락해가던 봉건질서와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한 자본주의 질서 사이의 투쟁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시민들(원래 부르주아란 이 당시 도시의 시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은 기존의 지배자들인 봉건영주들에게 도전장을 내던졌습니다. 구체제를 타도하라! 자유와 평등을 (즉 봉건체제의 속박으로부터 부르주아들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자! 이런 목표 아래 도시의 신흥부르주아들은 귀족체제에 대항한 계급투쟁을 벌였고 결국 봉건귀족들은 몰락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봉건귀족과 신흥부르주아지 사이의 계급투쟁에서 봉건귀족이 정치적으로 밀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제 봉건귀족들과 그들의 경제질서인 봉건적 생산관계는 더 이상 발전하는 생산력을 감당할 수 없는 낙후한 것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즉 특정한 생산관계는 일정한 시점까지는 발전하는 생산력에 조응하고, 또한 특정한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한계점을 지나면 더 이상 생산력의 발전에 조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산관계가 생산력에 조응하지 못하고 걸림돌로 전화되고 나면,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이 충돌은 계급들 사이의 투쟁으로 표현됩니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봉건제 말기와 마찬가지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봉건체제가 무너지기 이전부터 봉건사회의 내부에서 자본주의는 발전해 왔지만, 자본가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의 지배자로 올라선 이후에는 그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고 빠르게 자본주의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생산력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많이, 몇 배 몇십 배 이상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봉건사회의 태내에서 모순이 성숙하고 격렬한 발작 끝에 마침내 사망했듯이, 자본주의의 태내에서도 모순이 성숙하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경련과 발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황과 인플레이션, 끝없는 경기침체와 주가폭락, 파산 따위의 경제위기들이 수시로 사회를 덮치며, 실업과 고용불안, 실질임금 하락이 노동자대중을 짓누르고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적대적인 투쟁이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이 현실이 보여주는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원불변할 것 같던 자본주의 질서도 이제 자신의 역사적 생명을 다해가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즉 임금노동제도는 이제 더 이상 발전하는 생산력을 감당할 수 없으며, 오히려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간단하다. 노동이 집단적 공동노동으로 발전하고,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생산수단의 소유, 통제, 관리, 운영의 권리 전체가 실제로 노동에 복무하고 있는 노동자 전체에게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더 이상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순조롭고 합리적인 경제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봅시다. 역사의 발전을 추동하는 가장 근본적인 추동력은 ‘발전하는 생산력과 고정된 생산관계의 모순’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산관계가 성립되면 역으로 생산력의 발전이 더한층 급속해지지만, 일정한 한도를 지나면 기존의 생산관계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생산력을 담보하지 못하고 장애물이 됩니다. 이 시점이 되면 역사적 변화가 시작됩니다. 낡은 생산관계는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되고, 성장하는 생산력에 걸맞는 새로운 생산관계가 창출됩니다. 이렇게 해서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특정한 ‘생산방식’을 형성하게 되고, 이것을 토대로 정치, 사회, 법, 문화, 관습, 이데올로기, 가족 등의 ‘상부구조’가 세워집니다. 특정한 상부구조가 생산방식이라는 토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조건짓는다, 그리고 토대에서의 경제적 변화가 상부구조의 변화를 강제한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을 규명하는 기본법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연과 의식, 역사의 발전 속에서 변증법의 가장 핵심적인 법칙인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변증법에는 이것 외에 몇 가지 핵심적인 법칙이 더 있습니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즉 모순은 변화와 발전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입니다. 이제는 이 변화와 발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밝혀내야 합니다. 이것이 다음 단락의 내용입니다.
운동의 방식 - 양의 질로의 전화 및 그 역의 법칙
변화 발전은 단조롭고 직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질적 도약을 포함하여 다양하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단락에서는 ‘양의 질로의 전화 및 그 역의 법칙’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이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변화에는 ‘양적인 변화’와 ‘질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변화의 과정이 단조롭지 않다는 것은 바로 이 양적 변화와 질적 변화가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변화의 전체 과정을 전개해나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가장 간단하고 잘 알려진 예를 살펴 보겠습니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리면 물이 끓습니다. 물론 불 위에 올리자마자 끓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물의 온도가 올라가면 공기방울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좀더 시간이 지나면 격렬하게 부글거리며 끓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수증기가 생깁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한참동안 물을 끓이다보면 물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이 수증기로 변해서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도 불을 안끄고 계속 끓이면 결국 물은 전부 증발해버리고 주전자는 새까맣게 타버릴 것입니다. 이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양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물의 온도가 상승할 뿐입니다. 끓는 점에 도달하기 이전까지의 일정한 범위 안에서는 ‘물’이라고 하는 형태 자체는 변하지 않고, 온도계로 측정할 수 있는 양적인 변화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양적인 변화가 끓는 점이라고 하는 특정한 경계선을 넘기 시작하면 이제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물이라는 형태에서 수증기라는 형태로, 액체에서 기체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수증기로 변해 날아가버렸다고 해서 물의 운명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질적 변화를 거쳐 기체로 변한 물은 대기 속으로 흩어져 떠다니며 양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특정한 기상조건에 따라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와 같은 수증기의 변화가 일정한 한계점을 지나면 또 다시 질적 변화를 일으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증기 형태에서 구름으로 변하고, 다시 물방울들로 뭉쳐져 비가 되어 내립니다. 기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 때 만약 온도가 0 ℃ 이하로 떨어지면(양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 비는 눈으로 바뀝니다. 액체에서 고체로, 또 다른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 것은 양적 변화의 축적이 질적 변화를 낳는다는 측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질적 변화가 양적 변화를 낳기도 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옷핀을 만드는 10명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만약 이들 각자가 옷핀을 제작하는 과정 전체를 개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면,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철사를 자르고, 곧게 펴고, 끝을 날카롭게 다듬고, 머리를 붙이고, 도금을 하고, 분류를 하고, 포장을 하여 운반하는 일까지 전부 담당하여 10명 전체가 마찬가지 방식으로 개별적으로 일해야 한다면 하루에 생산되는 옷핀의 양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10명의 작업에 질적 변화를 일으켜봅시다. 똑같은 10명이 똑같은 공구를 사용하여 작업하더라도, 이 10명이 개별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업을 도입한 협업의 방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자가 노동과정 전체를 다 거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은 철사를 자르고, 한 사람은 끝을 날카롭게 하고, 한 사람은 도금을 하고, 이런 방식으로 공정을 세분화, 전문화하면 생산되는 옷핀의 양이 크게 증대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환한 사실입니다. 질적 변화가 양적 변화를 낳은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 기계가 도입된다면, 즉 수공업생산에서 기계제대공업으로 또 다른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면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기존의 수공업 방식으로 하루에 수천 개의 옷핀을 제작했다면 이제는 수만 개, 수십만 개의 옷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의 과정은 양적인 변화에서 질적인 변화로, 질적인 변화에서 양적인 변화로 다양한 형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법칙은 인간사회의 발전에서 몹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사회의 발전, 역사의 발전에서도 양적인 변화와 질적인 변화의 교차가 이루어집니다. 앞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다루면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일정한 한도 내에서는 기존의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생산력을 담보할 수 있지만, 일정한 한도를 지나면 더 이상 기존의 생산관계로는 생산력의 발전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없게 됩니다. 즉 일정한 시기 동안은 생산관계의 본질적인 변화가 없어도 생산력의 양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생산력은 더 이상 낡은 방식으로는 제대로 증대될 수 없으며, 이 생산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관계가 도입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성립과정 자체가 분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봉건사회의 태내에서 발전해온 생산력은 새로운 생산관계를 요구했고, 마침내 봉건질서를 무너뜨렸습니다. 새로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성립되었고, 봉건적 속박에 짓눌려 있던 생산력이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기계제대공업이 들어서면서 이제 생산력은 엄청난 양적 발전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 또 다른 질적 변화가 요구된다는 점이 자본주의 경제의 숱한 위기와 파국적 상황들을 통해 나날이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안에서도 어떻게든 생산력과 생활수준이 발전하기는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을 잠시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주 흔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텔레비전, 전화기, 컴퓨터, 화장실의 두루마리 화장지 등등, 이런 것들은 예전에는 결코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과거에는 부자의 상징이었던 자동차조차도, 이제는 (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 발전은 전혀 순탄하고 원만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거의 모든 노동대중에게 실업의 고통, 실질임금의 하락, 생활의 불안정성의 증대 등 온갖 방식으로 고통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생산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즉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필요에 의한 계획적인 생산으로 바꾼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생산력은 더 이상 고통스런 방식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의식적으로, 그리고 모든 노동대중에게 실질적인 풍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첨단 기계들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자가 실업자로 내몰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강도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며, 자본가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쓸데없이 과잉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생산함으로써 결국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자기개발과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반면 이런 방식으로 사회질서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자본가들은 생산력 발전의 모든 계기들을 오직 자신의 이윤을 확대시키기 위해 사용할 것이고, 그 결과 노동자들의 생활의 불안정과 고통의 증대,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낭비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자본주의적인 ‘양적 변화’가 아니라 ‘질적 변화’가 사회 전체의 이익, 절대 다수의 노동대중의 이익을 위해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펼치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의 ‘질적 변화’를 결코 원하지 않는 사람들, 근본적인 변화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자본가들과 그 대변자들 그리고 중간계급에 뿌리를 둔 개량주의자들 아니겠습니까? 이들에 대해서라면, 이들의 존재조건 자체가 자본주의의 ‘양적 변화’ 이외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붙잡고 이 문제를 다룰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들이 온 사회에 퍼뜨리고 있는 강력한 영향력에 압도당하여 ‘질적 변화’의 필연성과 절박함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이 사회의 근본적인 질적 변화 - 노동해방 를 자신의 과제로 당당하게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노동자계급이 노동자의 고유한 처지에 걸맞는 올바른 세계관을 획득하고 실천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양적인 변화,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쟁취할 수 있는 개선들을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투쟁의 힘으로 쟁취한 크고 작은 개량들은 우리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은 막아줄 것이며,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힘을 키우는 데 복무하기 위한 개량투쟁들은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충분한 의의를 가질 것입니다. 문제는 “개량은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다는 점”, “이런 저런 개량조치들은 노동자계급을 칭칭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을 조금 느슨하게 할 수는 있지만 쇠사슬 자체를 풀어헤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또한 질적인 변화의 필연성과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양적인 변화를 축적해 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질적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뒤에서 다시 다룰 내용인데) 자연의 발전 법칙과 인간사회 즉 역사의 발전법칙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에서는, 예컨대 물을 끓이다보면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액체에서 기체로의 질적 변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기도를 한다거나 이런저런 의식적 개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역사에서는 인간의 의식적인 실천활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회의 질적 변화를 원한다고 해서 아무때나 질적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지만, 질적 변화를 바라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투쟁하지 않는데도 자동으로 변화가 일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쇠사슬을 느슨하게 하는 데 만족한다면 결코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 쇠사슬을 끊기를 바라는 자만이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 즉 역사에서의 질적 변화는 이 변화를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집단적 실천을 전개할 때만 (변화의 조건이 창출되었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가능할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쇠사슬이 녹슬고 부식되어 바스라질 때까지 억겁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할 것입니다.
운동의 전체상 - 부정의 부정의 법칙
이제 변증법의 또 다른 주요 법칙을 이루고 있는 ‘부정의 부정의 법칙’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처음에 살펴본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즉 모순의 법칙이 변화와 발전의 ‘원인’을 밝힌 것이라면, ‘양의 질로의 전화 및 그 역의 법칙’은 변화 발전의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번에 보는 ‘부정의 부정의 법칙’은 변화 발전의 ‘전체상’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잘 알려진 예를 통해 이 법칙의 의미를 탐구해보도록 합시다.
잘 갈아엎어진 밭에 보리낟알 하나가 떨어집니다. 이 보리낟알은 토양이 기름지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된다면 싹을 틔울 것이고, 보리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원래의 보리낟알은 사라집니다. 즉 ‘부정’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부정이란 단순히 ‘이것은 보리낟알이 아니다’라는 식의 부정이 아니라 ‘보존되면서 극복(폐기)된다’는 의미에서의 부정입니다. 이것을 ‘지양’이라고 합니다. 보리로 성장할 잠재력은 새싹을 통해 보존되면서, 하나의 보리낟알이라는 과거의 형식은 폐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가뭄이 들어 새싹이 말라죽지 않는다면 이 싹은 잘 자라날 것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에는 보리낟알들이 열릴 것이며, 이 보리낟알들이 여물고 나면 보리줄기는 자신의 역할을 마치고 세상을 떠납니다. 보리낟알들이라는 내용은 ‘보존’되면서, 보리줄기라는 기존의 형식은 ‘극복’되는데, 이를 통해 또 한번의 부정 즉 부정의 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처음에 밭에 뿌려진 것과 동일한 생김새의 보리낟알입니다. 우리는 마치 부정의 부정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손에 쥔 보리낟알은 최초의 보리낟알이 아니라 열 배, 스무 배, 서른 배 이상 증식된 보리낟알들입니다. 외견상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으나 실제로는 과거보다 한층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선 것입니다. 그 다음의 과정들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고, 항상 우리는 원위치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는 보다 고도한 위치로 상승하게 되는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증법에서 발전이란 일직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스프링을 떠올려 봅시다. 스프링을 수직으로 세우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원이 보이는데, 그중 맨 아래의 원에 점 하나를 찍고 출발해 봅시다. 스프링을 따라가다보면 원의 절반까지는 전진의 방향을 취하는데 그 지점을 지나면 후퇴의 방향을 취하고 결국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위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처음의 점보다 한 단계 높은 원에서 같은 위치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정의 부정의 법칙을 따라 이루어지는 발전은 나선형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서의 몇 가지 사례들을 통해 이 법칙의 의미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노동운동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입니다. 이 시기에 이미 우리 노동운동은 상당한 양적 질적 성장을 거쳤고, 당시의 전평이라는 조직은 노동자계급 내에서의 조직규모와 정치적 발전 정도에서 볼 때 사실상 현재의 민주노총을 능가하는 조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운동은 일제가 패망하고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군사적 탄압 속에서 파괴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노동운동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있는 한 노동운동은 끊임없이 새로운 싹을 틔우며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6, 70년대를 거치며 군사정부의 극악한 탄압 속에서 간헐적이고 고립되며 처절한 패배로 끝나기는 했지만 크고 작은 투쟁들이 또 다시 전개되었습니다. 80년대에는 조금더 분명하게 전진의 물결이 형성되어 갔으며, 87년에 이르러서 이 물결은 소용돌이치며 전국을 휘감는 격랑이 되었습니다. 이 격랑 속에서 전노협이 태어나고, 꾸준한 성장을 거쳐 오늘의 민주노총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일제시대의 전평과 오늘의 민주노총. 어쩌면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것처럼 보이고, 역사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전평이 서 있던 지반과 현재의 민주노총이 서 있는 지반은 큰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일제 식민지 시절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거쳐 왔습니다. 사회의 모든 부분들이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편되고, 그 결과 모든 영역에서 노동자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전평 시절의 노동자들은 아직 사회의 작은 일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자각하고 일어서기만 한다면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대지는 단지 ‘패배의 기억’만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위대한 전진의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191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전세계에서 펼쳐졌던 거대한 투쟁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기억들은 지금은 ‘패배’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 본질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찬란한 투쟁의 기록이며 원대한 전망을 내포하고 있는 우리의 유산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 이 훌륭한 유산을 충분히 발굴해내지 못했으며, 오늘 우리가 전개하고 있는 투쟁의 무기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 의식적으로 과거의 투쟁의 경험들이 주는 교훈을 되새기고 전진을 위한 무기로 벼려내지 못한다면, 한 단계 더 높은 위치로 우리 운동을 끌어올리기 위한 의식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투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로 쳇바퀴 돌 듯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역사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라는 영역 속에서 이야기하는 한, ‘양의 질로의 전화 법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적 실천 없이는 아무런 결과도 없을 것이고, ‘부정의 부정의 법칙’ 또한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을 거치며 전개되고 있는 민주노조 운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전노협 운동의 핵심은 이 운동의 출범과 함께 전면에 내걸렸던 단결과 연대, 투쟁의 정신 그리고 노동해방을 향한 강렬한 지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노협이라는 틀은 보다 확대되고, 성장해야만 했습니다. 더욱더 넓은 층의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조직이 되어야 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쳤고, 민주노총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전노협이라는 조직은 이미 사라졌다”는 식의 단순한 부정은 아닙니다. 그 시기처럼 전면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 운동 속에는 전노협 정신의 핵심이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건설 이후 양적인 발전을 거치며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혼돈과 동요, 좌충우돌, 퇴행의 경향이 등장했고 나날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또다른 ‘부정’이 요구되는 시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 과제는 물론 “전노협 시절이 좋았다”, “전노협으로 돌아가자”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민주노조 운동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전노협 정신에서 일탈했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노협 운동이 갖고 있던 잠재력과 한계의 모순이 낳은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민주노조 운동이 수행해야 할 ‘부정의 부정’은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을 거쳐 다시 전노협으로 돌아가는 반복 운동이 아니라, 전노협 시기에 초보적으로 표현되었던 단결과 연대, 투쟁의 정신을 더욱더 확고하게 더 확장된 범위에서 정립하고, 맹아적으로 등장했던 노동해방에 대한 강렬한 지향을 더한층 과학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복구함으로써 민주노조 운동을 한 단계 더 높은 궤도 위로 올려놓는 것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시야를 보다 폭넓게 확장한다면,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일련의 계급사회들을 거쳐 미래의 새로운 공동체사회로 나아가는 과정도 부정의 부정의 법칙을 통해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 주제는 여러분의 토론과제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자연의 법칙과 인간사회 즉 역사의 법칙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과 인간사회, 의식의 세 영역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관철되는 변증법의 세 가지 주요 법칙들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차원에서 변증법은 이 각각의 영역에서 동일하게 관철되지만, 자연에서의 변증법과 인간사회 즉 역사에서의 변증법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연의 변증법에는 의식적 노력과 계획된 행동이 개입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무의식적으로,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주전자 속의 물이 ‘양의 질로의 전화’를 거쳐 수증기로 변하는 것, 또는 하나의 보리낟알이 ‘부정의 부정’의 과정을 거쳐 수십 배의 보리낟알들로 되돌아오는 것 등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주전자 속의 물을 전부 수증기로 바꾸기 위해 대중집회를 개최한다든지 더 많은 보리낟알들을 수확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지는 않습니다.
반면 역사에서는 주체적인 인간들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활동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했습니다. 군사정부의 폭압을 끝장내는 일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생과 고통이 따라야만 했습니다. 노동조합 건설의 자유는 결코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일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듯이 ‘자연에서 이루어진 변증법이 역사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그것도 자연에서의 변화 발전처럼 인간의 의식적 실천 없이도 역사의 변증법이 실현되게 해달라고 희망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와 역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인간 집단들의 의식적인 실천활동이 이루어졌을 때에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식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변증법의 법칙들은 역사라는 영역에서도 관철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역사의 전개가 인간들의 능동적인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해서 모든 일들이 자의대로, 의도한대로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발전의 과정에서 일련의 단계들을 거칩니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발전하는 것은 의식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이 과정이 특정한 인간집단들의 의지대로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가 태어난 초기에 어떤 사람들은 일찌감치 자본주의의 폐해를 간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자본주의를 부정하려 했고, ‘뛰어넘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의적 의도대로 새로운 공동체사회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이런저런 실험들이 실제로 시도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영국의 오언이나 프랑스의 생시몽과 푸리에, 독일의 바이틀링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모든 발전단계들은 나름대로의 자기 ‘존재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그런 이행에 필요한 필수적이고 적절한 조건들이 충족되었을 때에야 이루지는 것입니다. 예컨대 봉건사회가 몰락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들어선 것도 일부 인간들의 자의적 구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개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생산력이 발전했을 때, 그 결과 낡은 봉건적 생산관계의 틀로는 더 이상 발전하는 생산력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새로 등장하여 성장하기 시작한 자본가계급과 몰락해가는 봉건귀족들 사이의 갈등과 모순이 무르익어갔을 때, 지배계급으로서 봉건귀족들의 무능력과 한계가 극에 달하고 자본가들이 권력을 떠맡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때, 그리고 다수의 대중이 더 이상 봉건귀족들의 지배를 용인할 수 없다고 느끼며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고 행동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각성이 이루어졌을 때, 그 때에야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본격적인 일정에 오른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래의 공동체사회로 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미 새로운 공동체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생산력은 충분히 발전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적인 충돌과 대립도 상당한 정도로 격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가들이 이 사회의 지배계급으로서 역할을 다했고 무능력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객관적으로는 분명히 그렇지만, 대중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착수할 수 있을 만큼의 주체적 준비가 아직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현재 이미 새로운 사회로의 전진이 절박하게 요구되고 있음에도 이 변화는 현실적인 일정으로 제기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초기의 공상가들은 이런 준비조건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즉각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자본가들 자신이 전면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 또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주체로 나설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이 공상가들의 눈에 노동자들은 단지 고통받고 불쌍한 존재로밖에 비쳐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새로운 사회는 오직 자신들과 같은 공상가의 주관적인 계획, 그리고 지배계급의 시혜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런 시도가 실패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배자들도 이런 공상가들의 시도에 대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호의를 보내기도 했지만, 이 시도가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지자마자 즉각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상가들은 박해받았고, 쫒겨났으며, 공동체들은 붕괴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갖고 역사적 계획 속에서 실천에 착수하더라도, 그 실천이 성공할 수 있는 객관적 기반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이 시도는 단지 주관적 열망의 표현이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공상적 시도로 그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현재의 단계를 넘어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그런 발전에 필요한 필수적이고 적절한 조건들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여기까지가 역사변증법의 한 측면입니다. 여기에서는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에서 객관적 토대의 중요성을 다루었습니다. 다른 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객관적 토대가 준비되고 사회 변화의 조건이 성숙했더라도, 인간의 의식적인 실천이 없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기계적 유물론을 잠깐 언급했습니다. 기계적 유물론자들은 관념론과의 투쟁에서 나름대로의 성과물을 남겼지만, 모든 법칙과 운동을 기계적으로 이해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의 발전 또한 기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인간의 의지 및 능동적 실천과 무관하게 필연성에 따라 전개되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도 자본 자체의 한계에 의해 필연적으로, 자동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동붕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가 숱한 위기들을 겪을 때마다 자본가계급은 그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을 전개했으며, 이런 실천을 통해 자본주의의 위기들은 곧바로 파국으로 치닫는 대신 일시적으로나마 관리되고 통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적 준비와 실천의 힘이 자본가들의 힘을 능가하고 압도하게 된다면 각각의 위기들은 곧 낡은 자본주의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즉 실질적인 힘을 바탕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인 개입이 이루어져야만 역사에서의 변증법적 법칙들은 관철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천을 향하여
우리는 철학학습을 시작하면서 모든 이론이 그렇듯이 철학 또한 실천의 관점에서 다뤄져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천이란 의식적인 목표와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 계획을 갖고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낡은 것의 한계를 걷어내고 새로운 것을 틔워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은 주관적 열망만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실천의 조건에 대한 명확한 이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과 수단에 대한 이해, 실천과정에서 끌어내야 할 힘의 원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특정한 목표를 갖고 실천활동을 전개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곧 우리가 원하는 상태와 현재의 상태 사이에 차이와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존의 상태를 낡은 것으로, 더 이상 유지되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단순하게 과거의 것을 거부하고 내동댕이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가령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른바 사회적 청산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반대하고 철폐하고 무너뜨리면, 마치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가 날아오르듯 그 폐허 위에서 무언가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가 태어날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변증법적 ‘부정’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발전의 필연법칙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생긴 그릇된 관점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로 낡은 것을 일소시킬 수 없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를 다루어봅시다.
우리는 앞에서 모든 운동의 원인으로서 모순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의 사물 또는 운동 안에 대립하는 요소가 통일되어 있으며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존재형식에서 다른 존재형식으로 운동하는 것은 기존의 형식 안에서 새로운 것의 맹아가 힘을 키우고 마침내 낡은 요소를 압도하는 시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사회적 실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것은, 그것이 아무리 낡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의 힘이 성장하지 않는 한 결코 소멸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업장에서 어용노조에 대항하여 새로운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과제를 예로 들어봅시다. 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어느 조직이 대표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낡은 어용노조 관료들과 새로운 민주노조를 건설하려는 노동자들 사이에 대립과 투쟁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사업장에서 민주노조가 세워지는 것은 그것을 준비하는 몇몇 노동자들의 주관적 열망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이 포괄하는 노동자들에게 무엇이 우리의 올바른 대안인가가 분명하게 입증되어야만 합니다. 어용노조의 타락과 횡포가 아무리 극에 달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노동자들이 과감하게 새로운 대안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노조 세력의 힘이 성장하지 않는 한 어용노조는 민주노조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민주노조가 어용노조와 나란히 세워졌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조가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어용노조에 대항한 장기간의 투쟁이 필요할 것입니다. 수 차례에 걸쳐 어용노조의 본질이 폭로되고 대중적으로 공격당한다고 하더라도 어용노조 관료들은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교묘하게 빠져나가려 할 것이며,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새로운 생존방식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몸부림에 완전히 낙인을 찍고 더 이상 생존의 여지가 없도록 모든 측면과 각도에서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런 장기간의 활동을 거쳐 민주노조가 우리의 대안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입증되고 더 이상 어용노조가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 다수의 대중에게 받아들여졌을 때에야 어용노조는 대중의 힘에 의해 축출되고 민주노조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한 사업장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운동의 범위에서 보더라도 동일합니다. 현재 국내 어용노조들의 총본산인 한국노총과 나란히 민주노총이 조직되어 있는데, 여전히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을 완전히 압도하는 다수 노동자대중의 대표조직으로 자리잡지는 못했습니다. 상당히 장기간에 걸친 실천과 실제적인 투쟁 속에서 한국노총의 본질 및 한계가 적나라하게 입증되고 무엇보다 노동조합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자대중 자신의 의식이 광범위하게 성장했을 때에야 어용노조운동에 대항한 민주노조운동의 승리는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어용노조와의 투쟁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라는 과제에 복무하는 데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일부에서 등장하고 있는 관료주의화, 개량주의화 경향에 직면하여, 또 다른 일부에서는 즉자적인 반발과 심지어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조직인 민주노총 자체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개량주의 경향이나 관료주의적 행태에 대한 반발, 반감은 물론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즉자적인 반감과 반정립 시도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반감 이상의 것, 기존의 낡은 것에 대한 단순한 거부 이상의 것이 필요하며, 그것은 곧 낡은 것을 대체할 수 있는 명확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안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맹아는 어디에서 나타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며, 어떻게 그 맹아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안을 바탕으로 실제적인 힘을 조직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관료주의와 개량주의에 대한 그 어떤 반발과 반감도 단지 감정적 대응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과거의 낡은 것에 대한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현재 주어진 조건 속에서 새로운 힘을 키워내는 것이며, 새로운 대안의 올바름을 입증할 수 있을 정도로 내부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철학적으로 다루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천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실천의 조건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즉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그 힘의 원천은 곧 현재 전개되고 있는 운동의 모순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은 우리가 앞서 다루었던 ‘사물의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를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짚어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관념론자들, 종교적 관념의 소유자들은 운동의 원인을 운동 바깥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최초의 충격’, ‘절대정신’, ‘신의 의지’ 따위가 모든 운동의 원인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이해합니다. 운동이란 그 자체에 내재해 있는 모순 즉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에 의해서 일어나며, 하나의 존재형식에서 다른 존재형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는 그 존재 자체 내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계기란 어떤 것인지 다루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부정’에 대해서, 그것은 단지 과거의 낡은 것을 거부하고 간단하게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낡은 것 속에 있는 발전적 요소, 합리적 요소를 ‘계승’하고 ‘보존’하는 것이며 동시에 퇴행적 요소, 부정적 요소를 ‘폐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존과 폐기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존과 폐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존 계승해야 할 요소가 낡은 것을 폐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장해야만 합니다. 최소한 더 이상 낡은 형식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만큼은 성숙해야 새로운 형식을 취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각적으로 낡은 형식을 타파한다면 발전적 합리적 요소는 장기간 생존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는 성공적인 발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파괴, 붕괴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주관적 열망과 실천의 객관적 조건 사이의 간극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를 향한 강렬한 염원뿐만 아니라, 그 목표를 가장 빠르게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조건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을 성장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적 힘을 충실히 키워나갔다는 점을 전제로 했을 때에도, 낡은 형식에 공개적인 도전장을 던지고 새로운 형식을 창출하기 위해 전면적 행동에 돌입하는 정확한 시점을 선택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노동자의 단결을 표현하는 최초의 초보적인 발걸음으로서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데서도 결코 마구잡이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내적 준비와 계획이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것, 그것은 ‘새로운 것의 맹아는 항상 낡은 것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낡은 형식 속에서, 온갖 뒤틀림과 우여곡절과 진퇴를 겪으며 새로운 것의 맹아는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갑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단지 주관적 희망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것의 맹아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해방시켰을 때에야 그 맹아는 낡은 것을 완전히 타파할 수 있는 위력적인 힘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실천철학의 몇 가지 주요 법칙들과 적용의 방법을 간략하게 다루어보았습니다. 제한된 지면을 통해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선별하여 포함시켰으므로, 실천철학의 대략적인 전체상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은 되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개괄적인 설명인 만큼 이 글만으로 실천철학의 모든 측면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보다 풍부하게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훌륭한 고전적 저작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실천의 경험들과 연결지어 변증법의 법칙들을 검토하고 일반화된 교훈을 정식화하는 훈련을 거치지 않는다면 실천철학의 주요 내용을 습득하고 체화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은 우리가 다룬 법칙들보다 무한히 더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며 다채롭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몇 가지의 공식으로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실천의 지침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실천철학의 한 선구자가 말했듯이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 모든 정치적 철학적 지혜를 몇 개의 간단한 공식으로 만들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하는 희망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관념론적인 방식으로 변증법을 체계화했던 헤겔도 ‘진리는 구체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체적인 현실은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 합니다. 실천철학의 법칙들은 이 구체적 분석이 보다 정확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지, 결코 현실을 꿰맞추고 근거없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교조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유물론적 관점에 기반한 변증법적 방법으로 무장하고 현실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구체적인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올바른 실천 지침을 얻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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